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아다니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스트레스가 되어 두통을 유발하기도 하고 불안감을 심어놓기도 했다.
머릿속 수많은 단어, 생각,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고 붙잡아 놓는 행위는 창조 행위이다.
상념을 정리하고 세상에 글을 탄생시키는 것은 고차원의 쾌락을 가져다준다.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막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시간에 경험할 수 있는 몰입이 좋았다.
짧은 글일지라도 완성했을 때의 쾌감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자주 수첩을 꺼내어 글을 끄적이고 그러지는 않았으니까 아주 좋아했다고는 볼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교내 독후감, 글짓기 대회에서 자주 수상을 했었다.
그렇다고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작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십 대가 될 때까지 글을 쓴 일이라곤 초등학교 시절 교내 글짓기 대회가 다였다.
30대 후반, 책을 만나면서 ‘글’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소리 없는 탄성을 뱉었고, 문장을 노트에 따라 써보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사유가 가능할까. 어쩜 저런 문체의 글을 쓰는 것일까.
말하자면 그들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약간의 질투심이 함께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생겼고 언젠가는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나름대로 깊이 있는 독서를 다년간 해왔기 때문에 글쓰기는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생각을 글로 써내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글쓰기를 위한 단체 톡 방을 알게 되어 참여한 적이 있다.
이틀에 한 번씩 글감이 주어지면 멤버들이 글을 써서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글감을 워드 화면에 띄워놓고 몇십분을 멍하니 있었다.
글감 몇 자 아래 커서만 깜빡깜빡하는데,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다.
적당한 단어를 끄집어 내어 키보드의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써보기 전엔 몰랐다.
단 몇 줄을 쓰는 데에도 한 시간이 흘러가고, 겨우 써낸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냥 썼다.
그렇게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작년 8월 즈음 인가보다.
짧은 글쓰기에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짧은 글들 생각이 보태지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넣어서 초단편 소설처럼 쓰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몇 개월 만에 전자책을 쓰게 했고, 신인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며 등단까지 하게 되었다.
몇 달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은 기적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실패를 하자는 마음으로 도전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실패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실패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니까.
나에게는 글쓰기가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