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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Apr 04. 2023

카페에서 글쓰기 실패한 이유 2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책 이름은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였다. 기자였던 저자는 긴 휴직계를 내고 춘천에 와서 '첫 서재'라는 이름으로 공유 책방 문을 열었다. 잠잘 수 있는 다락도 있었다. 숙박비는 5년 뒤 돈이 아닌 것들로 대신 받는, 이 세상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셈법으로 운영하는 공유 다락인 '첫 다락'! 생면부지인 춘천에 자리를 잡은 사연부터, 본격적으로 카페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 얽힌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맑은 수채화처럼 담겨 있었다. 힘 빼고 쓴 저자의 글이 술술 읽혔다. 설탕을 넣지 않은 카페 라떼에서 달달함을 느끼며 때론 따뜻하게, 때론 웃기면서도 뭉클함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어느 누구 하나 그냥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러다 반가운 선배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질풍노도 이상의 심각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 J 때문에 평온한 내가 미안할 정도라 통화하기도 어려웠던 언니였다. 역시나 J는 더 심각해져서 재판까지 받는 와중이라는 말에 어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힘들겠다, 언니"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다 글 쓰러 왔다가 책만 읽고 있다는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해주니 언니는 뒤로 넘어갔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깔깔거릴 수 있어 좋다며 울다가 웃다가 했다. 한참을 통화하는데 아들내미가 들어왔나 보다. 언니에게 아들이랑 같이 춘천 와서 기분전환하고 가라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슬슬 짐을 챙겨서 나왔다. 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들내미가 나를 기억한단다. 6살 때 내가 피아노 가르쳐줬다는 것도 기억하면서 춘천에 놀러 가고 싶다고 말하더란다. 몇몇 맛있는 닭갈비집과 카페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러라 하고는 언니와는 나중을 기약했다.      


어렸을 때 귀공자였던 J가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언니와 형부는 정말 이상적인 부부인데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괜스레 심난해졌다.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첫다락에 머무른다면 5년 후에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자신의 꿈이 이렇게 자랐다는 것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숙박비는 다 해결되는데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편안한 집 내버려 두고 카페에서 허탕을 쳤지만 뭔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글쓰기는 실패했지만, 실패가 아닌듯한 이 기분. J 역시 지금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청소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 동격의 기분은 무엇일까? 나에게 돌아갈 집이 있는 것처럼 언니의 아들 J도 좋은 엄마, 아빠의 성품을 따라 다시 되돌아갈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보인다고나 할까. 제발 그렇게 돼서 나와 함께 서로의 꿈자람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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