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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Feb 27. 2019

업무를 통해 알게 된 나의 새로운 면들

교사의 기피 행정업무 피하지 말고 즐겨라


교사들은 매년마다 업무가 재편성된다

따스한 봄기운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걸 보니, 며칠 후면 진정한 봄의 계절인 3월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시간도 가고 계절도 가지만,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안전자치부에 머문다. 교사의 행정업무는 매년 3월마다 재편성되는데, 대개 11-12월 사이 새 업무분장 안을 참고하여 업무 희망서 제출한다.

현재 내가 있는 있는 부서는 모든 교사들이 희망하지 않는 기피부서 중 하나다. 그리하여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정량평가 시 우리 부서 계원들에게 약간의 가산점을 부여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다.


내가 이 부서에 오게 된 이유

작년 나도 역시 이 부서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복직 전 주는 데로 일하겠다고 했더니 이곳으로 배정받게 된 것이다. 설마 내가 여기로 올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첨이 된 것이다. 살면서 어디 한번 당첨되어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내가 이런데는 당첨이 참 잘되는 듯하다. 훗날 하늘이 나에게 로또 당첨의 기회를 주시려는 계시려나.


"미안해요, 김샘. 워낙 어려운 것도 잘하잖아."

교감선생님 말씀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수업시수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많은데, 가뜩이나 가장 기피하는 이곳으로 오게 되다니! 교감선생님의 위로는 나에게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곧바로 다른 학교 교장으로 떠나가신 내님이여!) 가슴이 운다는 그 말, 이별경험이 아니어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거북함이 나의 온몸의 두드러기로 나타났던, 지난 3월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위기가 나에게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피할 순 없으니 최선을 다해 일하자고 다짐했다. 그 당시 내 수업은 21시간이었고, 이는 하루에 기본 4-5시간 수업을 하는 것이다.(평균 16시간) 주 52시간 일하는 사람이 보았을 땐 무슨 엄살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수업을 하려면 반드시 충분한 수업 준비가 필요하다.(평가도 마찬가지다) 보통 수업 준비는 사람마다 다르나 나는 수업 준비를 학교에서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머지 시간엔 행정업무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교사의 행정업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학생들과의 자잘한 상담들이 양념으로 있고, 학생자치 업무로 학생회 아이들과의 수시 접촉이 항상 존재한다.


행정업무의 고단함은 나의 수업, 그리고 아이들과의 대화로 이겨냈다.

행정업무는 절대로 학교 울타리 안에서 끝나질 않았다.(결국 1년 내내 원격 재택근무까지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점점 녹아내려가는 나의 유쾌함과 웃음이 끝까지 남은 이유는 수업을 통해 만난 아이들 덕분이었다. 수업을 하러 가는 게 일하러 가는 게 아닌, 한 타임 쉬러 간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딱히 무언가를 특별히 해준 건 별로 없었다.

그저 너와 나 같은 사람, 서로 동등한 인격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지내왔던 것이었다.

이런 것이 내가 일을 또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 여기를 택한 이유

올해도 같은 부서에 머물지만, 업무는 작년과 달리

학생폭력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업무는 기피 0순위 업무인데, 엊그제 부서 내에서 업무분장을 다시 나누는 중 내가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겨울 업무분장 희망 제출시기 동안 사실 난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었고, 그러한 과정 중 나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첫째,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일도 생각보다 쉽게 수월하게 잘한다.

작년 만나는 교사들마다 "지효 샘~ 힘들죠 고생이 많아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는데 정작 나는 생각보다 아주 잘 지냈다.(학기 초 1-2번 울긴 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남들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하다.(책을 통해 알게 됨, 강력추천)


둘째, 스스로 힘든 곳을 자처해 들어간다.

무언가 남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도전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폭 관련 업무로 상당히 힘들어하는 교사들을 많이 보았는데, 내가 이를 직접 몸소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잘 생각하라고 말씀하셨고, 나 역시 방학 내내 심사숙고의 기간을 거쳤다)

http://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87250


셋째, 나는 의리를 중요시한다.

작년 학생폭력 관련 담당 교사가 올해 같은 부서의 부장이 되는데, 1년 동안 같이 일을 하다 보니 나름 의리가 생겼다. (물론 부장이 된 그분은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여기 있겠다니 그 누구보다 고마워했다)


넷째, 내가 본 교무실에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장 사람이 많이 있어 가장 크고 시끄러운 곳인 그곳, 모두에게 한눈에 노출되는 공간을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이것도 내가 현재 절간과 같은 부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만 일하는 기간제 교사에게 이 업무를 주는 것은 가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분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교사들 이어, 하고 싶은 업무만 하지 말고 한번쯤은 힘든 것도 경험해보길.

아직 시작해보지 않아 현재의 나는 천진난만 상태다. 하나의 작은 바람은 학폭 사건이 단 하나도 터지질 않는 것이다. 이 부서의 핵심은 학생자치와 안전이다. 그러니 자치와 안전에 더 우리는 신경 써야 한다.

언제까지 내가 이 부서에 머무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다양한 업무를 이것저것 해봐야 하기에, 나는 이곳저곳을 가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이 한번 했던 업무를 놓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나이가 들수록, 호봉이 올라갈수록, 수당이 올라갈수록 편하고 쉬운 업무를 계속 찾아가려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너 나이 때 그렇게 고생 해왔단다. 호봉이 높은 만큼의 경력이 있으면 그만의 좋은 노하우가 점점 더 생기어야 하는데 아니러니하게도 쉬운 업무를 찾는 노하우만 쌓인다. 교사의 진정한 업을 잊으려 하는 것일까.

물론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교사들도 많다. 다만 몇몇의 소수 교사들이 문제인 것이다. 올해 1호봉이 오르는 만큼, 나는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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