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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r 09. 2019

엄마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

엄마도 아직은 부모의 사랑이 그리워


 지난 목요일 새벽, 아이의 몸이 뜨끈뜨끈해 열을 재보니 38.9도이다. 아이는 목이 아프다며 물을 계속 찾는다. 해열제를 억지로 먹이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오늘 아침에 재범이 병원 데리고 갔다 어린이집으로 보내주셔요."


결국 우리 아들은 그날 오후 어린이집을 나와 1.5일은 할머니와 있어야 했다. 금요일 일찍 조퇴를 하고 집에 들어오니, 엄마는 이미 지쳐보이신다. 손자가 하자는 대로 계속 일대일 놀이를 해주시는 중이었다. 손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으로 경찰차 출동 놀이를 50번은 더하신 듯했다.


"밥은 먹였어요?"

"아니 안 먹는다 해서 이것저것 빵이랑 우유랑 과일이랑 과일즙 만들어서 먹였어."

"빵? 무슨 빵, 내가 여기 밥 해놓고 가서 프라이팬에 한번 데워서 주라고 했는데?!"

" 그거 안 먹겠데, 먹기 싫다는데."

"....... 어서 들어가서 쉬셔. 고생하셨슈 엄마!"


손자가 할머니를 붙잡고 더 놀아달라고 하니 엄마는 갈 생각을 잊은 채 계속 놀아 주신다. 일이 있으니 빨리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도 끝까지 손자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우리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화가 올라온다.

"빨리 가시라니까... 안 그러면 나 다시 일하러 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렇게 아이와 잘 놀아주시는 할머니도 없다고 하며 부럽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엄마가 한차례 오고 가면 기분이 다운되어 아주 잠시,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작년, 아이가 1주일 넘게 아팠던 큰 행사를 치르고 난 후부터는 아기가 아픈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책감은 어느 정도 굳은살이 베긴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잠재된 복잡한 감정들이 요동 쳐 살짝 괴로울 때가 있는데 , 이는 나의 친정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다.


혈연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인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릴 적 역할놀이를 함께 해주신 적이 없거니와, 내가 먹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해준 적도 손에 꼽는다. 아빠는 무척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셨고, 아빠와 단둘이 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엄마도 아빠만큼 바빠 평일에 엄마와 놀아달라는 말도 해본 적이 없었다. 즉, 나에게 있어 '부모님과 함께 논다'는 의미는 어딘가를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산으로, 바닷가로, 계곡으로 , 놀이동산으로 등 여러 곳을 데리고 가셨다.


이러셨던 부모님 두 분이 정작 손자를 낳으니 동화책도 읽어주시고, 칼싸움 놀이도 같이하면서 맞아주시고, 경찰차 놀이에서 나쁜 도둑을 함께 잡으러가 싸워 주시고,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들고 오시고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손주가 눈을 찔러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무한한 애정을 쏟는 우리 부모님을 지켜볼 때면, 나는 자꾸 나의 어린 시절의 부모님이 떠오른다.

'나한테는 이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는데...!'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아이를 돌봐 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나의 감정들이 온전하게 해결되지 않아, 웬만하면 나 스스로 육아를 케어하겠다는 오기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나도 우리 아들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가득한, 아직도 어린 어른인가 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이고

나도 나만의 생태환경이 필요하니, 잠시 아들과 낮잠을 청하며 묵혀있는 감정들을 잠시 잊으려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듯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살짝의 질투심이 올라와, 아무 말 없이 등만 토닥토닥한다. 아들도 눈치를 챈 걸까, 아무 말 없는 엄마를 보며 눈치를 본다.


역시, 한숨의 잠은 나의 온갖 감정들을 정리해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잠시 아이가 자고 있는 사이, 노트북을 열어 오늘까지 마감해야 할 업무를 집에서 시작한다. 역시 일을 하다 보면 이전 감정들이 금세 정리되기 시작하고, 긍정적인 마음들이 나타난다.


그래. 부모님께서 이렇게 옆에 계시니 내가 맘 놓고 일을 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받지 못했던 애정과 사랑을 손자에게 듬뿍 주시는 건, 결국 내가 부모님의 딸이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들! 잘 잤어?? 우리 꼭꼭 숨어라 할까?"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좋아!! 엄마가 숨어~~ 내가 찾을게~~!"

역시, 나라도 이렇게 애교 넘치는 귀요미를 더 좋아하지... 등치 크고 무뚝뚝한 어른을 더 좋아할 리가 없음을 순순히 인정하며, 잠시 못다 한 애정을 아들에게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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