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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May 14. 2019

타레가 ‘눈물’

클래식 기타 하면 개인적으로 떠올려지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자정에 시작하는 라디오 방송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를 틀고 잠자리를 청했던 20대의 밤이다. 그때는 왜 그리 하루를 정리하며 떠올려보고 생각할 것들이 많았는지... 그 라디오 방송에서 중간에 사연을 읽는 코너에 다다르면 청춘의 감수성은 넘치는 물결이 되어 흔들거렸다. 바로 사연을 읽을 때 흘러나오는 스탠리 마이어스의 ‘카바티나’ 기타 선율 때문이었다. ‘딴 딴 따라라.....따라라 다라다....’ 어디서라도 우연히 이 기타 선율을 듣게 될 때면 지금도 고요하면서도 살랑이고 자작거렸던 젊은 날이 떠올려진다.


두 번째는 미국 피바디 음대 학교 로비의 모습이다. 피바디 음대는 다른 학과도 물론이지만 클래식 기타 전공이 유명했다. 학교 로비 아무 곳에나 턱 하니 벽에 기대고 주저앉아 한 다리는 쭉 펴고 나머지 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기타를 품의 자식처럼 움켜 안고는 연습인지 노는 건지 모를 자신만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던 기타 전공 학생들. 그들의 세상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손을 타고 흐르는 기타 선율 한 음 한 음은 높은 천장, 대리석 벽과 기둥의 클래식한 풍경이 더해지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했었다.

오늘은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스페인 음악가 타레가(F.Tarrega, 1852-1909)의 ‘라그리마(눈물)’를 듣게 됐다. 타레가는, 기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틀어주면 ‘아하’하고 알 정도로 유명한, 기타 음악계의 베토벤이다. ‘라그리마’란 곡에서 흘러나온 ‘솔 라 시 파’ 이 첫 네 음만 들어도 이 작곡가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지고 찾아보게 되었다.

서양 음악사에서 스페인 클래식 음악은 바로크 시대 이후 19세기 후반까지 암흑기였다. 19세기 끝무렵부터 20세기를 맞이해서야 그라나도스, 파야, 투리나, 로드리고 등의 클래식 작곡가들이 이름을 알렸다. 기타 음악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19세기에 이르면 기타는 거의 민속악기 정도로 잊힌 악기가 된다. 그러다가 1889년 토레스(A. Torress, 1817-1892) 의해 기타 악기 개량이 이뤄진다. 그 후 기타 음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콘서트홀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대에 타레가라는 굵직한 기타 연주가가 있었다.


어릴 때 눈을 다쳐서 평생 약한 눈으로 살았고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랐으며 손톱 부상도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8세 때 기타를 가르쳐준 맹인 기타리스트 마누엘 곤잘레스가 있었고 그에게 연주의 불을 지펴준 스승 기타리스트 훌리안 아르카스가 있었다. 또한 가난한 생계를 기타 교습으로 유지하다 만난 부유한 상인 카네사 덕분에 22살에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유명 작곡가인 아리에타에게 작곡법과 피아노, 화성학을 전공한 뒤 파리, 런던, 스위스 등지에서 연주 여행을 하며 견문과 실력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런 타레가에게 토레스가 만든 새로운 악기가 손에 들어왔다.


새로운 악기를 가진 타레가는 다양한 기타 연주법의 혁신을 이뤄냈다. 또한 베토벤, 멘델스존 등의 기존 피아노곡을 기타로 편곡하여 기타 레퍼토리 확장에 큰 공헌을 했으며 후대에 남을 귀한 기타곡을 작곡하였다. 기타는 그 특성을 알아야만 잘 작곡할 수 있는데 유능한 작곡가는 기타를 잘 모르고 기타리스트는 작곡을 잘 몰라 타레가 이전까지 그렇다 할 기타곡들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기타가 표현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손톱이 아닌 손으로 연주하는 법을 발전시켜 더 풍성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주법을 만들게 된다.


단순하고 명상적인 전주곡 ‘라그리마’는 1881년에서 1909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타레가가 자신의 딸이 숨진 뒤 그 슬픔을 곡으로 옮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단순하고 정직하게 울리는 한 음 한 음에 무기력한 슬픔이 아닌 아픔을 따뜻하게 싸매어 이겨낸 잔잔한 미소가 맺힌다. 따뜻한 햇살이 반짝이고 그 햇살을 내려받는 초록 잎의 단잠이 떠올려지는 곡. 슬픈 눈을 감고 희망의 눈을 뜨는 그 작은 움직임을 도와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곡이다.


https://youtu.be/moQc7-Y_c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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