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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에서 조우한 꽃무릇

by 무량화

영실에 가려면 천백고지 행인 240번 버스를 중문 사거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매 시간마다 15분에 차가 출발하므로 거의 시간 맞춰서 왔다.


중문보건소 맞은편 서귀포국민체육센터이자 도서관 건물 초입에서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데 돌담 아래가 진다홍으로 물들어 있는 게 홀깃 보였다.

작년에도 피었던 오, 꽃무릇이구나.

돌아가는 길에 꼭 둘러보고 가야지.



영실 존자암에 올랐다가 내려오며 아까 꽃 빛깔에 홀린 장소로 들어섰다.

요사스러운 불꽃 붉게 번지는 틀림없는 꽃무릇이었다.

꽃과 잎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어나기에,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빗대어지는 꽃무릇은 석산화로도 불린다.

전에는 고창 선운사를 가거나 영광 불갑사를 찾아야 만나던 꽃, 석산화.

이제는 공원과 도로변에 무리 져 핀 석산화를 전국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불꽃 이글거리듯 특이한 화형과 요염을 넘어 요기 띤 꽃 색깔로, 굄을 받는 조경용 화훼 되어 널리 식재하는 까닭이다.

꽃무릇, 석산화를 더러들 상사화라고도 부르는데 둘 다 사찰에서 흔히 만나지만, 기다란 꽃대궁을 가진 외엔 외양부터가 전혀 다르다.

아무리 군락 이뤄 펴있어도 상사화는 촌 아낙처럼 소박하고 수수한데 비해 석산 꽃은 화려하다 못해 고혹적이기조차 하다.

석산은 왠지 천경자의 똬리 튼 초록뱀 그림 옆에 배치하면 알맞을듯한 꽃.

상사화는 사임당의 '초충도' 구석에 끼어있어도 무방 할듯싶다.

무엇보다 상사화는 잎이 진 다음에 꽃대 올라오나, 반대로 석산은 꽃 지고 나서야 잎이 올라온다.

상사화나 석산 꽃이나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의 공통분모는 찾을 수 있겠다.

꽃무릇이 피었으니 머잖아 내장산 단풍소식도 들려오리라.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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