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피아노 칸타빌레

동네에 하나뿐인 나무와 피아노!

by 앤의 초록책방


피아노 전공생들은 피아노 연주 위주로 짜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고 졸업을 한다. 졸업 후 1% 될까 말까 한 몇몇 천재 같은 이들만 피아니스트로 남고 대부분은 레슨을 하며 지낸다. 나 또한 대학원을 거쳐 짧은 유학길까지 떠났지만, 피아니스트로서가 아닌 피아노 레스너로 사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피아노를 가르칠수록 나를 통해 음악을 알게 한다는 것이 서서히 나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나에게 배우러 온 사람들이 음악으로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레슨이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묵묵히 유아부터 70대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울러 피아노를 가르쳤다. 한 때 피아노 교육 회사에서 음대를 졸업한 피아노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교육생들로부터 들은 ‘닮고 싶은 피아노 선생님’이라는 말은 나를 자긍심 넘치는 피아노 선생으로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줬다.


10여 년 전 골목길의 코너에 있던 나의 레슨실은 ‘나무와 피아노’로 이름 지었다. ‘나무의 최고 작품은 피아노, 하나님의 최고 작품은 사람! 이들이 만나 음악으로 소통하는 곳’이 나무와 피아노의 숨겨진 뜻이다. 나름 심오하면서 멋지지 않은가? 가을이면 주황색 감이 넘실거리는 마당 있는 집이었던 그곳은 생각만 해도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





어느 날 창 너머로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지?’ 순간 마음이 덜컥했지만 이 환한 대낮에 별 일이야 있으려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선생니임~~~” 하며 개구진 목소리와 함께 금방 웃음이 빵 터졌다.

1층에 있던 그곳은 지나가는 아이들이 까치발을 하고, 나는 내려다보며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기에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놀려주곤 했다.


아이들이 모두 가고 청소를 하는데 책상 위에 낯선 수첩이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현중이의 수첩이었다. ‘나무와 피아노는 나무에 대해 배우는 곳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황당한 정의를 봤나. 매일 그토록 심오한 뜻을 알려줬건만... 하긴 7살 어린아이가 나의 이 깊은 뜻을 알 리가 있을까.


청소를 하는데 자꾸 킥킥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훗날 낄낄거리며 펼쳐볼 수 있는 만화책과 같은 존재가 될 나의 학생들!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면 아이들은 레슨 받기를 거부할 테지?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리라!!

“나 이제 레슨 안 해~~~~!”

그러고서는 이 아이들과의 추억을 하나씩 끄집어내면서 혼자 어깨 들썩이며 웃고 있겠지.

바람조차 낮게 부는 이 골목에 서툰 피아노 소리들이 걸어 다닌다. 이 부정확한 피아노 선율에 누군가의 인생이 연주되고 있다.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그저 그런 피아노 학원. 아니, 동네에 하나뿐인 ‘나무와 피아노’.


살구빛 레이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나와 우리 학생들에게도 분명 찬란한 시절이 오리라는 기대로 오늘을 보낸다.


* 위의 글은 '나디오'에 연재한 이야기를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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