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살 루아

갑자기 유후인

새해, 첫겨울 여행

by 알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은

영원히 가지 않을 가능성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마스다 미리,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중에서



답답하고 무거운 소식들. 식구마다 가진 큰 근심과 사고들이 나에게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었다.

새해와 생일을 보내며 '사는 게 뭔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지금 가자! 길게 쉴 날이 또 언제 올지 모르잖아."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으로 돌연 퇴직을 선언했다. 이사를 한 후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꼬박 8개월을 일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앞으로 계획은? 묻고 싶었지만)

'고생했다' 한마디 해 주었다.

퇴직한 다음날 소파에 누워 사뭇 진지한 얼굴로 프라이팬 쇼핑을 하는 그를 보며

참... 같은 꿈을 가진 남자와 사는 건 녹녹지 않구나 느꼈다.


나의 오래된 꿈은 센터족.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해서 비교적 출퇴근이 자유로웠던 나는

틈만 나면 무엇을 배우러 다녔다. 그중에서 백화점 문화센터로의 출근이 가장 체질(?)에 맞았다.

아침 시간에 할머니들과 영어회화를 배우고 출근하거나, 꽃꽂이 수업을 들을 때면

나에게 어르신들은 새댁~ 하며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그 새댁놀이에 흠뻑 빠져서 결혼하면 일을 꼭 그만두리라. 태교로 그림책 작업을 하며

단정한 살림살이를 해 보리라 꿈꿨다.


그런 꿈을 또 꾸는 이가 있으니 바로 남편. 일을 좋아했던 나에게 신여성을 강조했지만

나는 결혼 후 재택으로 일하다 출산 후 일을 하다 말다 하게 되고... 점점 일이 없어지자

부쩍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그가 퇴직하자마자 벼르던 프라이팬 6종 세트를 주문했다.

사은품과 크리스마스 그릇을 잔뜻 뜯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불안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다.


일단 고! 갈 수 있을 때, 아니 가자! 할 때 가야 한다.


여행은 기분을 거의 반강제로 바꿔야 했다. 바꾸지 않으면 여행을 떠날 수가 없으니까.

일주일 후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정했다(이건 남편이)

숙소 근처는 어떤 동네인지, 뭘 먹을지, 구경할지 구글맵을 보며 폴더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었다.

코로나 이후 여행의 큰 감흥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침에 혼자 새로운 동네를 산책할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인천공항에서 작은언니와 잰잰들(조카 2,3호 애칭)을 만나 6시간 정도 공항에 체류? 했다.

걱정 많은 J인 우리 자매는 서로를 잃어버리거나 놓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일찌감치 점심때부터 만났다.

후쿠오카 공항에는 대기시간의 반도 안 되는 1시간 반 만에 날아갔다.


"영종도에서 잠실 가는 시간보다 빠르네." (그의 퇴근 거리)

한숨 쉬듯 나직이 내뱉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왔고. 추운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배고프고 지쳐있는데

렌터카 담당자분이 카톡 메시지를 읽지 않아 불안했다. 언제 렌터카가 언제 올지 몰라

식당에 가기도 애매해서 급한 대로 기념품 가게에서 카스텔라를, 약국에서 물을 샀다.


아이들이 허겁지겁 카스텔라를 먹기 시작하는데 렌터카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유후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루아 혼자였으면 어땠을까 기다리는 시간마저 서로 도닥이고 카스텔라를 입에 넣어주는

조카들을 보니 든든했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 작은 시골마을인 유후인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조수석에서 내비게이션을 감시하는데 차선도 반대이고, 달리는 차보다 지도의 움직임이 느려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더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늘 그렇듯 넉넉한 여행이 아닌지라 좋은 료칸이 아닌

복층 레지던스 하우스를 빌렸는데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신이 났다.

작지만 효율적인 화장실과 지붕이 뚫린 히노키탕이 마음에 들었다.


첫날은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늘 뒤척이다 3시에 깨는 수면 패턴이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7시였다.





어떤 여행은 날씨나 코끝의 공기, 냄새로 기억할 때도 있다.

이번 여행의 기억은 손끝에 닿은 감촉으로 기억된다.

물에 손을 넣어 닿은 가오리 몸, 손등으로 살살 쓰다듬었던 부엉이 등.

파르르 움직이는 깃털의 묘한 진동이 깊이 남았다.


겨울 여행은 따스한 입김 같다.

춥고 고돼도 끝끝내 따스한 무언가를 뿜어낸다.


눈 내리는 온천에 키 큰 열대 식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

코를 반쯤 담그고 매서운 눈을 가진 온천 속 악어들(공포스럽기도 했는데 왠지 상팔자라 느꼈다ㅋ)

루아를 부둥켜안고 온천탕에 들어갔는데 머리에 코에 작은 눈꽃송이가 내려앉을 때


겨울을 따스하게 하는 건 이렇게 작은 눈꽃, 후~ 하고 숨 끝에 달린 따스한 입김일 거다.

작은 시골마을을 감싸는 설산.

바람에 따라 물결치는 풀들을 보며 고요하게 살아있다는 존재감.

스스로를 지키고 주위를 데우려는 의연함이 느껴졌다.




유후인에서 차를 타고 40분쯤 벳푸로 넘어갔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우미타마고 수족관에 가기 위해서다.

벳푸 만을 바라보는 수족관 시설은 어쩐지 유행 지난 지방의 놀이동산 같아 실망했는데,

반전의 반전이었다. 겉에서 본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도 동물들이 노는 것을

볼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탁 트인 벳푸 만을 배경으로 헤엄치는 돌고래들. 사육사들의 먹이 통에는 동물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부부'라는 바다코끼리의 쇼를 봤는데 힘들다기보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같았다.

오랜 훈련과정을 거쳤겠지만 열심히 생선을 먹으며 '거참 밥 먹기 힘드네' 하며 너털웃음 지을 것 같은 포스였다. 쇼가 끝나고 쉬는 모습이나 사육사와 교감하는 모습에도(외국어의 이해 차이일지 몰라도) 조금 안심됐다.


기억에 남는 일은 불가사리, 물고기, 가오리, 바다코끼리를 만질 수 있었는데

가오리의 촉감이 잊히지 않는다. 아주 부드럽고 촉촉한 융의 느낌이랄까

수심에서 가오리가 망토 같은 몸을 펄럭이며 등장할 때 그 카리스마에 입이 떡 벌어졌었는데

생각 외로 보드랍고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루아는 쇼를 다 보고 바다코끼리를 자처하며 온갖 소리와 행동을 따라 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뿌우~ 한다던가. 내가 사육사처럼 "세노~!"하고 시작 사인을 주면,

손으로 배를 툭툭툭 친 다거나 박수로 호응을 유도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럴 때는 정말 세상에 귀여운 것을 다 모아 만든 아이같다.



나는 사실 동물원은 싫고, 수족관은 보통이다.

어쩐지 동물이 원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고, 학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관람하고 나면

기분이 늘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동물을 기른 경험이 없어서인지 동물과 교감하는 느낌을 잘 모르는데다

겁이 많은 편이다. 파충류, 양서류는 아주 무서워하고, 새도 마찬가지다.

참새나 작은 새들은 사람을 보고 놀라 달아나서 귀엽지만 전투적으로 다가오는 비둘기는

최선을 다해 피해 간다. 그런 내가 부엉이의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유후인 플로랄빌리지 안에 작은 부엉이 숲이 있다. (숲이라기엔 작은 코너 같은 곳)

입장료를 내고 나무 문을 연 순간, 나뭇가지에 각양각색의 부엉이들이 실눈을 뜨고(자는 거였나) 꼼짝도 없이 앉아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눈이 살짝 내려 언 길이라 조심조심 발가락에 힘을 주고

얼굴 앞에 손을 대면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긴장했다. 가장 순해 보이는 부엉이 옆에 다가가

손등으로 등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니 털의 결이 사르르 다른 무늬를 만들어 낸다.

묘한 진동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고개를 확 돌리는 부엉이도 있었지만 다행히

날개를 펴거나 공격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낮시간이라 가수면 상태라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집에서는 기침이나 생각들로 뒤척이던 밤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을 소몰이하듯 돌아다니니 눕기만 하면 단잠에 빠졌다.


복잡해 보이는 쇼핑은 과감히 생략했다. (사실 거의 포기에 가깝지만)

연기 나는 온천의 유황냄새에 코를 막는 루아가 귀여워 웃고

그림 같은 설산과 일본의 색다른 산새에 감탄했다.

자유여행에 처음인 조카들이 루아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고맙고

편의점 과일 슬러시를 만들며 "이거 티브이에서 봤던 거예요!"

기뻐하며 어느덧 소녀가 된 조카들을 보니 어찌나 예쁜지.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나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능한 아내, 예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상적인 나를 추구하면서 그렇지 못한 나의 한심함에 실망하면 무엇하랴.

"가오리 멋지지 않아?" 하고 말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나도 제법 괜찮지 않나?

펄럭이는 가오리를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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