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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해버린 동래고을 동래시장

by 무량화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미세먼지 약함으로 나와 있다.

외출하기 좋은 날씨를 맥없이 허비할쏘냐, 급히 준비를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동래성 답사에 나섰다.

현 동래읍성 성벽은 바윗돌로 쌓은 옛 성터 위에 반듯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쌓아 복원시켜 놓았다.

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북장대에 오르니 땀이 난다.

팔작지붕으로 된 누각이며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인 북장대는 그럴싸한 풍모다.

편안한 산책로가 곳곳에 나있지만 이곳이야말로 동래의 지난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아픔의 장소다.

유감의 뜻을 아무리 표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임진왜란의 상처와 고통, 그 참담함을 치유하는 길은 오직 하나.

냄비처럼 들끓는 반일감정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을 극복하고 앞서 나가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길뿐이다.

구호나 다짐만으로는 어림없고 정부 국민 모두가 각성하여 정신무장 공고히 함으로 치욕의 역사 되풀이하는 우, 절대 범치 말기를.

북장대에 서니 탁 트인 전망, 동래 도심 전경은 물론 저 멀리 보이는 마린시티며 광안대교와 아시아드 운동장까지 훤하게 드러난다.

읍성 바로 건너 마을 아파트 단지는 또렷한 맵시로 산뜻하게 다가선다.

젊은이들은 겉옷을 벗어 들고 반팔 차림으로 다닌다.

그래서인지 고목 끄트머리 짬에서 화들짝 놀란 듯 벚꽃 몇 송이 피어났다, 머잖아 화사한 벚꽃 구름처럼 흐드러지겠다.

북장대를 거쳐 북문에서 내려오면 장영실 과학동산 야외전시장이 나오나 몇 번 들린 터라 패스하고 하산했다.


그 옛날 동래읍성 남문 자리에 터 잡은 동래시장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먹자골목에는 맛집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브런치 삼아 요기를 하려고 동래시장으로 들어갔다.

손님 한산한 시장 안 풍경과는 달리 허름한 식당마다 손님들로 북적였다.

시장터라도 메뉴는 가지각색, 종류별로 죽도 있고 비빔밥 장어구이 야채쌈밥 회덮밥에 모둠회도 푸짐하다.

다른 음식은 별로 내키지 않아 주르름 일별하고 자매식당으로 직진했다.

전에도 먹어 본 집이라 주저 없이 좁고 긴 의자에 걸터앉아 칼국수에 김밥 한 줄 시켰다.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할 거 같은 분위기라 얼른 깍두기를 담아놓고 기다리니 금세 음식이 나온다.

잠깐 사이에도 들고나는 사람이 숱해 쥔장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해 종일 서서 일해도 힘든 줄 모르겠다 싶었다.

돈 되는 모퉁이가 죽는 모퉁이란 속담이 있듯 돈 벌기가 가장 어려운 일인데 어찌 힘들지 않으랴만.

자매식당은 엄마 아버지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운영하는듯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셋은 전자동 기계처럼 손이 척척 맞는다.

특히 이 식당의 안주인은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며 매사 재치 있게 대처하는 수완꾼이다.

연신 일손을 놀리면서도 들어오는 손님마다 일일이 응대하는 폼이 보통 고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놀랜 점은 그녀가 담아내는 음식의 양, 퍽퍽 담는 거 같아도 남녀 다르고 손님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한창 먹성 좋을 때인 젊은이들과 노인의 양이 다르고 잘 먹게 생긴 퉁실한 사람과 빼빼 다르다.

외모나 인상만으로 그녀는 스캔 뜨듯, 어느 분야나 그러하지만 얼핏 봐도 그녀는 오랜 경험자답게 척 보고도 안다.

시장한 사람은 넉넉히, 그러나 공연히 음식 남겨서 버리지 않도록 그녀 손길은 번번 알맞게 저울질돼 음식을 담아낸다.

국물을 좋아하는 내 경우 먹다 보니 건더기만 오글거리자 그녀는 국자 가득 국물을 추가해 줬다.

눈치 한번 끝내준다.

그러니 맛도 맛이지만 다른 국숫집보다 늘 손님이 끓어 줄 서서 기다리나 보다.

분위기 아삼삼하게 꾸민 레스토랑은 그런만치 자리값까지 물어야 하나 소탈한 시장통 음식이라 가성비는 그만이다.

역사 쪽에 관심 있는 복고풍인 데다 럭셔리한 고품격보다는 순토종 촌스런 식성인지라 이래저래 거듭 동래고을에 반하고 만 나.

지난번 이 집에서 아점 겸 국수를 먹고 나오는데 카톡이 울렸다.


퇴근길의 딸이라 동래시장통에서 국수 사 먹었다고 하면서 생각보다 맛 괜찮더라, 했더니 통화하던 딸내미가 그랬다.

별일이네, 국수도 안 좋아하면서... 그나저나 한 끼 음식값이 고작 그 정도라니 거저네. 나도 한국 가면 한번 맛보고 싶어 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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