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살 루아

'아이스핫초코 엄마'로는 안될까요?

by 알미


예전에 재미로 해 본 어느 심리테스트 결과가 요즘 나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해 주는 기분이다.

"당신은 '아이스핫초코'같은 성향이군요!"


어쩜! 한눈에 '나'임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보글보글 끓던 고민의 시간들을 단박에 정리해 주는 기분.

아이스와 핫! 공존할 수 없지만 마음속에 늘 공존해서 고민이 길다.(깊이보다 머뭇거림이 큰)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 하지만 나를 설득할 수 있게 되고,

결심이서면 그런대로 괜찮지 않나?

인생은 그래도 쌉쌀하고도 달콤한 것이라 위안한다.


'아이스핫초코' 성향으로 사는 게 적응하며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되니 종종 난감해진다.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필요해 보이고...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지나칠 정도로 고민이 많다.

데이터를 모으고 주변의 리뷰를 들어도 실행에 옮기기까지 오래 걸린다.

문제는 효율적인 고민이 아닌,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이다.


새해가 되고, 아이는 어느덧 예비 초등학생인 7세가 된다. 자신 있게 두 손가락으로 7을 보이지만

땡! 하면 언니모드로 넘어가는 건 아닐 테지만 한철을 지내지 못하고 작아진 옷도 생기고 대화의 깊이가 조금 더 생긴 것 같다 예를 들면,


- 엄마 나는 선택을 잘 못하는 것 같아."

- 왜 그렇게 생각해?

- 내가 치마를 입고 가며언~ 친구들은 꼭 바지를 입고 오더라구우~

소풍 때도 그랬어. 내가 뽀로로 음료수를 가져가면,

친구들은 어른 음료수를 가져온 거야. 그래서 다음에 어른 음료수를 가져가니까

다 뽀로로 음료수를 가져온 거 있지?!


아. 아직도 귀엽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주변도 의식하기 시작하고... 참 많이 컸구나.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는 한국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제법 눈에 보이는 글자가 많아지고,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니 한글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가. 나. 다. 쓰기 한번 안 하고 책 읽기와

엄마의 성대결절을 유발한 폭풍 수다 덕이라 생각하니 내심 뿌듯했다.

그래 틀리지 않았구나! 그 마음도 잠시,

아이는 알파벳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영어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노잼 언어가 되어 담을 쌓기 시작한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뿌리를 단단히 해줄 교육이 필요했다. 물어보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주변의 어학원 상담을 신청했다. 경제적, 시간적으로도 보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십여 년 몸에 베인 방송작가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모르면

다방면의 자료를 모으고 자문할 사람을 들을 구하고 섭외한다.

학교 가기 전까지 자연을 벗 삼으며 마음껏 함께 놀겠다는 다짐은 옅어지고...

뒤쳐질세라 전전긍긍 몇 주 데이터를 목으고 상담을 신청했다.

학습지, 학원은 안 하겠노라 마음먹었지만

예비 초등생 엄마가 되어 보니 주변 엄마들의 심상치 않은 행보가 신경 쓰였다.


공부뿐만은 아니었다. 키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체중이 늘어가는 것도 걱정됐다.

10살 전까지 아이의 운동, 공부, 식습관을 잡아 주면 아이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육아를 돌이켜보면 책 읽기 외에는 늘 따라가는 육아였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관련된 것들을 보여주는 식. 색깔을 좋아하니 색깔로 마음을 물어보고,

퀴즈를 내는 그런 식이었다.


아이가 폭발적으로 학습한 것을 습득하는 나이일 텐데

한참 나태한 교육관을 가진 것이 아닌가 불안해졌다.

아이도 태권도, 수영, 영어, 수학, 공부방 등등 학원차를 타고 집에 가는 친구들을 보며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해보고 싶어. 저건 재미있을 것 같아. 는 식으로 뽐뿌질을 해오니

'아, 이제 좋은 시절은 끝난 건가!'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줄넘기 학원도 보내야겠고, 영어도 끈을 놓으면 안 될 것 같다.

유일하게 다니고 있는 학원은 미술뿐인데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했더니 절대 안 된단다.

악기도 좀 배웠으면 좋겠지만 미룬다 치더라도 국어, 수학, 한자는 미리 학습지라도 해야 하나?


오 마이 갓. 그러면 언제 널브러져 놀지? 나는 다 쫓아다닐 수 있을까?

서로 꼭 붙어있길 원하는 아이가 엄마 없이 학원차로 옮겨져 하원을 해야 하는가?


도대체 몇 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이 이상적일까.


멀미주의보.

멀미가 온다.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모순이 충돌하는 '아이스핫초코'만의 강력한 멀미가 오고 있다.


남(의) 편은 대답대신 입(을) 꾹! 권법을 썼다.

이제 결혼 7년 차. 자칭 궁예가 되어 관심법으로 듣는다.

이렇게 (보내고 싶은 거 다 하려면 네가 현역처럼 일해야지. 쯧쯧) 말하고 싶은 거겠지...


달콤한 거라도 먹고 진정해야겠다.

아이스핫초코 엄마의 단점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인가 보다.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 하는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 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 김하나 x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중에서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와 아이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한창 귀여울 때 귀찮다고 핸드폰 보는 나부터 단속한다.

카톡 하면서 놀아줄 게 아니라, 짧더라도 제대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 보자.

나부터 바른생활 습관을 가져야겠지. (제일 어려운 일을 아이에게만 하라고 했구나!)


'친구보다 엄마를 좋아해 주는' 지금 이 순간! 이 중요하니까.

아이스+핫한 고민에 얼른 초코 시럽을 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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