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바이올린 곡, 론도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되는 A장조와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는 B단조, 두 곡이 있다. 론도 A장조의 연주는 간혹 접할 기회가 있는 것에 비해 B단조 론도는 자주 들어볼 기회가 없는 레파토리 중 하나다. 슈베르트가 살던 당시에도 이 곡은 조용히 숨겨져 있었다. 그의 많은 실내악곡 중 그가 살아생전 출판되었던 곡은 단지 3곡뿐이었는데 현악사중주 A단조, D.804, 피아노 트리오 Eb장조, D929, 그리고 론도 B단조였다. 다른 2곡이 19세기의 활발한 레파토리로 사용되었던 반면 바이올리니스트조차도 론도 B단조곡이 존재하는지조차몰랐던 이들이 많았다. 나도 처음 접하게 되는 곡이기에 '사람들이 찾지 않고 유명하지 않은 것엔 다 이유가 있겠지'하고 심드렁하게 악보를 들여다보는데 웬걸! 마음속 감정과 정취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유려하게 끌고 가는 슈베르트 특유의 아름다운 어법이 가득한 곡이었다. 사람들이 아직 관심을 갖지 않아 조용히 숨겨져 먼지가 뽀얗게 쌓였지만 '후' 불고 나면 번쩍이는 보석을 만나듯 이 곡을 연주할 무대가 짜릿하고 기대된다.
1826년 가을에 작곡된 이 곡은 슈베르트가 당대 보헤미안 바이올리니스트 슬라빅(Joseph Slawijl)이 연주해 줄 것을 희망하며 열정을 갖고 썼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출판업자가 이 곡의 명칭을 론도 브릴란트로 덧붙이기도 했다. 론도는 고전시대 소나타 장르에 들어있던 형식으로 ABACA의 구조로 되어있다. 고전시대 소나타 곡에서 주로 3악장에 사용되며 가볍고 밝은 분위기를 곡에 불어넣었는데 슈베르트는 이 형식을 곡의 장르로 사용하여 작곡하였다. 길지않은 곡이지만 그 어떤 곡보다 론도는 연주자들에게 암보하기 까다로운 곡이다. 주제가 3번 반복되고 주제인 A 부분보다 길고 더 방대한 아이디어와 조성적 움직임을 갖고 있는 B와 C부분이 있는데 조금씩 다르게 작곡되어있는 리프레인 A부분이 암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신을 조금만 놓치면 2번째 A부분을 해야 하는데 마지막 A부분으로 점프해버려 곡이 댕강 끝나버리게 되는 상황도 생기게 된다.
이 론도 B단조는 안단테의 인트로덕션을 갖고 있다. 첫 부분은 바로크 음악의 비루투오적인 화려한 스케일이 등장하는데 이내 곧 슈베르트 특유의 유려하고 고요한 선율이 피아노 오른손의 잔잔한 아르페지오와 함께 흘러간다. 그러다 다시 처음의 심장 고동소리와 같은 피아노의 부점 리듬에 실린 바이올린의 화려한 스케일 선율이 돌아온다. 이 선율이 마침표를 찍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 속에 C#음으로 물음표를 맺으며 Allegro 템포의 B단조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ABACA 구조에서 에피소드 B는 행진곡 음형으로 어딘가를 향한 격한 마음의 동요와 바쁜 발걸음을 느끼게 하고 에피소드 C는 G장조 안에서 편안한 부점 리듬으로 사뿐사뿐 잔디에서 뛰노는 발걸음과 시냇물이 흐르고 햇살의 따뜻함이 가득한 정취를 표현하다가 갑자기 격한 마음의 동요 속에 Eb으로 전조 되며 다시 편안한 부점 리듬이 등장한다. 마지막 A부분이 시작되고 Piu Mosso로 더 빨라진 템포로 코다 부분이 진행되는데 B부분의 행진곡 음형이 다시 등장하며 저 앞에 드디어 목적지가 보여 다른 생각 아무것도 없이 그것만을 바라보며 질주하듯 신나고 활기차게 마지막 코드를 향해 돌격하며 B장조 코드로 찬란한 여정을 마치게 된다.
15분 내외의 짧은 곡이지만 화려함과 열정을 소박한 그릇에 조심스럽게 담아낸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넘나드는 영원한 무한대의 시간여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어느덧 마음에는 고운 꽃들이 한 아름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