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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세살 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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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Dec 29. 2022

계절의 냄새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기대고

계절의 냄새를 손으로 잡았다.


-안나 드 노아유의 시 '자연에 받침'의 한 구절


어제만 해도 숨이 턱 막혀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큰 창이 달린 식탁에서 침침한 하늘과 바다, 그 속에서 묘하게 빛을 내고 있는

아침 해를 보고 있으니 '사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된다.


3주가 넘도록 루아는 새벽마다 일어나 오열하고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짜증을 냈다.

한 번은 너무 지쳐 시간을 재봤더니 55분간을 악을 쓰며 울었다.

포기하고 바라만 봐도 화를 내고, 안아도 발버둥 치고 다른 공간으로 몸을 피해도 쫓아오며 소리친다.


12시- 2시 반- 4시

나는 10시에 루아를 재우고 이렇게 일어나 내 작업시간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는 잘 자다가도 큰 애착인형(나)이 없어진 것을 알고 무섭다고 소리친다.

이렇게 잠이 부족한지도 3주가 넘어가자 표정이 굳어지고

아침에 만나는 엄마들에게도 웃으며 인사할 수가 없었다. 누가

"괜찮아요?" 물으면 왈칵 눈물이 고였다.

36개월이 지나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온몸, 온 마음을 동원해 나를 괴롭게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넋두리를 하니

"요즘 부쩍 무섭다는 이야기를 해요. '매일매일 엄마 아빠와 놀고 싶은데 아빠는 매일 회사에 가고

엄마는 일을 하면 나는 혼자 무서워서 어쩌지?' 힘드시더라도 더 많이 시간을 가지고 안아주세요" 하셨다.


이상하다. 나는 루아와 단둘이 있을 때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루아가 잠든 새벽이나 아빠가 있을 때만 일했다. 매일 등하원을 같이하고 밥을 먹고 씻고 아빠가 퇴근하고 시간을 보내는 한두 시간 외에는 나와 함께였는데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급기야 등원거부까지 이어졌다. 너무나 차분하게


"오늘은 아무 데도 가기 싫어 엄마랑 집에 있을 거야"


함께 있는데도 외롭고 충분하지 않은 기분.

다 같이 모였는데 엄마의 시선은 동생에게만 혹은 언니에게 머물 때

남자친구와 만났는데 핸드폰만 볼 때


나도 모르게 아이를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잘 논다 싶을 때는 집안일을 하거나 핸드폰을 수시로 봤던 것 같다.

나가자. 나가서 재미있게 놀자!

내 사랑을 의심한다면 믿게 해 주지.

서로 잠깐 떨어져 있다 해도 지금 서운하게 할지라도

나는 너와 꼭 다시 만나서 흠뻑 사랑하게 되는 사이.

지금은 그것을 일깨워주는 시기 같다.


영아일 때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통하지만 지금은 소통하며 존중해줘야 하고

규칙을 알려줘야 하며 주도적으로 혼자 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하는 시기이다.

어디까지가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자립을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걸까..


"루아야 저기 하얀 거품을 내면서 움직이는 게 파도야. 파도를 직접 보니까 어때?"

"시끄러워. 그리고 돌을 때리고 있어.

돌이 말썽꾸러기인가 봐. 이 말썽꾸러기! 하면서"

루아가 악을 쓰며 울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그렇게 큰 목소리가 있는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는 화낼 줄 몰랐던 나였는데

아기에게 내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말했다.

"시끄러워! 이제 제발 그만 좀 해!"


소리를 지르고 나면 찜찜하다. 가장 약한 존재에게 나의 추악한 민낯을 보인 기분이 든다.

내가 지금 파도의 역할인가. 아기를 때리라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힘을 싣고 세차게, 어느 날은 햇빛을 머금고 따뜻하게

멈추고 싶고 이제 그만 평행선에 가서 내 몸을 누이고 싶다. 쉬고 싶다.

그렇지만 파도가 멈춰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육아는 끝이 없고 도망칠 수 없어서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험난한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

아이에게 어떤 것들을 심어줘야 건강하게 잘 자라날까


시끄럽고. 쏴아 쏴~  파도소리를 들으니 좀 속이 뚫리는 것 같다.

이 와중에 무슨 바다야.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바다를 봐서 시원했다.

삼일 내내 춥고 비가 왔어도 오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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