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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옆 운치 있는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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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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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구름장 가득 널린 우중충한 하늘이라 해는 뜰 거 같지 않았다.
그래도 예정대로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전라도 섬진강 가로 매화 구경 가는 날, 구례에서 아점을 먹기로 했다.
당연히 여기선 재첩국을 먹어줘야 예의지, 그랬더니 산행인들에게 소문난 맛집이 있다며 들어선 곳은 목화 식당.
아들은 주말에 짬만 나면 전국 각지의 산으로 내달리는 등산 마니아다.
지리산에 올 적마다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해장국 한 그릇 든든히 먹기 위해 들렀다는 식당인데 읍내 한복판에 위치했다.
허술해 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정쩡한 시간대인데도 테이블은 차 있었으며 2018년에 발행된 전남 최우수 레스토랑 인증서 떠억!
레스토랑이란 단어가 한참 어색하게 느껴지는 허름한 분위기의 식당인데 아무튼 이런 언밸런스도 다소 재미지긴 하다.
딱 두 개의 메뉴뿐인 선짓국과 소내장탕, 솔직히 내장이라는 게 기름져 텁텁하리란 선입견부터 앞섰다.
투박진 뚝배기에 담겨 나온 선짓국은 생각과는 달리 맛 개운하고 깔끔하고 맑았다.
반찬 역시 식당 분위기에 맞게 아주 소탈한 편, 하긴 내장탕에 시원한 깍두기면 됐지 달리 무에 필요하랴.
깊은 맛이 스며들었기로는 잘 숙성된 막장만이 아니었다.
깍두기며 배추김치도 담백한 맛 정갈스럽고 깻잎지야말로 충분히 전라도다운 미각의
진수였다.
식사를 마치자 아들이 바로 옆집인 한의원 참하니 구경도 할 겸 사진 찍을만하다며 넌지시 이끌었다.
때마침 담장 너머 안마당 매화나무 만개한 꽃잎이 밖으로 날리고 있었는데 대문간의 간판을 보자 절로 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한의원인 그 집은 드물게도 내 취향에 딱 맞는 데다가 정녕 탐낼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자족하며 살아 도시 부러운 게 없던 나였는데 공기 좋은 전원, 한옥, 텃밭, 적당히 도울만한 일감이 따를 테니 이 얼마나 좋을쏜가.
외관상 멋지고 근사한 집이야 세상에 쌔고 쌨지만 이처럼 담박 내 마음 사로잡아 채가는 집은 처음 접해보았다.
진작부터 아들은 미국에 있는 동생을 염두에 두고 그 집을 보아왔던 게 분명했다.
재첩국 먹자는 의견을 슬그머니 뭉갠 이유를 그제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딸내미는 미국에서 한방 클리닉을 운영한 지가 십수 년째다.
한국에서 대학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함께 이민 가면서 전공 살려 대학원 공부시킬 계획이었으나 형편상 차질이 생겼다.
매 학기당 5~6만여 불인 등록금을 감당하기엔 경제적으로 초기 이민자의 형편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았던 때문이다.
대학원 대신 선택한 곳이 학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의대 진학, 딸내미 혼자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 학업을 마쳤다.
원래 한국서 대학 다닐 적에도 북경 중의대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기에 셋이서 중국으로 현지답사 차 자유여행을 갔던 적도 있었다.
96년도의 일인데 당시만 해도 북경은 환경이며 치안이 엉망이라 딸아이를 보낼 여건이 전혀 아니라고 판단돼 뜻을 접었던 터.
어영부영 몇 년이 지나가는 동안 여차여차한 상황 변화로 우리는 미국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메릴랜드의 한인 한의사를 만나게 되면서 딸은 한의학 전공으로 진로를 선회하게 됐던 것.
마침 그 당시 국내법으로는 2005년이 되면 한국 사회가 전면적인 의료개방을 할 예정이었기에 내심 미래 청사진은 그럴 듯 짜여졌다.
하지만 그 법은 시행되지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신경외과와 한방을 합쳐 오누이 통증 클리닉을 만들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전공과정을 마치고 라이선스를 취득한 뒤 한동안 학교에 남아 본초학 강의를 하다가 2007년 살구가 익을 무렵, 제 이름을 걸고 클리닉을 열었다.
연륜이 쌓인 만치 나름 자리 잡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지만 오빠 마음엔 타국살이 하는 비혼주의 동생이 걸려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었던가 보다.
계림 한의원을 보고 난 다음부터 어느 결에 나 역시 한동안 그 생각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잠언 말씀처럼, 마음으로 많은 일을 계획할지라도 경영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니.
모든 것에서 선을 이루는 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그분 계산표와 시간표를 믿고 우린 그저 잠잠히 따르기로.....
딸내미 카톡방 메인화면의 사자성어 묵이지지(黙而識之)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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