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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6. 2024

난분분 벚꽃길, 가시리 가시리잇고

가시리 유채꽃과 벚꽃


벚꽃과 유채꽃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또 한 곳.

만개한 유채꽃과 벚꽃의 개화 시기가 이리도 절묘하게 겹치다니.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만치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시간을 더한다?

제주 중산간에는 가시리(加時里)라는 마을이 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난 선하면 아니 올세라...."


단순히, 아껴 연모한 님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며 그 정한(情恨)을 애절히 노래한 거라고?

하지만 고려 가사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미루어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파악되는 귀호곡(歸乎曲) 일부다.

이형상(李衡祥)의 수고본(手稿本:친필 원고본)인 <악학편고(樂學便考)>에 ‘嘉時理(가시리)’라는 제목으로 위 가사가 실려 있다.

제주사람이라면 거의 다 알테고 눈치를 이미 챘겠지만 이형상, 이 분은 제주목사로 봉직하는 동안 탐라순력도를 남긴 조선 후기 인물이다.

1702년 가을에 도내 각 고을을 직접 돌아보고 온 뒤 화공 김남길이 그린 그림에 이형상이 상세한 설명을 넣어 공동제작한 기록 화집이다.

본래 제주도는 전라도 관찰사의 관할 구역이나 지역적 특수성으로 제주목사가 순력을 대행하였다.  

제주도를 동-남-서-북 방향으로 정의현·대정현·제주목 등 3읍과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9개 진성을 직접 돌아보는 일이었다.

순력의 목적은 군사 점검 및 조련이지만 동시에 무기·군량미 등을 파악하고 활쏘기 행사도 가졌으며 경로연 잔치도 벌였다.

그 도중에 지나게 되는 김녕굴·정방폭포·천지연폭포·산방산 등 제주도의 명승지도 탐방하였다.

목사 이형상은 그간 보고 듣고 겪은 여러 상황들을 스물여덟 폭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을 남겼다.

이 도첩은 제주도 내의 산·오름·목장·마을·하천·포구 등과 방위 및 주변 도서와의 거리도 함께 기재했다.

18세기 초 제주도의 자연, 역사, 산물 등이 기록된 작품으로 역사적, 문화적, 회화적 가치가 아주 높은 도첩이다.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형상은 그만큼 제주와도 깊은 인연이 닿아있다.

제주목사라는 관직에 있는 동안 그는 미신이라며  절과 신당을 불태워 저항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유학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탐라순력도 및 악학편고 외에 십 수종의 저술집을 남겼다.

제주 도내를 손금 보듯 상세히 기록해 놓은 탐라순력도를 묶어낸 것만 해도 그렇다.

떵떵거리며 제주 전역을 순시한 게 아니라 진정한 애민정신으로 이 땅의 백성들과 자연을 아끼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처음 가시리라는 마을 이름을 듣고는 고려 속요 가시리를 떠올린 연유다.


그러나  마을 이름은 래 가시리(加時里).

시간에 시간을 더한다는 의미가 있어서인지 순간을 길게 늘이고 싶은 선남선녀들이 많이 찾아왔는 데다 웨딩사진 촬영 현장도 자주 목격됐다,

가시리는 그런 까닭에서도 노년층 역시 즐겨 찾는 마을.


건강백세 장수와 결부시킬 수도 있으니 해석 여하에 따라 축복일 수도 있으므로.

아무튼 괜스레 느낌 연연해지는 가시리란 고을을, 작년 향그러운 벚꽃과 유채꽃이 펼치는 봄 축제 때 처음 가보았다.

올해 역시 축제 첫날인 금요일 오전부터 가시리로 달렸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에선 절정 맞은 유채꽃과 벚꽃이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녹산로는 10㎞에 걸쳐 양측에 피어난 벚꽃  유채꽃이 아름다이 조화 이룬 봄철 최고의 꽃길 명소다.


이 십릿길이 넘는 가로 따라 이어지는 기나긴  꽃길이기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될 만도 하다.


그 어디보다 풍부한 유채꽃길 소담스레 열려있고 이미 만개한 벚꽃은 봄바람에 하르르 날리며 꽃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한껏 무르녹은 봄날인 이달 말부터 4월 초순까지, 가시리 유채꽃 광장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서귀포 유채꽃축제.

몇 해간 코로나로 주춤했던 행사들이라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축제 현장은 붐비는 인파로 한껏 분위기 고조돼 있었다.

온데 노랑노랑 화사히 맑은 꽃물결 출렁대는가 하면 그 위로는 연분홍 시폰 천 하늘대면서 난분분 꽃비 눈송이 되어 내리고.

절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이더라아~~ 봄날은 가안다아아' 노랫가락이 새어 나온다.

제주 중산간, 오름의 여왕이라는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 등이 감싸 안은 평원에 조성된 삼만 평 규모의 유채꽃밭도 단연 명품.

끝 모르게 깔린 유채 물결 사이 풍력발전기 서서히 돌아가고 그 뒤로 아련하지만 의연하게 드러나는 한라의 웅자!

유채꽃 광장은 이 모든 배경과 어우러져 더더욱 장관이었다.

이웃집 도반과 둘이서 살짜기 왔기에 더 오붓하게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긴 시간,


포토존마다 자유로이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찍혔다.

온 하루 멀미 나도록 꽃에 취한 채 꽃길만을 걸었던 어제.

신선놀음이 따로 있나? 천국은 바로 예였다.

가장 소중한 '금'은 지금이라 했듯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허락된 천국놀이 만끽하길!

인생의 봄도 그러하려니와 정말로 봄날은 한 때 잠시 뿐이다.


카르페 디엠!!!

봄을 맞으러 가시리로 가자~

누리의 만물이 깨어나는 지금은 봄이니까.

벚꽃 화들짝, 한꺼번에 수만 송이 폭죽 터지듯 팡팡.

창공엔 벚꽃구름 살랑살랑, 길섶엔 유채꽃 물결져 산들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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