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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Nov 17. 2023

저녁하늘

일상

저녁하늘 1/그림 봄베르

비가 온 뒤의 저녁하늘에 산이 드리워진다. 집 앞 작은 동산의 나무들이 하늘에 드리워진 산과 만나며 웅장하고 깊은 먼 곳에 있을 산속 풍경으로 변한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다.

하늘과 땅의 드리워진 산 위로 시시각각 하늘 놀이터가 분주하다. 이 구름에서 저 구름으로 이리 붙어다가 저리 떼어진다. 모두 순식간이다. 이 빠르고도 다채로운 변화가 마음에 고요한 바람을 일으킨다.

노란 노을빛이 구름기둥 틈새에 빼꼼 고개를 내밀다가 이내 푸르고도 짙은 구름 덩어리에 자리를 내어준다.

마치 지붕이 얹히듯이 구름기둥이 하늘에 내려앉는다. 아니 하늘을 받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하늘2/그림 봄베르

이리저리 뛰노는 구름들 사이에 어느덧 하얗던 초승달이 노란 빛으로 변했다. 하늘은 검푸른 색으로 덧입혀졌고 노란 달의 선명하고 투명한 빛에 눈빛이 고정되어있을 때 어디서 인지 모르게 갑자기 몰려든 짙은 구름 덩어리가 합류하며 조그만 달빛마저 조용히 숨겨버린다.

이제 밤하늘에는 한줄기 빛도 새어 나오지 않지만 두터운 구름이 마치 둥지처럼 하루의 끝을 감싸주는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밤구름이 하늘을 거의 다 잠식해 버리고 하늘을 닫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칠흑의 풍경에 도리어 하늘의 존재가 더욱 잘 느껴지게 된다. 모든 걸 덮으려는 듯한 구름둥지로 인해 오늘의 하늘이 더욱 또렷하게 눈과 마음에 담기게 된다. 기억하게 된다.

밤하늘/그림 봄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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