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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Jan 31. 2023

면천책방

할머니집 골목이 인스타에 등장하다니!

 ‘면천책방?’

  ‘어머 여기 영만이네 자전차집 아닌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 기억은 벌써 40여 년 전 일이니 자전차집이 책방으로 바뀌었다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닐 텐데... 난 그곳의 사진을 보는 순간 모니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책방투어 사진을 보다 눈에 들어온 ‘면천’이란 말에 ‘쿵’하면서 나를 어린 시절로 소환했다.


  사진 속 ‘면천 책방’은 우리 할머니네 옆집이었다. 그 집을 우리는 ‘자전차집’ 혹은 ‘영만이네’라 불렀었다. 자연스레 영만이네 식구들이 떠올랐다. 곱슬곱슬 장정구 권투선수 머리 스타일에 벗겨진 이마가 반돌반돌한 영만이네 아버지. 그리고 키가 크고 꾸부정하고, 눈이 큰 편인데 한쪽은 쫌 작아서 짝짝이 눈을 하고 있던 영만이 엄마. 낡은 자전거가 즐비하게 있는 그 자전차집에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본 일이 거의 없었지만 두 분은 매일같이 문을 열어놓으셨다. 그때 당시 그 집이 2층집이라 나는 영만이네가 꽤 부자라고 생각했었다. 영만이네라고는 했지만 정작 나는 영만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학년이 더 높았을 텐데도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나도 따라서 영만이네라 불렀던 것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당진은 당진군이었다. 충남 당진군 면천면으로 익숙한 그곳. 할머니집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아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학교는 꽤 큰 편이었다. 교정에는 천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속에는 구렁이가 산다고 생각했었다. 학교 앞에 툇마루가 있는 구멍가게 겸 문방구, 내리막길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계단 높이가 촘촘한 층계. 그 아래로 총총총 내려가면 장날만 서는 시장터와 방앗간, 귀신같은 마네킹이 서 있었던 옷집, 그 위로는 보건소였나? 도로 쪽으로 빠져 길을 건너면 연당이라 했던 연못이 있고, 그 안쪽 길로 쭉 가면 할아버지가 설 선물로 받았던 칠면조를 준 이웃집이 있다. 다시 나와서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저수지가 있어서 얼음이 꽝꽝 얼면 스케이트도 탔던 그곳. 없는 거 없이 부족함 없어 보였던 그 시골 마을. 그곳은 동네 사람들, 혹은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만 왕래하는 아주 작은 면단위 시골 마을이었다.


  그 시골 마을에 우리 3남매는 방학 때마다 놀러 갔었다. 당시 용산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는데 엄마가 버스를 태워주면 할머니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뿐인가? 안양에 사는 사촌 동생들과 할머니네 근처 사는 고종 사촌들까지 도합 11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여 왁자하게 방학을 보냈다. 기본 우리 집 아이들 수가 많다 보니 정작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은 없었다. 그래서 옆집 영만이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끼리도 충분했으니까.


  그 시골에서도 고모는 아랫방에서 피아노 레슨을 했다.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아이들을 레슨 하던 고모의 방은 나에게는 꿈의 동산이었다. 예쁜 인형, 아기자기한 소품들, 고급스러운 장식품 그리고 인켈 전축. 작은 학용품조차도 어린 내 눈에는 너무 귀해 보였다. 고모방에 걸려있던 액자들도 기억난다. 지휘봉을 붙잡고 심각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카라얀 사진, 발레 하는 소녀들 사진. 그 사진 속 소녀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날씬하고 예쁘면 좋겠다며 발레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던 고모의 피아노방. 그 따뜻한 방의 온기와 좋은 향기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은 기분. 그러면서 꿈을 꿨었나 보다. 나도 피아노 잘 치고 싶다고.


  고모랑 같이 듀엣곡을 칠 때, 동네 아이들이 창가에 모여들던 골목길. 시골집 고모의 피아노 방에서 꾸었던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30년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 그런 나의 꿈을 이루어준 할머니집 골목이 인스타에 등장하다니! 면천책방 주소를 메모해 둔다. 골목길 자전차집을 다시 가보고 싶다. 한 번도 같이 놀아보지 못한 영만이 이름 한번 불러볼까. 고모의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던 작은 창가 밑에서 까치발로 다시 서볼까. 골목길 버스 정거장, 멀리 아주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드시던 그때 우리 할머니도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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