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워킹맘>을 읽고
이상하다. 내가 하면 수용이 되는데 남편이 나와 똑같이 있으면 너무 화가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휴직 기를 가진 남편이 주말 내내 아픈 나를 대신에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소파에 누워 반나절 미드를 보는 것 즈음은 당연한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좋은 가을 아침(등원을 시킨 후 집에 왔을 때, 다시 나와 잡다한 은행 업무와 장을 보고 와서도) 소파에 누워있는 남편이 보기가 싫다. 환기는커녕 암막 커튼을 친 어두컴컴한 거실을 보니 화가 솟구쳤다.
생활비는 반으로 줄었고 나는 여전히 일이 없었다. 간간히 푼돈을 버는 것이 전부였다. 더 서러운 것은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터 놓을 수 없다는 거다. 남편을 비난하거나 일방적으로 내입장만 내세울 것 같아서 말 꺼내기가 두렵다. 말을 꺼내도 '그럼 네가 이제 일을 해!'가 결론이 날까 봐 두려운 것도 있다.
'아, 왜 내 구역을 침범하는가'
나는 험난한 유아기를 조금 지나 내 방식의 육아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남편의 휴직으로 내 구역을 침범받은 느낌이다. 혼자 했던 육아를 나눠서 하고, 운전도 나서서 해주고 있지만 어쩐지 나는 인력낭비 같다. 한 사람이 더 생기니 나는 자꾸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기대했던 남편과의 낮데이트나 가족 여행은 어쩐지 경제적인 이유로 더 나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후~ 가을 산책에서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그는 미드 삼매경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언젠가 비 오는 어느 날에 같이 라면을 끓여 놓친 드라마를 같이 보며 즐겁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다 된 빨래도 널지 않고 청소기도 밀지 않은 월요일 오전. 어두운 거실이 싫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별거 아닌 상황에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나의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더 서럽다.
작은 책을 들고 카페를 찾았다.
나는 왜 아이에게 전념하지 못할까?
나는 왜 아이를 맡기고 내 일을 찾아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 못할까?
전업주부와 워킹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으로서 살기를 원하는 동시에 아이의 성장 과정도 함께하길 원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이에서 작은 웅덩이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몇 개 나누어 쓴다. 엄마이지만 나로 살고 싶은 사람들.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보다 조금 느릴지 몰라도 엄마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을 천천히 함께 돌본다. 2차선 도로 위로 나란히 달린다
...
내 삶을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스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고민 끝에는 내가 정의 내린 나만의 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by 하연)
누가 내 입장과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 같아 몇 장 더, 더 넘기다 보니 단숨에 읽게 되었다.
걱정의 수령 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는 '생각 스위치'를 만들어야 한다. 충분히 경험해 보기도 전에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도록 생각 스위치를 꺼두는 것이다. 당장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부터 하나씩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배우려 노력하고, 집에서도 나의 시간을 확보하려고 해 보자. 자격증 취득, 외국어 공부, 몸매 관리를 위한 갖가지 운동, 엄마들의 독서모임 등을 위해 확보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요즘 나는 '엄마 역할' 퇴근과 동시에 '오롯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출근한다. 매일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삶의 활력을 찾고 좋아하는 것들로 나의 하루를 가득 채우다 보면,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지래를 켠 것처럼 개운하다. (by 정선)
주부와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모드 변환이다. '아이가 잠들면 이따가 해야지' 하면 못한다. 아이를 재우는 순간 자야 한다. 밤도 못 새운다. 함께 놀고, 먹이고 씻기고 잠드는 순간 내 몸도 잠자리 모드로 변한다. 좋은 글을 보면 그때그때 정리해둬야 하고, 생각나면 메모하고 나중은 없다. 잊어버리거나 시간이 지나버려 할 세가 없다. 평온하면서도 분주하다. 안 바쁜데 바쁘다.
<#낫워킹맘>을 읽으면서 일하지 않으면서 일하고 싶고, 집안일을 잘 못하지만 단정한 주부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의 선택도 나쁘지 않음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