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아보고도 그래? 여름철만 되면 해마다 나는 산불 아냐? 바로 옆동네까지 바짝 다가온 산불로 집에 재티 날아들던 거 기억 안 나?
과거를 잊은 자에게 역사는 되풀이된다, 란 경고가 있듯이 뼈아픈 일은 물론 심각한 사건도 곧잘 망각하는 우리다.
편리하게도 인간은 지독한 산고를 겪고도 애를 또 낳는 걸 보면 속성상 잘 잊어버리게끔 프로그램화되어 태어난 모양이다.
딸내미 다그침만이 아니라도 전에 써둔 글을 찾아보니 서부의 산불, 거의 연례행사에 준한다.
몇 년 전 나파밸리가 온통 불길에 휩싸였을 적에도 한국에선 아마도 호들갑스러운 뉴스 제목이 뒤따랐을 터다.
특히나 와인 애호가가 넘쳐나는 한국이니 와인 주산지인 나파밸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화재소식에 발 동동 구른 사람도 적잖았으리라.
비자금으로 와이너리 굴리는 전 씨 일가는 더했을 테고. 흠!
올해 데스밸리는 54도에 육박하는 수은주 기록을 세워 서귀포의 35도쯤은 소꿉놀이 같았다.
각설하고, 어제 국내 메이저 언론사의 뉴스 기사 헤드라인은 아래와 같았다.
기후변화로 더 쎄진 산불 확산일로, 미 서부 해안 휩쓴 역대급 산불, 화마로 수십만 긴급 대피, 불타는 미 서부에 주정부 비상사태 선포, 마치 화성처럼 하늘은 주황색, 화염 휩싸인 美 서부, 지구 종말이 닥친 듯, 미 서부 사상 최악의 산불, 미 서부 3개 주 동시다발 산불, 확산일로인 산불 요세미티 위협 등등.
네 시간 전에 내보낸 뉴스 제목은 '美 서부 산불 12개 주로 확산' 온통 불바다를 만든다던 깡패집단처럼 자극적이다 못해 공포스럽다.
뉴스 기사도 기사지만 더 겁먹게 하는 건 맹렬하게 타오르는 숲과 사방천지가 벌겋게 변한 사진들이다.
연합뉴스가 전한 사진은 진화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의 모습이다.
그 사진을 보고 나서 안 그래도 미국에 전화하려던 참인데 때마침 걸려온 딸내미 전화였다.
샌프란 가까이 사는 조카애 근황은 어떠한지 묻자, 엊그제 이사해서 보내온 아파트 사진을 보니 잘 지내고 있더라며 걱정도 팔자라고 또 쿠사리.
이번 역시 뉴스 사진에 속아 소심한 사람 놀라서 밤잠 설쳤는데 과도한 스트레스로 불안장애를 입은 정신적 손배는 어디다 청구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