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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Aug 13. 2021

거리두기와 휴원 사이

 지난달, 남편의 직장 근처에서 하루 만에 100명의 확진자가 생기고 어린이집은 휴원 조치가 내려졌다. 짧은 고민 끝에 야반도주하듯 짐을 꾸려 친정집에 내려왔다. 집을 떠나는 일은 늘 잠깐의 고민을 동반한다.

 '괜찮을까? 짐은 어떻게 하지?' 모래알처럼 작지만 까슬한 걱정. 여기에 나처럼 결정장애를 가지면 짐 싸는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된다.

“지금 고민은 사치입니다." 단톡방에서 응원과 재촉이 아니었다면 3주간의 폭염과 코로나 속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아찔하다.


완전한 시골은 아니지만 널찍널찍한 도로와 오랜 세월 끝에 정돈된 산책길. 내가 떠나온 사이 대학병원, 카페 , 영화관, 마트로 풍성해진 동네가 되었다.

제일 좋았던 건 잠깐 딴생각을 해도 아이와 놀아 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것.


자식들이 출가하고 부모님과 할머니가 사시는 대전집은 아이로 활기가 생겼다. 엄마가 잠들어 있어도 혼자 일어나면 맛있는 식사로 반겨주는 할머니, 운동하고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며 할아버지 샤워장면을 감상(?)   대가족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며 가족들 명칭을 외운다. (   아기는 서서 샤워하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운동 같은 거였나 보다. 어른보다 착실한 아기의 성장이다)


기도 소품이 많아 출입금지되는 왕할머니의 방도 이때쯤 열리니 아침이  즐겁다. 왕할머니의 새하얀 머리카락과 손주름, 이가 없는 잇몸은 매번 신기하듯 가리킨다.


할아버지 출근인사가 끝나면 할머니와 엄마 손을 잡고 근처 마트나 뒷산으로 산책을 나선다. 중간중간 간식과 주스를 마시면서 오전 스케줄을 마치면 돌아와 욕조 물놀이를 하고 밥을 먹으면 낮잠  시간이다. 할머니의 존재는  크다. 아기의 다른  손을 잡아주고, 아이의 반찬 고민을 덜어준다.

아기랑 실컷 낮잠을 자고 나면 따뜻한 옥수수나 고구마가 기다리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와 나물을 다듬는다. 육수를 끓이는 냄비와 보리차 알을 담은 주전자는 쉴 틈이 없다.


3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의 일이  일이 되어 쌓여있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묵은 먼지를 털고 보리차를 끓이니 하원  시간이다. 등원마저 매일 하지 못하게 이어지는 4단계 시기.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보고 싶은 친구들도 늘어나고 물놀이도 못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오늘도 마스크에 코 땀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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