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고
아무리 꽉꽉 배부르게 먹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또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처럼 최대한 맛있는 거
먹고 배부름을 잠깐 만끽하고 다시 배가 고프면
또 맛있는 걸 찾아 헤매는 식으로
행복을 다루고 싶어요”
온전히 맛있는 것, 내 마음이 편한 것을
찾아다닌 지난 주말.
결혼 전에는 실연을 당하거나
일로 마음이 힘들 때 훌쩍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에 있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한바탕 자고 엄마 밥을 먹으면 다시 서울에
올라갈 힘이 생겼다.
요즘은 무언가가 턱끝에 걸려 숨이 안 쉬어지거나
나쁜 습관으로 무방비하게 나를 방치한다~싶을 땐 생각나는 곳이 있다.
결혼하기 전 지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이란 것을 해 본 상암동 집(셰어하우스였지만)이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내가 먼저 결혼해버려 외로웠다는 푸념이 무색하게 친구(나보다 두살어리지만) 집은 그린 기운 뿜어내는 화분 친구들로 더욱더 맑아져 있었다.
여전히 오래된 살림들이 정돈되어 있고
편안한 조명과 새롭게 배치한 가구들(식탁을 안방으로 옮기는 대담함!!) 덕분인지 전보다 더 안온한
힐링 하우스가 되었다.
집 구경도 잠시.
망원시장에서 산 올해 첫 천도복숭아를 베어 물고
샴페인을 홀짝이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목이 아플 때쯤 넷플릭스 그레이 아나토미의
산전수전 인생을 관망하다
출출해진 밤에 죄책 감 없이 야식으로
콩나물을 더한 오모리 김치찌개(완벽!)를 먹었다.
다음날 아침엔 미리 내려둔 더치커피와
들기름 김치볶음밥(달걀프라이 이불은 꼭!).
호스트는 내게 부엌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끼니로 치면 파인 다이닝이라 할까
행복을 찾은 파랑새마냥 재잘재잘 야금야금
하루를 보냈다.
“나 좀 힘들었었어.”
중간중간 제법 무거웠던 일상을 묵묵히
들어주던 친구가 재미있는 명리학 어플이 있다며
태어난 생시를 물었다.
“음력으론 닭띠인데 오후 4시인데 태어나서
아마 게으르다고 나올걸?”
“어? 언니 귀인이 굉장히 많아요.”
모르는 한자 투성이라
네이버에 일일이 뜻풀이를 본 결과
아플 때 좋은 의사를 만나고,
수호천사 같은 귀인과
선한 영향을 주는 귀한 사람들이 많이
깃든다는 내용이었다.
맞다. 내 주변엔 좋은 사람이 참 많다.
일하다가 절친이 되기도 하고
먼저 연락을 잘 안 하는 내게
꾸준히 안부를 물어주는 정 많은 친구들.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해도
마음이 맞아 친구가 되거나
도움을 주는 이웃 한 명쯤은 꼭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맛있게 먹고 푸욱 잘 자게 해 준
나의 상암포레스트 호스트(친한 동료의 대학 후배로 맺은 인연)까지.
내가 상처 받고 억울했던 일 때문에 산란할 때
반대로 도움을 받고 감사한 일도
생각한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행복한 날들보다 울적한 날들이 더 많을 거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행복이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빨간머리 앤이 말하듯
커다란 행복보다 자잘한 행복이 진주 목걸이처럼
이어지기를.
가지지 못한 것보다 지금의 작은 평화에
감사하기를 기도해본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자꾸만 아기 사진을 들여다본다. 하루 동안 애쓴 아기와 남편이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던 내 집도 포근하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결혼 전에 살던 집을 처리하지 않고
작업실로 두는 것이 내심 부러웠는데
조금은 멀지만 이렇게 예전의 나를 알아주는
친구 집이 있는 것도 내게는 너무 멋진 일이다.
이 친구가 연애는 해도 결혼은 천천히 하기를
이기적으로 바라본다.
(친구에게 귀인이 되긴 틀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