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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게 좋아 날씨만 번하면 걸었다

by 무량화

ㅕ한국에 오자마자 아들이 미리 예약해 둔대로 종합 건강검진부터 받았다. 미국에서도 매년 받아온 건강검진, 예측했던 대로 별문제는 없었다. 단 한 가지 뜻밖에도 골밀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결과치를 받고 몹시 황당했다. 그로 인해 골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주사를 일주 간격으로 석 달간 맞았다.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오십 대 초반, 미국으로 떠나기 앞서 골밀도 검사를 했을 때 수치가 낮게 나와 계속 약 처방을 받아왔다. 치료약이라기보다 골다공증이 더 진행되는 걸 줄여주는 약이다. 현재도 복용하는 약은 오로지 그 하나뿐이다. 꾸준히 약도 복용하고 무엇보다 열심히 걸으며 햇볕도 충분하게 쬐었다. 그간 걷기에 관한 글을 심심찮게 써왔기에 주변에서 다들 백세건강은 보장한다며 부러워했던 터다. 체질상 성인병 염려도 없는 데다 나름 뼈의 강도를 높이고자 관리를 잘 해왔던지라 다른 어느 부위보다도 믿었던 뼈 건강. 헌데 배신도 유만부득,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나빠졌다는 말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간 해온 운동방법을 곰곰 짚어봤다.



물론 건강 효과만을 셈하며 걷지는 않았다. 걷는 게 좋으니까 걸었다. 운동 중에 잘할 줄 아는 운동이라고는 걷기밖에 없기도 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뜀박질은 보통이라도 걷기는 잘했다. 외갓집 가는 삼십 리 길도 잘 걸어 다녔다. 많이 걸어서인지 발도 크고 다리통만은 굵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엄전한 성격다이 걸음새는 퍽 조신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늘 칭찬받다 보니 여식다운 그런 태도는 더욱 고착돼 갔다. 할아버지만큼 나이 든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랬다. 고개 수굿하니 땅 꺼질세라 얌전스레 살살 내딛는 걸음걸이는 영락없이 조선조 여인이었다. 당장 교육용 유튜브를 보며 '바르게 걷기' 동작을 훈련했다. 그 후 씩씩한 군인처럼 바른 자세로 보무도 당당히 팔 내저으며 활기차게 걷기 시작했다. 차츰 어깨도 펴지고 자세가 바로잡혔다. 그러나 보폭 넓혀 걷기는 당시 별로 주목하질 않았다. 걷는 방법이 틀렸던 셈이다.



사람은 움직거리려면 걸어야 하기에 걷는 자체를 쉽게 생각하지만 운동이 되는 걷기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은 걸을 때마다 거의 산책하듯 천천히 설렁설렁, 조신하게 살살 걸었다. 어느 땐 맥없이 터덜터덜, 가벼이 사부작사부작, 느리게 어정어정, 힘 빠진 듯 타박타박 걷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독일병정처럼 박진감 넘치게 저벅저벅, 사관생도처럼 성큼성큼 힘차게 걷기로 한다. 보폭을 넓혀 걸어보니 확실히 하체에 체중이 실리며 장딴지와 허벅지 근육이 강화됨을 느꼈다. 흔히, 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는 데 도움 되는 운동으로 걷기만 한 게 없다고 한다. 이렇듯 걸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두뇌의 광범위한 부위를 자극하면서 단련되기 때문일 터다. 그러려면 최소한 시속 6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걸어야 한다. 이는 무서운 개가 길거리에서 쫓아올 때 점잖게 내빼는 수준의 속도라고. 걷기 운동을 하되 주먹만큼만 더 크게 발자국 떼어놓기가 요체다.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건강한 습관으로 길들이면 활기찬 인생 후반부가 열리게 마련이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단 운동으로 걷기를 선택했다면 30분 이상은 걸어야 운동 효과를 본단다. 이에 몸이 익숙해지면 좀 더 자주, 좀 더 빨리 걸어 전체적인 운동량을 늘리는 게 좋겠다. 걸을 때 팔에 무리한 힘을 가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흔든다. 걷기 운동에서 발을 딛는 요령은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하고 그다음 발 앞꿈치 쪽으로 걷는다. 턱을 당겨 목을 바로 세우고 고개 떨어뜨리지 않도록 시선은 전방 15도가량 위를 보는 것이 바람직. 반면 잘못된 걸음걸이로 인해 근육 신경 골격 등에 무리를 줘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상체를 뒤로 젖히고 걷을 경우는 허리 디스크 위험이 있으며, 등 구부정하게 걷는 사람은 목이나 어깨 체형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이처럼 걷기에 대해선 도가 튼 양 뭐든 다 아는척했다. 남들보다 보조도 확실히 재빨랐다. 종종걸음이었던 것은 다리 기럭지가 짧아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폭이 좁았던 것이다.



'걷기는 온몸의 감각이 열리는 시간이며 내 몸과 만나는 시간이며, 내 정신과 영혼이 만나는 시간'이라고 브르통은 <걷기 예찬>에 썼다. 그간 나 역시 오감이 총동원되는 걷기 자체를 무척 즐겨왔다. 걷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팔을 흔들며 균형을 바로 잡게 된다. 피부로 공기의 온도를 느끼고, 코로 냄새를 맡는 등 온몸의 감각이 다 동원된다. 이로써 걷는 동안에 뇌는 끊임없이 활동한다. 해서 걸을수록 뇌가 건강해지며 젊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나 보다. 걷다 보면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생기고 의욕 솟구치며 창의성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 점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란 책을 펴낸 프랑스 철학자 말에 격하게 공감한 바가 있다. "두 다리만 있으면 그리고 볼 수 있는 두 눈만 있으면 충분하다. 걸어야 한다. 혼자 떠나야 한다. 산을 오르고 숲을 지나가야 한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밑줄 굵게 긋고 싶을 정도였다.



중년 또는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들은 젊은이에 비해 걷기 운동에 의한 혈당 및 중성 지방이 낮아지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따라서 진심으로 부모님 건강을 생각한다면 자녀들은 어른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는 게 옳다. 걷기는 힘든 운동이 아니다. 다리 관절에 문제만 없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운동이 걷기다. 그럼에도 걷기는 전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걸으면 열량이 쉽게 소모되는 것은 물론 뼈나 근육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반면 걷는 것 자체를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걷는 것도 심장에 부하를 거는 운동이다. 고로 저혈압인 사람은 지치지 않을 정도로 시작해서 이후 점차 운동량을 늘려가는 게 바람직하리라. 빈혈인 사람은 숨이 약간 가쁠 정도로 걸어야 호흡수가 늘어나면서 차츰 호흡 깊어져 심장도 빨리 뛰게 해 적혈구나 혈색소의 양을 늘릴 수 있겠다.



걷기의 운동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제대로 걸으면 다리 근육뿐 아니라 뼈마디 기능을 좋게 한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모두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햇볕을 쬐며 걷는다면 비타민 D 합성까지도 보너스로 얻는다. 햇빛이 건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 비타민D 형성과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햇빛을 쐴 때 뇌신경 세포 속에서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 생성이 촉진된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암세포를 죽이는 특수한 T-임파구와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을 만들어낸다. 고로 걷기가 심리적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짬만 나면 걸었다. 즐겁게 걸으면 나이가 들어도 뇌가 늙지 않는다고 했으니 일거양득. 알다시피 대가들도 글이 안 풀릴 때 펜을 놓고 밖으로 나가서 뒷짐 지고 걷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몸이 찌부드드할 때, 마음에 분노가 출렁일 때, 인간관계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뇌를 쉬게 하면서 일단 걸으라'고 한결 같이들 조언한다.



미국에 살면서 날씨만 괜찮다면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특히 캘리포니아에 와서는 걷기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제가 생겨 머리 무거운 날이라도 걷다 보면 어느새 어둡고 칙칙한 생각이 사라지게 됐으며 강박적이던 조급증 대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동네를 걸을 때도 여기저기 사진 찍어가며 신나게 돌아다녔고 자연 속을 걷노라면 기분 한껏 고양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무한정 걷고 또 걷는 카미노 길. 신심 깊어 순례길에 동참한다는 생각보다 걷기를 즐기기에 꼭 한번 그 길 걸어보고 싶었다. 실제 카미노 길을 걸으며 희열과 감동으로 압도당하는 경험을 수차례 했다. 길을 걷는 동안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고통이긴커녕 묘한 쾌감까지 느껴졌다. 무엇보다 카미노를 통해 걷기 운동 한번 실하게 제대로 해본 셈이다. 생각은 내려놓고 다리운동 팔운동에 심호흡까지... 그 덕에 건강 위한 보약 한 제 옳게 취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우린 필연적으로 늙는다. 대부분 나이 들수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강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겁내는 것이 치매 발병이다.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 치매. 최근의 의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것이 걷기란다. 그것도 보폭을 넓게 떼어놓으면서 성큼성큼 걷기다. 이제 산행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평지에서 제대로 걷기 훈련부터 다시 하고 있다. 보폭을 넓혀 걸으면 인지 기능 저하를 현저히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혈관에 탄력이 생기고 근육이 활력을 되찾게 된단다. 백세시대의 키워드는 곧 보폭에 있다는 말이 맞다.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빨리 그리고 꾸준히 걷는 것이 신경회로를 자극해 주므로 뇌의 기능 역시 활성화된다고 하였다. 즉 혈액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뇌로 전해지는 산소와 영양공급이 늘어 뇌세포 활동이 왕성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뇌 혈류를 개선해 주고 특히 기억 중추인 해마를 활성화시킨다는 것.



걷기를 가장 잘 실천하기로는 펜실베니아에 사는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 이들은 자동차 전기를 거부하고 18세기 방식으로 살아간다. 매일 농장 일을 하며 하루 평균 1만 3천~1만 8천여 보를 걷는다. 미국인 성인 평균치보다 여섯 배나 많은 걷기다. 무심코 걷지만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뇌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몸의 균형, 노면의 경사와 안전 여부 등 다양한 정보를 두고 두 다리와 뇌 사이에서는 복잡한 신호 교환이 이뤄지게 된다. 걷기가 일상화된 아미시들에겐 치매와 심장병 예방효과가 있는 고지단백(HDL) 콜레스테롤치가 매우 높다. 따라서 치매 발생률이 아주 낮고 만일 생기더라도 늦은 나이에 오는데 학자들은 그 까닭을 엄청난 양의 걷기로 본다. 해서 걷기 편한 운동화 차림을 생활화한다면 일단 치매로부터 멀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빠르게 걸으면 체중이 실리는 뒷굽 바깥쪽이 많이 닳는데 그처럼 속보를 즐기는 사람은 치매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 치매를 막으려면 무조건 치매가 발붙일 새 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이 필요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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