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일기
응원봇과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일기는 솔직해지는 힘이 있다. 공감되는 지점이 있고, 공감되지 않아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전혀 다른 배경이나 생각을 갖고 있어도 일기를 읽으면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침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었다. 이 책은 퀴어이자, 노동자, (우울증) 생존자, 유머리스트, 예술가로서의 저자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에세이 붐이라 할 정도로 많은 에세이가 나오고 있고, 그 중에서는 당사자성을 내세운 책도 많다. 사람들은 그게 다소 질린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라고 했다. 동시에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결국 말할 수 있는 것이 세계의 한계인 것이다. 개인의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문보영 시인은 에세이를 쓰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지만, 일기는 편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경계에 있는 것이 블로그 글쓰기다. 블로그에 쓰는 이야기는 나 중심이지만, 결국 다른 사람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기만큼 솔직하면서도 에세이와 유사한 격식을 갖춘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무척 솔직한 책이다. 그러면서도 격식을 차리는 책이다. 이 책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을 예상하여, 책의 내용이 전부 거짓이라고 하면서도 그 거짓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거짓이라고 다시 부정한다. 어떤 솔직함은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이런 솔직함은 얼마든지 좋다. 일기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쓴 것 같지만 오랜만에 이웃 블로그의 일기만큼 잘 쓴 에세이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