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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4. 2024

금잔디와 그린필드 그리고 미나리

산책 코스를 바꿔봤다.

바닷가 대신 뒷산 능선 따라 들꽃 하얗게 핀 언덕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골프장 입구가 나왔다.

따사로운 봄 볕 아래 골프장 풍경은 어떤가 궁금해 안으로 들어갔다.

산자락 펑퍼짐하게 깎아 군데군데 조경도 잘 다듬어 놓았고 총 27홀의 골프 코스 근사한 데다 소나무 줄지어 서있었다.

클럽 하우스까지 진출하진 않았고 대충 벙커와 레익 등 외관만 잠시 훑었다.

근데 어라? 평일이라 적긴 하지만 골퍼도 보이는데 온통 눗누렇기만 한 골프장?

어리둥절했다.

희한해서 보고 또 봤다.

그린필드가 아닌 금잔디 골프장이라니,

잔디 잔디 금잔디/봄이 왔네/심신 산천에도 금잔디에. 소월의 시에 이 같은 금잔디 노래가 있었다.

시어 속의 추상적인 금잔디가 아닌 실제 금잔디는 뒷동산 할머니 무덤에서나 봤을까.

그러다 처음 한국 골프장에서 본 금잔디니 거의 쇼킹에 가까울밖에.

초겨울에 본 강원랜드 골프장은 그린이었는데 부산 바닷가에 위치한 이 골프장 잔디는 금잔디다.

저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관 아주 근사한 골프장, 그러나 한국형 토종 잔디를 식재해 골프장 전체 색이 누렇다,

잔디는 잎이 가늘고 밀도가 높으며 짙은 녹색을 띠는 것이 좋은 잔디라고 한단다.

양잔디는 사계절 푸르른 한지형(서늘한 날씨) 잔디다.

자주 깎아줘야 하고 시비를 충분히 해야 하는 등 관리를 잘해야 하며 농약살포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난지형(온화한 날씨) 잔디는 겨울에 성장이 멈추며 갈변 현상이 일어나 누렇게 변하는 품종이란다.

대신 난지형 잔디인 금잔디는 더위와 공해를 잘 견디며 병충해에도 강하다 한다.

이곳 바닷가 골프장은 우리나라 토종 잔디인 금잔디라 색이 눗누래서 황금 잔디라 부른다더라만.

회원권이 4, 5억이라는 데 억! 하고 쓰러질 뻔한 골프 클럽에서 쩝!! 하고는 두말없이  그만 돌아섰다.



뉴저지 살 적에 수차례 골프장에 나갔다.

매 주말이면 교우들끼리 친선게임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경만 하자니 따분하기도 한 데다 할만하다고 자꾸 권하자 은근 마음이 동했다.

운동신경이 둔하디 둔하지만 자치기놀이 같은 골프는 기초부터 차근히 배우면 할 듯 싶었다.

보아하니 과격한 운동은 아닌듯해 요셉이 앞장서서 같이 연습장에도 갔다.

결론은 꽝이었다.

사실 미국만큼 골프 취미 갖기가 좋은 곳도 없을 성싶다.

클럽 환경은 물론 그린 피가 저렴해 이건 숫제 자치기 놀이같이 누구라도 할만하다.

심지어 골프장을 앞뒤뜰로 쓸 수 있는 데다 언제건 골프 칠 수 있는 클럽 안 주택 단지 가격 역시 대단치 않다.

PGA 투어 대회라도 열리는 명소라면 몰라도 일반적으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니까.

말하자면 미국은 골프 이용자의 평준화랄까, 그러니 아무리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골프는 친다.

비교하자면 한국 대비 거의 거저나 마찬가지 수준이니까.

한국에서는 한번 필드에 나가면 라운딩 비용이 1인당 삼십만 원 정도라는 데 미국은 고작 몇십 불이다.   

딱 두 번 난타 교실에 참여했다가 깨끗이 백기 들었듯이 하여튼 골프도 나와 맞지가 않았다.

일단 스윙 자세조차 잡히지 않아 창피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취향이 아닌지 영 재미가 없었다.

촌사람 다이 상추 부추 들깨 고추 심은 텃밭 가꾸거나 잔디밭에 쌓이는 낙엽 갈퀴질하느니만 못했다.

단박에 포기하고 그냥 수다나 떨면서 구경꾼으로 지내는데 만족했다.


그때 눈에 익은 푸른 잔디, 따라서 응당 그린필드로 입력돼 있던 골프장이다.

헌데 누런 금잔디 골프장, 생경하다 못해 신기했다.

그렇다면 겨우내 부산에서는 금잔디 위에서 골프를 친다는 얘기?

제주도나 동남아니 어디 외국으로 골프 치러 나가는 사람들 심정이 십분 헤아려졌다.

애들 흙 마당에서 하는 자치기 놀이도 아니고 흙먼지 뽀얀 데서 저게 뭐람. 흐흠!

매주 요일 정해 놓고 필드에 나가는 미국 내 교민들이야말로 계절 없이 신선놀음 즐기는 셈 아닌가.

이곳 동절기 골프장 황량하다 못해 살풍경한 모양새 보나 따나...

사철 Evergreen 틀림없이 보장된 미국에선 정말이지 골프 칠 맛 한층 더 배가될 듯.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미나리를 친구 덕에 어제 봤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본 이력이 있기에 전개되는 내용이 궁금했다.

곧이어 수많은 리뷰가 따를 터라 수상 경력이니 출연진의 연기 평이나 디테일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태평양 건넌 이민 가정의 스토리는 차치하고라도 동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참으로 씁쓸했다.

젊은 그들은 왜 미국으로 향했을까?

당시 박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경제개발계획 실천에 더해 높은 교육열과 국제적 호황기가 맞물려 국내 성장세는 탄력을 받았다.

60년대 초만 해도 국민소득 82달러였던 나라로 당시 아프리카 가나 수준의 반에도 못 미쳤다면 요즘 사람 누가 곧이듣겠는가.

그런 나라였으니 한국 사회에서 고도성장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으나,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발전의 동력을 크게 얻었다.

이후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미나리> 이민사가 불쌍하기만 하고 어처구니없다 못해 답답하게 보일런 지도 모르겠다.

7~80년대 미국 이민은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이는 한국 땅에서 과감히 미래를 찾아 나선 용기 있는 탈주였다.

위와 같이 성업 중인 골프장 수두룩한 현재야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미 그때, 소위 명철한 엘리트층으로 앞선 의식의 의사들이 대거 이민 대열에 줄을 섰다.


멀쩡한 대졸자가 병아리 감별사나 하다못해 닭털 뽑는 닭공장 노동자로 또는 재봉질이며 미용기술을 배워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뉴저지 이웃이었던 데레사씨만 해도 약사였던 그녀가 애들 교육을 위해 네브래스카로 이민 올 때 만든 취업비자 내용은 청소업이었다.

과연 믿어지는가? 약사가 청소 일을 하겠다며 이민 와 식당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했다는 사실을....

그나마 그들은 일정 자격을 가지고 정식 루트로 진입한 케이스.


유학을 왔다가 신분을 바꿔 그대로 주저앉거나 기타 불법체류자도 미국땅에 부지기수다.

망명 비슷하게 떠나온 사람도 있고 독일로 나갔던 광부나 간호사가 미국으로 곧장 건너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크게 사고를 치고 내뺀 자 또는 검은돈 한 보따리 꿍쳐 메고 온 자들도 물론 다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듯 성실히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도 많은 반면 미국 대도시에는 일없이 놀면서 사기나 치는 한국인이 다수 횡행하는 이유인지도.

2천 년 들어 이민 온 우리는 당시까지만 해도 소위 중산층에 속했으므로 모험과 고생 담보로 해야 하는 이민 같은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교민사회에 들어와서 알았지만, 처음 일에 부대끼며 시난고난하던 우릴 보고 주위에서 이 정도야 호시 뺑뺑인 거라고 위로해줬다.


그럴 만큼 7~80년대에 이민 온 가정사 이면을 들어보면 진짜 기구하다 못해 험난 무쌍했다.

아칸소 시골의 미나리네 집처럼 트레일러 주택에서 사는 건 예사.


미국 정착 분투기는 사연마다 눈물겨울 지경이지만, 성공자와 낙오자 사례는 천차만별로  어느 사회에서나 있음 직한 스토리에 불과하다.

다만 절망적인 현재일지라도 젊기에 그들에게는 무한 가능성이 열려있었고 의지의 한국인은 마침내 꿈을 이뤄 거대 농장주가 되고야 말았으리라.

피와 땀과 비탄으로 얼룩진 이민 1세대가 있었기에  이민 2세대는 안정된 위치의 미국인이 되어 영화감독으로도 살아갈 토대를 만들었을 터다. ​
                                    



그로부터 얼마 후, ​먼 숲에서 뻐꾹새 소리가 들려오기에 다시 산으로 향했다.


골프장이 있는 그 산이다.


무심코 황톳길 걷다가 깜짝 놀랐다.


골프장 잔디가 그새 푸른 기운을 되찾았지 뭔가.


완연한 봄이 와 연둣빛 비단폭 너울너울 펼친 듯 한 골프장을 바라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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