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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Apr 12. 2024

[쓰밤발오17] 역지사지

나의 양가 할머니들은 외식하자고 하거나, 바람 쐬러 외출하자고 하면 종종 짜증을 내신다. 아니 분명 최근에 잘 나갔다 오셔놓고, 또다시 왜 심통 시즌이 찾아왔는지 모른다. 엄마는 상상만으로 그 과정이 힘드셔서 그러시는 거라고 설명했다. 혼자 계실 땐 거동이 불편해서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하시면서 이럴 때 손주들이랑 같이 나가면 좋을 텐데 왜 힘들 것부터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노화란 내가 아직 겪지 못한 경험이니 마음속 깊은 곳에 생각을 숨겨둔다.


무릎 내측 인대가 파열되고 나서야 무릎의 역할을 알게 된다. 걸을 때와 앉고 일어설 때는 물론 방향을 틀거나 앉아있는 중에도 무릎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 토요일에 있던 아빠 생신기념 외식으로 전부 외출해 점심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그냥 차 타고 빨리 다녀오자는 엄마의 말에 서러웠다. 화장실 걸어가는 것도 아파서 방광염이 나을까? 그냥 지금 아픈 게 나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진 하루를 보낸 나한테 어떻게 그냥 참고 가자고 할 수 있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무릎 통증이 점점 나아지자 양가 할머니가 생각났다. 어떤 마음으로 짜증을 내셨는지 이해가 갔다. 나가면 좋을 거 아는데, 이미 몸이 힘드니까 그것보다 나가려는 과정이 더 큰 진입장벽으로 느껴지는 거다. 통증이라도 더 심해져서 못 참을 것도 싫고, 차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과정, 차에 앉아있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전부 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굳이 힘들게 나가나. 당장 바지 갈아입는 것도 힘든데. 이런 생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다. 괜히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은 주변에 섭섭해지기도 하고. 대충 힘드시니까 그러시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실 주변도, 나도 잘못이 없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만 있을 뿐이다. 내가 무릎 다친 게 앞으로 살면서 마지막 부상이면 좋으련만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고, 노화는 당연히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몸이 약해진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 내 몸 상태를 좀 더 면밀히 관찰하고, 못 가게 될 경우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설명을 한다. 오늘은 유난히 더 통증이 있거나, 컨디션이 별로라서 못 갈 것 같다는 등의 이유도 반드시 첨언한다. 아, 그전에 선해하는 것부터. 내 몸 상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타인의 몸이라 잘 알지 못하고, 또 나에게 더 좋을 것 같은 제안을 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해야겠다. 


쓰다 보니 갑자기 웃기다. 첫 째는 내가 이런 이성적인 생각을 할 만큼 이제 무릎 통증이 없어진 것 같아서 웃기고, 둘 째는 몸이 안 좋아지면 이런 사고의 흐름이 가능할지 의문이라 웃기다. 그래도 외워본다. 무의식에 새기려고 노력하련다. 건강한 내 멘탈과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 번 더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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