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 방목지에 다가온 천고마비 계절

by 무량화

추분 지나자 바람 맛이 완연 선들해졌다.


뭉게구름 대신 연한 새털구름 조금뿐 하늘 맑은 날, 오일육 도로에 올랐다.

초원의 풀빛 누레지기 전에 제주마 방목지에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성판악을 넘자 날씨가 흐렸다 개였다 마구 변덕을 부렸다.

동녘을 제외한 사방에서 회색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휘덮어갔다.

무거운 구름장은 하나 둘 빗방울마저 흩뿌렸다.


금세 다시 푸르러 지는 하늘에 고마워하며 제주마 방목지 앞에서 차를 내렸다.


그새 초원은 싱그런 초록빛 많이 가시고 일부는 건초장처럼 마른 풀잎이 자리를 넓혔다.

좀 더 진작에 올 것을....

한라산이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위치, 맑은 정기 온몸으로 흡수하며 싱싱한 무공해 풀을 먹고 지내서인지 말 잔등 윤기로웠다.


어느새 천고마비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다.

요샌 그처럼 촌스러운 표현을 쓰는 사람조차 없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한낮엔 꽤 무더운 날씨라 말들도 나무 그늘만 찾지만 시월까지 여기 머무는 동안 초장의 풀로 더욱 갈기 풍성해지고 근육 튼실해지리라.

시월이 오면 분명 천지 간에 가을 기운 진하게 감돌 테니까.

고개 숙이고 초장의 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는 말 등 너머로 구름 거느린 한라산 슬며시 떠오른다.


풀밭에 있어야 할 메뚜기 전망대까지 올라와 가을의 전령사로 날 영접 나왔구나.

딸내미는 태어남부터 말과 인연 깊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성정이 강하고 고집도 세고 호불호가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기질이 유했던 아들은 회초리 맞을 일이 도통 없었으나 딸내미는 고집부리다 몇 번인가 엄마의 매맛을 보았다.


지금도 활달한 말처럼 한번 작정하고 시작했다 하면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남자 못잖게 일을 밀고 나간다.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치밀하면서 묵묵하고 신실한 그를 나는 믿는다.


말은 넘치는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 있는 근육, 기름진 갈기, 각질의 말굽과 거친 숨소리를 가지고 있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타고난 기질 따라 말은 우두머리, 지도자, 선구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말띠는 근면 성실하며 매사 긍정적이나 자기 주관은 분명하고 강단도 있다.


딸내미에게도 그런 측면이 다분하다.


사실 딸내미가 말띠 아니라면 특유의 냄새도 나고 무뚝뚝한 말에게 우호적이기 어려울 텐데 말을 보면 왠지 살가운 감정까지 든다.


그러니 마장까지 일부러 찾아다니는 지도.

말의 고장 제주답게 말과 관련된 장소와 전설들이 제주 곳곳에는 숱하다.


헌마공신까지 배출한 지역이니 그럴 만도 하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의 위서동이전에 제주를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라 표현해 놨다.


여기에 주호(州胡)라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好養牛及猪)고 기록돼 있다.


그러다 고려 문종 27년(1073년)과 고종 45년(1258년)에 각각 탐라가 조정에 말을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는 소형 마인 과하마가 사육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원종 14년(1273년) 삼별초를 평정한 후 제주도를 직할령으로 삼으면서 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에 이른다.


1276년 몽고 말 160 필을 들여와 수산평(현 성산읍 수산리)에 목마장을 설치했는데 고려 말기에는 약 3만 필 정도가 사육되었다.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원이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하면서 원의 말 사육법과 거세술 등이 전해졌다.


몽고에서 들여온 전투용 말과 제주의 토종 과하마를 교배해 태어난 말이 제주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늘날 제주마로 이어졌다고 본다.


현재 제주축산진흥원에서 한라산 중턱인 개오리 오름 인근에 위치한 마방목지 초원에 4월부터 시월까지 제주마들을 풀어놓고 관리한다.


천연 목초지인 마방목지에서 뛰노는 제주마는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또한 한라산을 배경으로 말들이 중산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장면인 ‘고수목마(古藪牧馬)’는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마방목지 방목 풍경을 관람하기 용이하도록 편의 시설과 전망대 등도 갖춰 놓았다.


돌아올 무렵 망원렌즈가 달린 묵직한 카메라를 멘 사진작가 일행이 마방목지에서 차를 내렸다.


더위 때문인지 먼데 있는 큰 나무그늘에 몰려있는 말 무리를 저들이라면 근사하게 담아내겠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