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가 주는 위안
“딴딴 따단 딴딴 따단”
결혼행진곡을 따라 부르는 아기.
“누구랑 결혼할 거야?”
“아빠랑”
조그맣고 동그란 아기 입에서 아빠랑. 하는 순간
감동받았겠지? 짐작하며 남편을 바라본 순간
“아빠는 한 번이면 족해.”
감동이 와장창 무너졌다. 서운한 마음에
“다시 태어나면 결혼 안 할 거야?”
“음... 그냥... 연애만 하면 안 될까?”
그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단호한 대답에 어쩐지 울적해졌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그를 지치게 한 건가. 나를 만나서 기쁨보다 고단함이 큰 건가. 말수가 적은 남편은 아기가 나에게 온 틈을 타 어느새 누워 편안한 표정으로 낮잠에 빠졌다.
나만 생각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도 나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을 거다. 나도 계절을 앞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들은 어떤 것에 끌릴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활짝 열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오로지 아기의 둥근 몸과 마음, 작은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 등 하원 하는 작은 산책길, 집과 부엌, 멍하게 이끌려가는 휴대폰 속 작디작은 세상에 점처럼 숨어있을 뿐이다.
이 작은 세계가 아주 싫지만은 않다. 다른 사람들과 억지로 부대낄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고 어필해야 할 필요도 없다. 티가 나지 않지만 내 아기, 가족들의 작은 것을 돌보며 잠깐의 시간이라도 커피를 타서 글을 쓰고 내 마음의 우물이 마르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충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통장 잔고만 여유롭다면 계속하고 싶을 만큼.
작은 세계가 주는 깊이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파래져가는 가을 하늘에 한번, 때때로 신경질이 나지만 "엄마 화났어요?"하고 내 표정을 읽어주는 아기의 얼굴을 부비며 감사함을 한번 더 느낀다면.
내 세계는 깊어지리.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작은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에서
오늘도 나의 작은 세계, 이 숲에 가을바람이 분다.
하루 속 숨은 기쁨을 찾아내야지. 더 추워지기 전에.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것인지 묻는다면,
"난 결혼할 거야. 다른 사람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