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할 수 없다!
아~ 오늘 정말 빡 쎄게 보낸 하루였다.
새벽에 교회에서 반주하고,
마침 오늘은 서울에 낭독 강의가 있는 날인데
서울 시청의 시민청에서 12시~1시에 음악회가 있다 해서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아침밥 해 먹고, 오전 9시 21분 itx-청춘을 타고 용산에 잠에 곯아떨어져 도착!
시청역에서 선배 언니 만나 던킨에서 점심 때우고
멜로우 키친의 감미로운 색소폰과 피아노 음악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보통 음악회는 밤에 들었던 습관에 여전히 환한 대낮이 낯설었다.
거기다 11월인데 어찌나 더운지.
밤에 뉴스를 들으니 오늘이 11월 사상 최고 기온이었단다.
언니랑 길거리에서 짧게 대화 나누고
광흥창에 있는 한국출판문화 진흥원 강의실로 고고!!
낭독 수업은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나니아 연대기로 소설 읽는 묘미를 한층 느낄 때쯤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이건 학생 때 습관이 50대가 된 지금도 자동 반사로 나오는
몸의 기억법인가보다--;;
어머, 근데 perfect 하단다! 성우보다 낫단다!!
세상에 이런 칭찬을 듣다니.
깨지는 피드백을 들어도 표정 관리가 안 되던데
이런 엄청난 칭찬을 들어도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구나.
간만에 기분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얏호~~~!!
낭독의 맛은 역쉬 몰입이란 걸 다시 한번 체험!!
그러고 내일도 새벽 기도 반주라 용산역으로 직행했다.
수업 끝나기 10분 남겨놓고.
춘천 도착할 즈음 바깥은 벌써 어둑해졌다.
남춘천역에서 ㄲㅂㅇ 김밥집에 전화를 했다.
나를 기다린다기보다 밥을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나의 저녁을 위해.
김밥집 옆 하나로 마트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기차같이 길게 만든 카트를 밀고 가던 청년이 구석에 열 맞춰
꽉 끼어넣는데 예술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마치 '오늘 하루 너도 잘 살았어'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런 듯^^;
김밥집에는 아저씨만 있었다.
꼬마 김밥과 고기 덩어리가 씹히는 고기만두가 항상 맛있는 집이다.
"이렇게 같은 맛을 유지하는 게 엄청 어려운 일일 텐데요."
아저씨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나의 말에
"그럼요, 조금이라도 딴 데 신경 쓰면 맛이 확 틀려져요." 하면서
자신감 뿜뿜한 얼굴 표정이 되었다.
"간장이랑 젓가락은 빼고요, 단무지 하나만 더 주세요."
나는 때는 이 때다 싶어 얼른 말했다.
이 집은 2인분을 시켜도 단무지 세 개 들어간 한 봉지가 끝이었다.
간장, 젓가락 뺐으니 단무지 한 봉 더 달라는 거래쯤은 통하겠지 했는데 아저씨 하시는 말씀!
"단무지 큰 컬로 한 봉 넣었습니다!"
아~ 김밥집 아저씨의 자존심은 단무지를 지키는 일이었을까--;
거래 10년이 되었어도 변함없는 썰렁한 서비스ㅡㅡ
그래도 급할 때 가성비 좋은 이 집이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가심비까지 갖췄다면 오늘의 긴 하루가 쫌 덜 빡빡하게 느껴졌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