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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by 무량화


선무당이 사람 잡고 아는 게 병이라 하였다. 내 케이스가 이번에 딱 여기 해당된다. 어설픈 건강상식만 가지고 주제넘게 괜히 아는척하다가 보름간을 곱다시 전전긍긍하며 지내야 했다.


여름 들며 무단히 팔과 다리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면서 몹시 근지러웠다. 피부에 발진이 생겨 붉게 도드라지며 참을 수 없이 가려운데 벌레 물린 자리나 두드러기도 아니었다. 계속 번지거나 늘진 않고 얼마간씩 그러다가 소강상태를 유지해 마음 놓을만하면 또 발진이 돋았다. 딸내미는 캘리포니아 사막날씨 영향으로 피부가 건조해져 가려움증이 생긴 거라고 심상히 말했다.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으나 자꾸 소양증이 생기자 원인을 찾아야겠다 싶어 셀프진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피부과를 방문해야 할 만큼의 특별한 증상은 없는 데다 평소 지론이 '자기 몸의 건강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식인 무대뽀라 혼자 머리를 굴려봤다. 순간 얼핏 떠오른 것이 당뇨병 환자의 다수가 피부 소양증이 있더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때부터 바로 내가, 평소 딱하게 여긴 '심기증'이라는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하는 일없이 팡팡 노는데도 끼니때 되면 배고픔을 느껴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는 일도 미심쩍었다. 식욕 왕성해 많이 먹건만 체중이 전혀 늘어나지 않는 점도 의아했다. 눈도 침침해지고 나른한 피로감이 들어 걸핏하면 낮잠을 자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결정적으로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가려움증의 원인은 뭔고?


몇 년 전에 아들이 보낸 자가혈당측정기가 있기에 약상자에서 찾아놓고 보니 측정기가 작동되질 않았다. 오래 사용치 않아 건전지가 닳았는지 방전된 상태 같았다, 건전지 모델번호를 찍어 딸내미한테 전송하며 주말에 사가지고 오라 했다. 당장 전화가 왔다. 하릴없이 또 무슨 걱정을 만들어서 하느냔 핀잔부터 들었다. 엄마 식생활을 번연히 아는데 혈당치 신경 쓰고 당뇨 염려할 계제가 아니니 맘 편히 살란다. 잠잠히 듣고 말 나도 아니다. 근자의 이상증세들을 조근조근 설명해 줬다.


이번엔 한 옥타브 높인 답변이 돌아왔다. 언제는 밥 잘 먹지 않았느냐, 잠이 많지 않았느냐, 눈 침침한 건 영화를 하도 봐 싸서 그럴 거란다.(딸은 나의 과도한 블로그 놀이를 모름ㅋ) 일단은 당뇨의 유전적 요인이 전무한 외가이고 또 살이 안 찌는 건 집안 내력인데 어쩔꺼며 그만큼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뭔 걱정이냐고 무질러버린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설 쓰지 말라는 면박만 듣고 말았다.


그러나 한번 그쪽으로 필이 꽂히면 모든 게 한 방향으로만 그럴싸하게 연결되고 귀착이 된다. 평소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범상한 일상들조차 다 당뇨 신호만 같았다. 이후 의식적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과다섭취를 조심하려 현미밥 양을 비롯 육류도 줄이고 운동시간은 좀 더 늘렸다. 내심 묵지그레한 기분인 채 두 주가 지났다. 딸내미가 내 채근에 못 이겨 건전지를 사 오자마자 혈당치부터 쟀다. 첫 번째 수치가 94 mg/dl로 나오는 걸 보곤 딸내미는 당연지사란 표정이었다. 매사 안달복달하는 울 엄마의 못 말리는 성정은 언제나 좀 느긋해질까, 하며 어이없어하는 눈빛이 그랬다.


그 후 며칠간에 걸쳐 아침 공복 시와 저녁 시간대에 손끝을 바늘로 찔렀다. 예방접종도 겁나서 못 하는 위인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과감하게 조석으로 피를 보았다. 평균수치를 내보니 아침 공복 시 96.5 mg/dl이고 식후 두 시간이 지난 다음엔 105 mg/dl였다. 결국 그간 쓸데없는 기우로 전전긍긍해 댔던 것. 뒤늦게 아암~그럼 그렇지, 하며 내 얼굴도 활짝 펴졌다. 암튼 이참에 미숙한 사람됨을 재확인하였으니 그것도 소득은 소득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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