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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Feb 17. 2023

결혼 10년이 되니 진짜 부부가 되어 간다 1

갑자기 강릉 여행

“오늘 수업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 주에 만나요.”

줌수업을 마치는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이 방 문을 열었다.

“빨리 가자.”

나는 깜짝 놀라서 “어딜?”이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남편은 교사라 지금 방학 중이다. 나는 프리랜서라 일이 들쑥날쑥 이어서 이번 겨울 방학에는 여행다운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나마 오늘 오전 줌 수업이 끝나면 시간이 괜찮아서 남편과 강릉을 가자고 약속을 했었나 보다.


남편은 벌써부터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 중이다. 아~ 피곤하고, 귀찮았다. 마음속으로 갈까 말까 하다 이러다 또 분위기 험악해지면 서로 불편하다는 생각에 나도 얼른 준비를 했다. 남편은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운전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고속도로 가다가 도저히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졸음쉼터에서 한 20분간 눈을 붙였다. 깨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정신이 맑아져서일까? 지금 나는 바다를 보러 가는 중이다.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니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이후에 출발을 했기에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단 두 곳에서만 알차게 보내고 오자고 뜻을 모았다. 안목 카페 거리를 가서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지인이 소개해준 꼬막집에서 저녁을 먹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가다 보니 갑자기 짬뽕 순두부, 일명 짬순이가 먹고 싶어졌다. 도착하면 4시인데 점심을 빵으로 때웠으니 우리의 정식 점심은 4시여도 괜찮다며 초당 순두부 마을로 첫 목적지를 바꿨다.


우리 둘 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편이지만, 매워도 땡기는 음식이 요 짬순이라 입맛을 다시며 단골집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앗! 그런데 단골집이 정기휴일이라니... 4시 정도면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라 잘 못하면 내 돈 내고 눈치 보면서 밥을 먹게 될 분위기였다. 주차장에 차가 쫌 있는 곳을 찾아 다른 짬순이네로 들어갔다. 우리 말고 네 테이블이나 손님이 있어서 조금은 당당해졌다. 쫌 덜 맵게 해 줄 수 있냐고 주문했더니 그렇게 하면 맛이 없단다. 그러면서 제안해 준 것은 짬순이 하나, 순두부 하나를 시켜서 섞어보란다.

“오! 그거 좋겠네요! 그렇게 해주세요.”


눈앞에 빨간 음식이 당도하니 침이 절로 고였다. 그런데 역시나 한 숟갈 뜨니 "쓰~쓰~"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사장님 제안대로 섞어봤다. 난 한 숟갈 입에 물고 난 뒤 남편에게 권했다. 적당히 매우면서 짬뽕의 불맛도 살아나고, 순두부의 담백한 맛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이 기분 좋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가 맞아떨어지면 된다는 경험치가 있다. 사람이거나 음식이거나. 생각지 않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음식이 성공하면 먼 길 온 보람이 느껴져서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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