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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Apr 13. 2024

[쓰밤발오18] 회피하고 싶은 날

그 어떤 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이다. 아직 응어리진 감정들이 용해되지 못한 채 가슴속에 찐득하게 붙어있는 날. 그렇다고 그걸 떼어내고 따뜻한 물에 풀어버리지도 못하겠는 날. 오늘이 그런 날이다. 


무릎을 다치고 나서 일상에 제한이 있는 건 차근차근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수면의 질이 수직하락한 것이 신경 쓰인다. 예상하지 못했어서 더 그런가. 하루에 꿈을 몇 개를 꾸는지 모르겠다. 지나간 인연들이 나와 나에게 섭섭했던 점을 말하거나, 내가 이루지 못한 꿈들이 나오거나 내가 전에 풀어내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것들이 꿈에 등장해 힘을 쪽 빼놓는다. 원래라면 아침에 그런 기분이라도 수영장 물에 함께 녹일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괴롭다.


그래도 하루를 시작한다. 지켜야 할 루틴들을 다 지켰다. 산책도 다녀왔다. 그래봤자 아파트 단지를 못 벗어나지만, 겹벚꽃도 구경했다. 정성 들여 사진을 찍고 내 입맛에 맞게 보정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균형이 다 깨져 힘을 더 들여가며 느릿느릿 걷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지낸 지 일주일. 생활은 적응됐는데 자꾸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자주 속상하다. 여러 생각들이 엉켜 응어리진 감정을 먼지덩어리 만들듯 굴린다. 풀어보고 싶지도 않다. 못난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피해야 하고 의미 없는 짓이 과거를 가정해 보는 건데 후회와 미련 가득 담아 가정해 본다. 그냥 빨리 받아들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자신한테 솔직한 거,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구나. 내가 어려운 다짐을 했구나. 오늘만 마음에 묻어두고 잊지 않고 다시 꺼내볼게. 그런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오늘은 회피가 필요한 날이다. 회피할 기운밖에 남지 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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