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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중2병

by 소소

또 시작이다. 수학 과외 30분 전, 겨울이가 과외를 안 한다고 선언했다.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또 또라이짓이다. 쫄리기 시작한 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겨울아, 25분 남았어. 좀 일어나 봐.”

“겨울아, 20분 남았어. 이제 옷 입고 준비해야 돼.”

“겨울아, 15분 남았어. 선생님 금방 오실 거야.”

“겨울아, 10분 남았어. 선생님 거의 다 오셨을 거야. 빨리 옷 좀 입어.”


애간장을 말린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이건 선생님과 엄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호소하고, 이번 수업 안 하면 학원이고 과외고 뭐고 다 때려치우겠다며 윽박지르고, 제발 옷 입고 한 시간 반 동안 선생님 옆에 앉아만 있어달라고 애걸복걸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려던 찰나, 띠리리리리리링 초인종이 울린다.


다급하게 튀어 나가 선생님을 마중하고, 죄송하지만 5분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안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선생님 오셨어. 얼른 빨리 나와.”

“과외 안 할 거야.”

“선생님 오셨는데 안 하면 어떡해.”

“몰라. 다 하기 싫어. 나 집 나갈 거야.”

“아, 집을 나가든 말든 그건 이후 문제고 지금은 우선 선생님 옆에 가서 앉아만 있어.”

“…….”

“제발, 제발 겨울아.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잖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어도 죽어도 수업을 안 하겠단다. 급기야 나는 모욕감이 들고 말았다. 한 번도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없는데…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간신히 이성의 힘으로 감정을 이겨내고 선생님께 갔다.


“선생님, 너무 너무 너무 죄송해요. 겨울이가 오늘 수업을 안 하겠다고 해서요…….”

굽신굽신거리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스무 번쯤 하며 황당해하는 선생님을 보내고 나니 울음이 터진다. 과외 직전에 선생님께 오시지 말라는 전화를 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심지어 이번에는 집에 오신 선생님을 가시라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중2병이라고 사춘기라고 쉬이 넘기기에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읽어줘야 하는 건가? 내가 애를 잘못 키운 건가? 공부를 못하면 착하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눈물, 콧물 훌쩍이며 망연자실한 채 폰질을 하다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다.


<무기력의 비밀>


출판사 리뷰에 있는 ‘생기로 넘쳐야 할 나이에 무기력하게 처져서 지내는 아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만 반복해 보면서 깔깔거리는 아이’는 우리 딸이다.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무 생각 없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포기했어’ 같은 말들을 들으면 분노를 느끼는 어른‘은 바로 나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 파트 1,2,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고 한다. 파트 2가 특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핵심 내용으로 보였다.


“Part 2 무기력한 아이들 돕기 -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법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펴 살아나게 하는 ‘심페소생술’로써 역설, 긍정, 환대, 참여, 존중, 격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룬다. 아울러 무기력의 유형에 따라 어떻게 다가가서 도와야 하는지를 정리해놓았다.”


무기력한 내 딸을 나도 돕고 싶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싶다. 책을 구입하려 했더니 이런, 품절이란다. 아니, 좋은 책 같은데 2023년에 나온 책이 어째 벌써 품절이 됐나? 검색을 해 보니 가까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빌려다 보며 해결책도 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 불화가 있을 때마다 나를 다독거려주고 위로해 준 건 남편도, 주위 친구들도 아닌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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