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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Aug 21. 2023

조금은 다른 회춘의 기쁨

마흔즈음에

 하루가 더디가는 듯 하다가도 한달은 생각보다 빨리 지난다. 

3일 열감기로 맘졸이는 밤이 끝났고, 아이는 항생제 없이 감기를 이겨냈다. 가까스로 8월 카드값과 대출이자를 넘겼다. 


20대 초반에는 막막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막연히 꿈꾸면서 다가갔다 아직 20대니까. 지금 하는 고생을 나중에 하진 않을테니.. 하며 힘을 얻었다. 

30대로 넘어오면서 제법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마흔에는 안정될 수 있겠지? 인생의 한페이지를 넘기고 아파트 광고 속 여주인공처럼 "행복해요" 라는 미소를 짓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막상 마흔이 되니 이상하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느낌이다. 나름 충실하게 지내왔는데 매일매일 가위표 그어가며 버티는 삶이 된 것이다. 


남들 대학갈 때 대학가고 결혼할 때 결혼하는 그런 삶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면 길이되고 나만의 길의 한가운데서 꿋꿋이 서 보겠노라고 고군분투하던 20대가 지나니 불안해졌고 늦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30대의 마지막을 보냈는데 왜 다시 막막했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걸까? 체력이 고갈된 40대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간 회춘이라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결정들이다. 평범한 일보다 불안하지만 내가 재미있는 일을 선택했고, 고단했지만 즐거웠다. 간간히 실업과 부당한 처우도 받았다. 그래서 해야할 일과 안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아이를 낳고 내몸을 돌보기보다 아이가 주는 사랑과 고통에 집중했다. 후회는 없지만 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 들까?


"아 오늘은 행복만 남았다!"


샤워를 마치고 루아의 덜 말린 머리를 쓰다듬는데 불쑥 나온 이 말. 특별히 무언가 해준 것이 없는데도 아이는 그저 이 좋은 기분으로 행복이 남았다고 한다. 낮동안 한탄하며 뱉었던 나의 말들이 부끄러워진다. 


"행복이 남았어? 다른 마음들은?"

"응! 정말 재밌는 하루였어. 핑크색이야. 엄마는?"

"엄마는 슬픈 바다같은 색이었는데 지금은 기분 좋은 하늘색이야!"


루아와 뒹구르하며 하루동안 느낀 마음을 나누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처음엔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보다가 잘 얘기하지 않는 것 같아서 색깔로 물어봤더니 정말 좋았던 날은 핑크, 보라. 화났던 날은 빨강으로 이야기 한다. 꿈과 현실은 평생선처럼 결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대엔 닿을 수 있다고 믿었고, 30대엔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40대엔 꿈과 현실은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막막했던 20대의 마음으 돌아가는 씁쓸한 회춘이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이. 묵묵히 40대를 걸어봐야겠다. 내일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아침을 맞아야지. 


"내일도 행복을 남기는 하루보내자" 하고 아이를 토닥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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