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Oct 10. 2024

생긴즉 반드시 사라지리니

제행무상이다.

생성이멸, 성주괴공, 영고성쇠는 어디에나 적용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 하거늘 이 세상에 시간적으로 영원한 그 무엇이 있겠는가.

어느 것이나 잠시 혹은 한동안 머물다 가뭇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생긴즉 소멸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거부할 수 없는 필연.

인디언에 관한 단상을 정리하다가 결론적으로 얻은 답이다.

그러므로 인디언사 역시 흥망성쇠의 순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리라.

우주적 큰 틀 안에 넣고 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성쇠이므로 그만 연민을 거두어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한때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두루 누리며 드넓은 대지의 주인으로 자유를 구가했으니 그로나마 자족, 자위하면서.  

우리와 같은 DNA라는 것, 비슷한 처지를 겪은 피해자라는 것, 현재 약자라는 것이 쩌르르한 자력의 힘 되어 매양 이끌리게 하던 인디언들.


그건 연민 그 이상의 미묘한 감정이었다.




기존의 미국사 책들이 내세운 공식인 정복자는 곧 영웅이라는 천편일률적 시각.

 

그런 시각이 아니라 그들의 야욕에 희생당한 수많은 민초의 입장에서 미국 역사를 다룬 하워드 진은 그의 역사책 서두에 이렇게 썼다.

정복과 차별의 역사 시작되다, 처럼 피를 먹고 자라는 제국의 팽창을 위해 인디언은 미국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죤 오설리반이 주창한 '명백한 운명론'처럼 신에게 선택된 백인들은 선진세계의 문명을 전파할 의무가 있으므로 미개한 땅의 주인은 언제라도 대체될 운명을 지녔다는 논리대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 북미 인디언들의 수는 거의 1억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들소를 포기하고 대신 양을 기르라고 강요하지 말라던 인디언들.


들소를 쫒으며 치달리던 인디언들의 생활기반은 대륙횡단철도가 들어서며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백인들에게 땅과 목숨을 빼앗기는 불행의 서막이었다.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중과부적, 백인들의 총칼에 의해 유배지로 밀려난다.


말이 좋아 보호구역이지 유목 부족에게 한정된 땅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듯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멸족을 촉진시키는 유형지로 내몰린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

앤드루 잭슨의 원주민 이주정책에 따라  혹한 속의 도보행군 과정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4천 명이 넘게 희생되면서 생겨난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 한 곳뿐이랴.


'나는 어느 전쟁도 환영한다. 이 나라에는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서한문이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호전성이 바탕에 깔린 미국의 정신자세를 하워드는 그의 책을 통해 통렬하게 질타한다.


이해할 수 없거나 납득이 안되거나 수긍하기 힘든,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부조리한 세상.

깜쪽같이 증발해 버린 고대 문명만이 수수께끼가 아니다.

파르타고,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오스만튀르크, 에스파냐 왕조도 사라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대 제국들인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몽골이나 돌궐도 마찬가지다..

인더스 문명, 이슬람 제국, 중국 문명도 여러 차례 부침을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다던 영국의 현재 위상, 냉전시대의 양축이던 소비에트의 몰락도 지켜봤다.

미국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다만 시절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을 뿐.

천년 영화를 누리던 나라들이 더러는 자연재해로 인해 소멸되거나 자체 붕괴로 스러졌고.

더 흔히는 보다 강한 세력으로부터의 침략전쟁에 패하므로 흔적을 감추기도 하였다.

한없이 선한가 하면 인간만큼 사악하고 독한 종족도 없다 하였다.

굶주린 사자 우리에 노예를 몰아넣고 희희낙락 즐기던 로마인들만이 끔찍하겠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학무도한 행위는 미국에만 국한되거나 백인들 뿐의 일이겠는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비롯 아시아 각처에서 벌인 만행은 어떠하던가.

종교의 이름으로 십자군이 자행한 학살극도 있었으며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지막지한 살인극은?

인종 청소라는 어이없는 명목으로 나치가 행한 반인륜적 광기만이 아니라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를 접하면 누구라도 최면 걸리듯 인간이기를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된다던가.  

그렇듯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부족끼리의 처절한 내란으로 목불인견의 참상이 빚어지고 있다.

중동이라는 화약고에다 미사일이 연일 터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애송이가 쥐고 있는 북한의 핵.

선과 악, 흑과 백, 옳은 것과 그른 것, 승자와 패자, 삶과 죽음...... 그 경계마저 무의미해진다.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소용도 없는 인디언에 대한 연민을 이쯤에서 그만 내려놓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공해가 된 카톡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