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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동시 교실 2

by 소소

하영이랑 싸운 날



내 팔 꼬집은 거

복수하려고

하영이 우산을

사물함에 숨겼다.


집에 가고 있는데

우르릉 쾅쾅쾅

하늘이 난리 났다.

비 맞고 가는

하영이 얼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우산 접어 가방에 넣고

나도 비 맞으며 갔다.


난, 사과한 거다.



드러내기 조금 부끄러운 나의 졸시다. 3년 전, 동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 썼던 시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딸이고, 시 속의 하영이는 실제 아이 친구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아이가 비를 흠뻑 맞고 왔다. 반의 남자 아이랑 싸워서 그 친구 우산을 사물함에 숨겨 놓았는데 생각 보다 비가 많이 와서 미안한 마음에 자기도 비를 맞고 왔다는 것이다. 아이고. 그런다고 사과가 되냐. 나름 스스로에게 벌을 준 것인데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귀엽고 예쁘기도 해서 시로 만들어 보았다.


그때만해도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라 신기하고 재미있는 말들을 많이 해서 받아 적기만 해도 곧잘 동시가 되었더랬다. 더 일찍 동시를 썼으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의 아이가 했던 귀엽고 예쁜 말들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해도 좋은 동시가 되었을 것 같아서다. 그 귀한 말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담아내 오래 오래 기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시는커녕 애 키우고 일 하기만도 버거운 날들이었으니까.


다행스러운 건 초등학생들을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듣는다. 혹시 나의 동시 소재로 써 먹을 만한 이야기가 저 속에 있지 않을까? 가끔 그러다 월척이 걸리기도 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다 보면 아이들에게 공감하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어제는 모르는 아이에게 대뜸 놀림을 받아 너무 기분이 나쁘다는 5학년 ○○이의 말을 듣고 그 모르는 아이를 같이 욕해줬다. “엄마, 초딩이랑 놀다 보니까 초딩 같아졌어.” 딸아이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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