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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3. 2024

유채꽃길 함께 걸어요

유채꽃 샌드위치

 서귀포 유채꽃 국제걷기대회가 3월 23일과 내일, 양일에 걸쳐 제주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개최된다.

벌써 26회째를 맞는다니 서귀포 봄맞이 행사로 뿌리 실하게 내려 정착돼 가나 보다.

동행하기로 약속한 친구가 전화 와서, 시간 늦을지도 모르니 덜 복잡한 터미널에서 만나잖다.


기온이 낮은 데다 바닷가를 걸으므로 추위에 대비한 옷차림 단단히 하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아암, 여부가 있나!




오전 아홉 시, 부지런을 떨어 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구름 잔뜩 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있었다.


삼삼오오 성황을 이룬 시민들과 올레길 순례객들이 동참, 저마다 차림새는 유채꽃만큼이나 사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에다 자녀 손을 잡고 온 가족들, 친지들이며 여기에 요샌 애완견도 빠질 수 없겠고.


광장이 붐빌 터라 아예 친구와 서귀포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왔다 갔다 하느라 개막식 일부는 대충 패스.


식전 행사는 삼십 분쯤 지루하게 이어졌다.


개막식 공식행사는 예나제나 천편일률적으로 그 뻔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서귀포시장 이하 지역 정관계 기관장들의 들으나 마나인 한말씀만이 아니다.


사월 선거를 앞둔 터라, 각 정당 후보자의 눈도장 찍기 폴더인사도 있었고 기타 등등.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귀포유채꽃 국제걷기대회는 명칭이 그러하듯 일본 구루메시와 중국 다렌시가 공동 개최하는 거라고.

서귀포시의 상징인 유채꽃처럼 구루메시의 시화는 진달래, 다렌시의 시화는 아카시아꽃.

아, 그래서 내빈들이 무대에 올라 출발을 알리는 징을 울릴 때 점퍼 색깔이 분홍, 연미색 등 제각각이었나 보다.


개막식을 마친 후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유채꽃 샌드위치 커팅식!


26회 행사 숫자에 맞춰 길이가 무려 26미터에 달하는 기나긴 샌드위치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참가자 모두에게 나눠줬다.


지난해 처음 어마무지하게 긴  샌드위치를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이라니.


바게트 속을 꽉 채운 햄, 치즈와 유채꽃으로 마무리를 장식한 샌드위치는 색감만으로도 시각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실은 올해 걷기대회 참가조차도 유채꽃 샌드위치를 맛보기 위함이라면 주책 먹방?


그 정도로, 작년도에 먹어보고 매료됐던 그 맛의 추억을 다시 느껴보고자 함이었다.


원래 밀가루 음식을 즐기지 않아 빵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 식성임에도 예외였다.


하여 샌드위치 테이블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은 다음, 배당된 샌드위치를 받아  쌕에 넣었다.


개나리 색깔의 쌕에는 이미 생수와 기념배지 및 걷기 구역 내 지도가  들어 있었다.


부스에서는 유채꽃 모자도 나눠줬다.


제주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열 시 정각, 드디어 코스별로 출발을 했다.

비를 예고한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 언뜻언뜻 푸른 기운이 돌았다.

그쯤으로도 기분만은 산뜻 청쾌한 표정들, 발걸음 역시 마냥 가벼웠다.


날씨가 화창하지 않아 우리는 바닷길 코스 일부만 걷기로 했다.


법환포구로 해서 돔베낭길 따라 걸으며 바닷바람이나 쐬기로 한 것.


여긴 산책 삼아 자주 걷던 길이라 눈 감고도 갈 만큼 길머리 훤한 길이다.


새카만 현무암 거느리고 걷다 보면 해안길 동쪽으로 범섬을 비롯 새섬 문섬 섶섬이 연이어 나타난다.


해녀학교가 있는 잠녀문화마을 지나다 보면 우뚝 솟은 최영장군 승전비가 기다린다.


백여 년간 제주섬을 몽골에게 빼앗겼다가 목호의 난을 진압하며 되찾게 된 제주섬이다.


기념비적 승전고를 울린 최영 장군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니 금 글씨로 새긴 들 어떨까만.

하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신 장군이시거늘.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대체 목호가  사람 이름이야 뭐야?


이는 몽골 제국이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진압된 이후, 원은 삼별초가 점거했던 제주에 '군민총관부'를 설치하고 백여 년 주인 노릇을 했다.

섬이라는 입지조건을 십분 활용, 원 왕실의 말을 탐라에 방목해 목장을 설치하였다.

그렇게 제주도에 들어와 현지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말 기르는 기술을 전수하는가 하면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고.

하지만 세상은 변해 원나라는 지는 해, 새로이 개국한 명나라는 떠오르는 해였다.

명은 고려에 원을 치기 위한 제주마를 요구하자 이에 칸이 방목한 말을 내줄 수 없다며 목호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장군이 이를 진압했던 것.

사실 나부터도 제주에 오기 전에는 몽고가 제주섬을 백 년이나 지배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른다는 게 자랑은 아닌데 아무튼.

참으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은 섬 제주다.

오늘날은 관광 제주로 골골마다 여행객 넘쳐나긴 하는데.

이젠 어딜 가나 유채꽃 군데군데 무리져 해풍 따라 무심히 나붓거리지만.


옛 역사야 강퍅했을지라도 어쨌든 승전보 울려 퍼진 자랑스러운 법환 아닌가.


중간에 벙커하우스에 들러 따스한 차 주문해 놓고 여유를 즐기우리는 오후 늦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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