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코트를 입고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고 걸어가는 쓸쓸한 뒷모습. 브람스의 곡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삶의 어느 날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따뜻한 봄바람같이 내 마음속에 살며시 포근하게 찾아왔다.
특히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1886년에 작곡된 2번은 풍부한 선율적 진행과 평온한 정취를 가득 담고 있다. 1886년은 브람스가 실내악 작곡의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고 그 해부터 매 해 여름 스위스의 툰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며 과묵한 브람스에게 많은 친구가 생겼던 때이다. 또한 독일의 뛰어난 가곡 연주자 슈피스 (Hermine Spies 1857-1893)와 연애를 했던 행복한 때였다. 그래서인지 2번 소나타 안에 행복하고 명랑한 성격, 힘찬 기운도 서려있다. 1악장의 첫 주제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중 발터의 찬양가(m.65)와 일치해서 찬양가 소나타라고도 불리는데 이 주제가 계속적으로 등장하며 곡을 통일성 있게 묶어준다. 브람스는 낭만시대에 고전주의의 맥을 이어가던 보수파의 대표주자였지만 자신만의 낭만성을 다양한 프레이즈 진행과 화성적 색채로 나타내었다. 이 곡에서도 규칙적인 프레이즈 진행이 아닌 5마디 8마디 12마디 16마디 등 불규칙적으로 음악이 흘러감으로 여기서 저기로 바람을 타고 이동하듯 마음속 여러 정서를 여행하게 해준다. 또한 계속적으로 주고받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섬세한 대화가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귀를 쫑긋하고 엿듣게 만든다. 피아노 부분은 달콤하게 부르는 손짓처럼 친밀하고 포르테 부분은 힘찬 환희의 외침처럼 행복하다. 2악장은 안단테와 비바체가 교체되는데 안단테 템포의 나긋한 대화를 하다가 3박자의 리듬에 맞춰 비바체 템포의 춤을 춘다. 이 교체가 3번 반복되다가 마침내 3악장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커다란 캔버스에 시원스러운 터치로 그려내어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듯 마무리한다.
브람스 곡을 연습하면서 아직은 물러설 기미가 없는 무더위를 식히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시원한 햇살을 기대하게 된다. 음악 안에 행복이 담겨있다. 무대를 통해 만나게 될 소중한 이들을 위해 그 안에 담긴 행복을 오늘도 마음속 주머니로 조심스럽게 옮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