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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가 Aug 29. 2023

신뢰와 환대

짧은 여행기


오래전 리투아니아를 여행했을 때 일이다. 리투아니아 버스터미널에 자정이 다되어 도착했다. 주변이 어둡고 노숙자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조금 으슥하다고 생각하며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젊은 현지인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나에게 다가왔다. 이곳을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낯선 사람이지만 나쁜 뜻으로 그런 것 같지 않았고 왠지 그게 나을 거 같아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특별한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한국인이고 혼자 여행 중이다, 그 남성은 대학생이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한 뒤 조금은 어색한 채로 걸었다. 나는 걸었고 리투아니아 대학생은 나의 걸음걸이에 맞춰 자신의 자전거를 탄 채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숙소가 보이자,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리투아니아 대학생은 조심하라며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이 일을 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보통 "너를 데려다주겠다고 한 그 사람이 더 무서운 사람 아니야?" 라며 위험할뻔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내게 겁이 없다 말한다.


여행지에서 도움받은 일이 많은 나는 친구들이 그럴 때마다 '그런가?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믿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넘겼다. 친구들 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기에. 


그런데 최근 읽은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저자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에서 김영하 씨는 여행지에서 수없이 도움을 받았고, 그 바탕에는 현지인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고 말한다. 여행자가 보내는 신뢰는 환대와 쌍을 이루고 있어, 신뢰를 보내는 여행자에게 인류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했다.


나는 상대가 나를 돕기 위한 마음을 신뢰했고 그 신뢰를 얻고 있는 상대는 나를 순수하게 돕게 되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의심하고 두려워했다면 의심받은 상대는 나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었을까?


여행하며 100% 좋은 사람인지 나에게 해를 입힐 사람인지 옳게 판단할 수 없겠지만 상대를 신뢰함으로써 받는 환대도, 경험도 열리는 일이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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