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즈음이었을까.
그때 우리 가족은 단층 주택에 살고 있었다.
현관을 나서면 작은 테라스가 있었고, 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서면 마당이 이어졌다.
넓지 않은 마당의 왼쪽에는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길 양옆의 화단에는 맨드라미, 사루비아, 봉선화가 만개해 있었고, 꽃들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날 즈음이면 아빠는 우리 삼 남매를 화단 앞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주곤 하셨다.
네 살 터울의 언니는 이미 초등학생이었고, 나와 남동생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집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도 했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 항상 함께할 친구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만의 놀이를 만들어가야 했다.
종종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스케치북이 상상력을 펼치기에 너무 좁아 보였던 걸까. 우리는 방 안의 하얀 벽지로 눈을 돌렸다.
스케치북과 비교하면 벽지는 무한한 캔버스나 다름없었고, 우리는 가구 뒤편이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알록달록한 세계를 그려나갔다.
크레파스는 거의 닳아 부러진 잔해들만 남아있었고, 남아 있는 건 유독 외면받았던 검은색뿐이었다. 색이 예쁘지 않았던 탓에 사용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였던 동생은 더 이상 그릴 곳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검은색 크레파스를 손에 쥔 채 마당으로 나갔다.
내복 차림에 꽃밭을 등진 채, 마지막 남은 창작 열정을 담벼락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탄생한 검은 크레파스의 흔적은 길고 짧고, 둥글기도 삐죽삐죽하기도 한 마구잡이의 형상이었다.
그것을 그림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고고학자의 해석이 필요한 고대 문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예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빠는 그 검은 흔적을 발견하셨다.
범인은 명확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거실에 꿇어앉은 우리 남매는 아빠의 추궁을 받기 시작했다.
마당에 그 시꺼먼 낙서, 누가 그랬냐는 아빠의 호통에 우리 남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범인은 분명히 두 놈 중 하나인데,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일대일 추궁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동생에게,
"이놈~ 네가 그랬지?"
놀랍게도 동생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빠는 바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네가 그랬어?"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거긴 내가 안 했어."
"......?"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집 안에 그려놓은 낙서까지 들통이 나 버렸다.
그날 우리는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 있어야 했다.
동생의 터치로 탄생한 그 검은 낙서는 우리가 이사 갈 때까지 꽃밭 옆 담벼락에 의기양양하게 검은빛을 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