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지나면 많은 게 달라지겠지
아기를 등원시키고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눈썹을 메꿔본다. 티셔츠를 외출용 셔츠로 갈아입고 커피를 타서 책상에 앉는다. 오디오를 체크하고 10시 회의시간. 십 분간 정비를 더하고 회의가 시작됐다.
오늘의 안건은 청년취업 사업에 대한 통합브랜드를 네이밍 하는 것. 알맞은 작명 아이디어를 얻고자 궁금했던 점을 담당자에게 묻는 회의였다.
“더 궁금하신 거 없으신가요?”
손을 들까 말까~ 화면 속에 나도 어색하고
이 질문을 해도 되나 마음속에서 한번 더 여과시켜 보는데 여기저기 질문이 쏟아진다.
질문을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떻게 저리 조리 있게 말할까.
같은 말인데 단어가 전문적이고 뭔가 우아하다.
한 시간 반 정도 짧은 회의가 끝나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하아~ 난 왜 이렇게 말을 천둥벌거숭이처럼 했을까. 한가닥 뻗힌 머리카락처럼 쏙 올라온 열등감에 씁쓸하다.
“권작가 잘 지내?”
회의를 마친 선배님의 전화였다.
“요즘 뭐해? 난 공부하고 있어.
코로나 시기가 공부에 적기더라고.”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된다고 하지만
공부라니.
“와 멋있어요. 전 그냥 존재하는 것만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오늘 회의하면서 뭔가
부끄러워졌어요.”
“자기도 느꼈어? 나 그래서 요즘 대학원 다녀
나이 드니까 일적으로 얘기할 때 좀 전문적이고
싶더라고.”
몇 주전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해보고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은 적이 있다.
미디어에도 종종 칼럼이나 인터뷰 기사에 나오는 여성 크리에이터이자 대표가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사람 여기 왜 지원했지?”란 궁금증이
들었다며 연락이 왔다.
인사를 하고 초면인 상태에
내 자기소개서를 읽더니 아..
짧은 탄식을 한다.
“제가 이 한 줄을 놓쳤네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요.”
조금 긴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좀 서글퍼서 훌쩍거렸다.
“아이가 19개월밖에 안되는데
벌써 어린이집에 맡겨요?”
“아이가 5,6살만 돼도 생각해보겠는데
우리 일은 재택이 안돼서... 아기 때문에 라는 말이
나오면 뭐라 할 수 없잖아요”
다 맞다. 이해도 된다. 그래도
“저도 엄마가 처음이라.
조금은 아이와 분리되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기회가 똑같이 오나요?”
다시 묻고 싶었다. 그런데 바보처럼
“그렇죠. 이해합니다” 덥석 수긍해버렸다.
난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제일 하드한 경력을
쌓고 있는데 말이라도 멋지게 했어야지. 끙.
아기를 낳고 나서 달라진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회적으로 약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없어도) 늘 약자라 생각했지만.
정말 물리적으로 약자다.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없는 가게도 많고 아이가 다칠세라 아플세라 초반에는 극도의 불안감이 밀려온다(이런 불안감에 매일 밤낮 울어대서 그 파라다이스라던 조리원도 조기 퇴소한 쫄보다)
인터뷰에 당당한지 못했던 나.
회의 때 전문적이고 조리 있는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 나.
어디까지나 나를 더 약자로 만드는 건
나 스스로가 아닐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 지금 내 삶도 선배 작가님의 삶도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 걸 거다. 지금 나는 아기를 통해 감탄(성장의 신비여~)과 불면, 인내를 배워나가고 있고, 작가님은 언택트가 가능해진 세상에서 미뤘던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더 많은 기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것이다. 이 시기에 한 가지만 확실히 연마해도 당신이 원하는 조건이 아니어도 난 열심히 살았다고 당당히 말하며 일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