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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Feb 21. 2023

굳은 살이라고 안 아플쏘냐

해고 통보에 대하여

 해고 통보에도 도리가 있다. 적어도 몇 개월 전, 몇 주 전에는 분위기라도 알려줘야 한다. 

어제 황당한 통보를 받고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잡다한 일이라도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임했다. 팀작가 제의도 거절했다. 다른 일도 거절했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해내고 싶었다.


어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2분. 변명은 2분 뿐이었다. 팀 내부사정으로 자막 작가를 쓸 수 없게 됐다고 

어제 녹화 후 밤 10시에 결정된 통보라 지금 목상태가 안 좋은데도 직접 말하는 거라고 2번이나 강조했다. 

안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최소한의 스텝들만 알고 함구하는 것. 그래서 출연자들이나 외부의 다른 스텝들은 통보를 받는다. 나도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뭘까. 하루 종일 멍하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앞으로 대출이자 걱정도 앞선다. 문제는 태도였던 것 같다. 미안하지 않아도 정말 미안한 마음. 최소한의 사과가 없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얼굴도 모르는 스텝이지만 이렇게 단숨에 자르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몇 주의 말미도 없이. 

단순한 통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밥줄이자 정해진 일상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미리 분위기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묻자 같은 말만 반복한다. 우리도 지금 알았다고. '거짓말'임을 안다. 내부 분위기는 몇 주 아니면 몇 달전부터 심상치 않았을거다. 조금만 배려가 있었다면 뒤숭숭한 분위기에 대한 언급은 했어야했다. 


십년 넘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굳은 살이 생길만도 한데 여전히 이런 일에는 취약하다. 내 일은 왜 이렇게 수동적이어야 하는지, 왜 종종 씁쓸한 마지막이 생기는지...

당장 지긋지긋한 전쟁 공부에서 해방된 것만 자축하려고 했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화가 난다 

화살이 자꾸 나에게로 온다. 똑부러지게 유감과 불쾌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쉽다. 너무 당황해서 그랬다. 하아... 말이라도 똑부러지게 할 걸... 어쩔 수 없는 노예근성으로 마지막은 감사했다고 마무리 지은 '쿨한척'이 싫다. 


나쁘게 결말을 맺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과 적을 두고 싶지 않지만 이번엔 다짐했다 나를 필요로 할때 절대 응하지 않겠다. 이번 일을 꼭 언급하겠다! 

이제 하루 아침 통보는 더이상 받지 않겠다. 적어도 논의가 나온 시점엔 말해줘야한다고 얘기하겠다. 


하... 분이 안 풀린다.

빨간색으로 이름이라도 써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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