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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Feb 25. 2019

워킹맘에게 월급보다 더 중한 것-직업의 본질

feat 아이는 알아서 잘 큽니다

지난밤 호주에 있는 대학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언니들 잘 지내고 있어? "

"나 요즘 전문대 같은 데서 일주일에 세 번 영어수업 중, 6년 만에 엉덩이 붙이고 공부라는 걸 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이상함. 언니들 대단해.. 일하며 육아하고 진짜 리스펙이야."

이 친구는 한국에서 외국계 금융회사를 다니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떠나 호주에 있는 남편에게 갔다. 내 머릿속엔 거침없이 영어를 잘했던 친구로 기억한다. (전공은 나와 다르다) 장기간 호주에 살면서도 다시 영어수업을 다시 듣는다 하니 조금은 의아했지만, 육아로 인해 오랫동안 집에 갇혀있다 보니 고급 영어 스킬이 살짝 녹슬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갈림길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2-3년 전 한국 방문했을 당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호주에서 애 둘 다 유치원 들어가면 나도 다시 일을 해야겠어, 집에 있다 보니 뭐라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 애들 유치원 보내려면 나도 일을 해야 할 듯해. 돈 없으면 유치원도 못 보내. 마트 캐셔라도 할까 봐. 거긴 캐셔 페이도 꽤 좋아. 아님 경찰도 좋은데, 트레이닝을 해야 해서.. 어머님을 잠시 호주로 불러야 하나..."

육아를 하는 중에도 내 친구는 나름대로 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가장 절실한 듯했다. 그 당시 친구가 살고 있는 호주 집 렌트비용은 나의 한 달 월급 치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고, 2명 자녀 유치원 교육비 역시 한 달 집 렌트비용과 맞먹었는 비용이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게 된 이유.

대학시절 음대를 다니다 보니 사실 나는 일반 취업과는 거리가 꽤 멀다. 졸업 후 1/2 정도는 유학을 떠났고, 그 외는 나머지는 국내 대학원에 들어가거나 시립합창단과 같은 곳에 소속되었다. 그들이 한 단계 새로운 도약을 할 시기 유일하게 나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학교를 1학기 더 다녀 2008년 코스모스 졸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2008년 내내 학교 도서관만 처박혀 살다 보니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영어공부와 책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사자격증이 있다는 것이고(학부 때 교직이수를 함), 그것이 기회가 되어 2009년부터 기간제 교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운이 좋아 기간제 자리라도 얻었으나 임용시험 준비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서울 음악교사 티오는 0명이거나 1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가 임용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것은 결혼생활 1년 후인 2013년이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가장 컸던 것은 계약직으로서의 고용 불안정과 경제적 측면에서의 안정이었다.(그때만 해도 계약직은 14호봉 이상 받을 수 없었으나 지금은 폐지됨) 당시 아이는 없었으나 훗날 아이를 낳아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살아가려면 나의 월급이 더 필요했다. 남편이 버는 월급만으로도 물론 먹고살 순 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는 턱도 없었다.    


2013년 역시 서울 임용 티오는 0명이었기에 경기도 임용시험에 응시하였고, 다행히 인원을 전년도보다 많이 뽑아 그 해에 붙을 수 있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로와지려면

2014년부터 정교사로 임명받아 교직생활을 하니 좀 더 과업에 대한 몰두가 높아졌고, 책임감도 더 커졌다. 그러다 보니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직업 전문성이었다. 워커홀릭처럼 늦게까지 야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마감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업에 대한 본질적인 것들을 고민하고 탐색하는 생각시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단순히 돈만 벌려고 직장에 다니는 것이 아닌, 내가 과연 이 직업과 잘 맞는 사람인지, 나는 여기서 무엇을 제일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제일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이 직업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지 등이 그것이다.


아이는 알아서 잘 크는 중

퇴근시간이 되면 나는 워킹 모드 뇌를 끄고 아이를 픽업하러 간다. 13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어 친정엄마는 마음이 짠하다 느꼈지만 아들은 집과는 또 다른 세상을 즐거워했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딱히 무엇을 심도 있게 가르쳐본 적은 없다. 다만 퇴근 후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저녁식사자리에 동참하게 하여 긴긴 대화를 옆에서 같이 들으라고만 한다. 언어를 딱히 가르치진 않았으나, 주변 세상과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자신이 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느낀 건지 요즘은 대화가 좀 통한다. 가끔 낑낑대며 버럭 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내뱉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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