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남프랑스 소도시 여행
샤갈이 묻힌 남프랑스 소도시, 생폴드벙스
남프랑스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동행분과 인근 소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생폴드벙스 Saint-Paul-de-Vence다.
생폴드벙스는 세인트 Saint-성인, 폴 Paul-바울, 드 De- ~의, 벙스 Vence- 프로방스의 축약어 라는 의미가 합해져 성인 바울의 프로방스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역에서 내려 20분쯤 버스로 올라가야 도착하는 조금 높은 지역에 위치해있다.
마을 전체가 마치 성처럼 이루어져 있다.
마을 전체 외관은 돌로 이루어진 벽이 둘러싸고 있고, 사람들이 사는 안쪽 성곽으로 들어가면 그 안을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지가 형성되어 있다.
입구로 진입하면 빙글빙글 도는 좁은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 눈길이 닿는 곳곳에 갤러리, 상점 등이 분포해 있다.
오래된 중세 도시라 그런지 벽돌도 빛이 바래 상당히 오래되어 뵌다.
몇몇 집에는 담쟁이 넝쿨이 벽을 따라 풍성하게 자라있다.
생폴드벙스의 매력은 두 가지. 고지대와 폐쇄성을 꼽을 수 있다.
마을 내부는 아기자기하고 좁아서 작은 예술품이나 물건을 감상하기에 좋다. 1층 창문 창살이 꽃줄기 모양으로 되어 있고, 길거리의 이름이 돌 위에 조각으로 새겨져 있기도 했다. 길바닥은 태양과 해바라기를 형상화 한 듯한 돌문양이 귀엽게 새겨져 있다.
작은 마을이기에 더 미감을 중시여기는 게 아닐까?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작은 마을이라면 자주 거리를 마주하며 살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을 미관의 동기를 마을의 폐쇄성으로 추측해보았다.
반면 성곽으로 나가면 높은 지대 특유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프랑스는 산이 굉장히 낮고 주로 평야로 이루어진 땅이기 때문에 고지대로 가면 아래에 있는 마을과 나무를 막힘없이 한 눈에 볼 수 있다.
고지대라는 특성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도 좋지만, 작은 마을 특유의 폐쇄성을 상쇄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나는 동행분과 성곽을 따라 걸었다. 동행분은 미술을 전공하셨다. 영감을 찾아 외국여행을 일 년에 한 번은 시간 내어 다닌다고 하셨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 사진을 자주, 잘 찍어주셨다.
나는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 게 낯설고 귀찮았지만 역시 나중에 돌이켜보니 남는 건 사진이더라. 글을 쓸 때도 사진첩을 먼저 들여다본다. 그러면 그때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덕분에 첫 소도시 여행 이후로 사진을 자주 찍고 요청하게 되었다.
생폴드벙스는 샤갈이 생을 마감한 동네로 유명하기도 하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묘지가 있는 구역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묘비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 샤갈의 무덤이다.
샤갈은 1880년대에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미술학교를 다니고 1923년 프랑스에 정착해 들어왔다. 샤갈의 그림은 어딘가 모호한 인상을 준다. 마치 파스텔로 그림을 살짝 번지게 그린 듯한 느낌? 고흐처럼 분위기가 있다거나 피카소처럼 강렬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들도 많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 갔을 때에도 '성경에 대해 조금 더 잘 알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살아있던 때 자주 거처를 옮기며 살던 그는 여기, 생폴드벙스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생폴드벙스에서 생애를 마친다.
생폴드벙스가 특히 기억에 남던 또 다른 이유는 남부 기운을 담은 물건들 때문이다. 프라고나르 옷에는 남부 특유의 밝고 역동적인 컬러, 꽃문양이 가득하다. 홈 매장의 식기도 화려한 색을 자랑한다.
프렌치 시크, 하면 떠오르는 단색의 세련된 옷이 아니다. 알록달록하고 쾌활한 기운이 아주 마음에 든다. 로브도 원피스도 너무 예뻤다. 아차차 나 지금 여행중이지, 하고 애써 매장을 나왔다. 이번 생일은 대충 지났던 게 기억이 나서, 다음 날 니스 시내의 프라고나르 매장에서 주황색 원피스를 구매했다.
한국에서는 절대 안 입을 것 같이 생겼지만,
프랑스 남부 여행 때는 꽤나 쏠쏠하게 입고 다녔다.
산과 바다의 조화가 예쁜 남프랑스 소도시 : 빌 프랑쉬 쉬르 메르
T는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다. 나는 니스 여행에서 3룸 아파트에 묵었는데, 한 방은 프랑스인 요리사가, 그 중 한 개는 이 친구가 쓰고 있었다. 숙소로 왔을 때 그녀가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해 주었는데, 입가에 아주 큰 미소가 눈에 가장 띄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일하며 살다가, 따뜻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고 싶어서 니스로 내려왔다고 했다. 나처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왔다. 그녀는 배려심이 많고 친절했는데,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비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더욱 더 친해졌다. 그래서 열심히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구나!
내가 본 T는 열정적인 친구다. 근처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고, 프랑스어도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에 일자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는데, 이력서를 써서 프린트 해 돌리는데 정성이 가득해보였다. 그 친구가 일을 구만두고 구하던 짧은 기간이 다행히도 내 여행기간과 겹쳤다. 당시에 나는 동행에서 알게 된 분이 니스 근처의 작은 옆동네에서 머무른다고 해서 갈까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취소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T에게 같이 놀러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된 거다!
각 도시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이 안내소에서 주관하는 투어가이드를 신청해두었다. 영어 투어가이드는 오후에 시작해서 우리는 점심으로 다른 세입자, 프랑스 요리사의 친구가 한다는 비건 식당에 갔다. 라 담 세르. 비건 치즈가 들어간 크로크 무슈와 쌀이 들어간 아프리칸 음식을 시켰다. 크로크 무슈는 작고 담백한 플레이트였다. 그리고 아프리칸 음식은 비지찌개같이 생겼다. 따뜻한 돌그릇 같은 곳에 담겨 나와 따뜻함을 오래오래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매웠다…
비건 식당에서의 흡족스러운 점심을 지나 오늘 살펴볼 도시로 갔다.
우리가 갈 곳은 빌 프랑쉬 쉬르메르. Ville-franche-Sur-Mer 다. 니스 시내로 내려가 버스를 하나 갈아탔다. 버스는 해안가로 달려서 빌프랑슈 옆의 마을, 생 보홍을 지났다. 관광안내소는 점심시간이어서,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좀 때웠다.
2시가 되자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우리는 투어비를 내고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청한 사람은 오직 우리 두 명. 그럼에도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 그런지 투어비가 정말 쌌다.
투어가이드 분은 프랑스어 특유의 억양이 확실하게 살아있는 영어로 빌 프랑쉬 쉬르메르라는 마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우선 항구 입구의 마을의 전경을 보여주셨다.
해안가와 경사가 있는 작은산, 그리고 아래 위 모두 집이 분포되어 조화를 이룬 동네다. 아름답다. 당시에 이곳은 무역이 활발하여 잘사는 지역 중 하나였다고 한다. 마을 중 부유한 곳에는 세금을 매겼는데, 그 중 하나가 여기라고 한다. 프랑슈란 당시 고어로 세금-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쉬르 메르는 바다 위 라는 뜻이다. 그러니, 바다 위의 세금을 내는 마을. 이것이 빌 프랑쉬 쉬르 메르의 뜻이다.
마을 입구 반대편에는 작은 성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다. 우리는 그 시타델-요새로 들어갔다. 시타델은 벽돌로 쌓여 있었는데, 회색끼가 되도록 바랜 그 색에서 얼마나 그 역사가 오래 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성을 들어가듯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마을 아래로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도자기들을 볼 수 있다. 쇠와 돌로 만든 예술 석상들도 있다.
지층인 아랫층에는 정원과 그 주변의 사진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끝에는 외부 영화 상영 좌석들도 있었다. 메인 게이트로 들어가는 1층에는 여러가지 건물들이 나왔는데, 지금은 그 건물들을 전시회나 모임 등 문화공간으로 사용한다.
이곳은 해적이 바다를 통해 마을로 침입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먼저 내다보고 대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성곽처럼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네모난 창을 뚫고, 몇 군데에는 대포를 두었다. 그 대포의 쇠가 녹슨 정도가 꽤나 인상적이다.
시타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 바랜색이다. 회끼가 도는 벽에서 이 유산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왠만하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빌 프랑쉬는 작은 산이 있어 위 아래 모두 볼거리가 있어서 풍경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평야지대가 많은 프랑스의 땅을 생각하면 더 특징적인 면인 것 같다.
지붕도 대개 주황색이어서 한 눈에 담을 때 통일성이 있다. 또한 건물이 노랑, 주황, 분홍 등 밝은 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또 벽돌집이 거의 없다. 북부로 갈수록 벽돌집이 많고 색이 짙고 단조로워진다.
저번에 생폴드벙스는 샤갈의 마을이라더니, 여기는 프랑스의 예술가 장 콕토가 사랑한 마을이라고 한다. 그는 1930년대부터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시각예술가 등 다방면의 예술 방면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장 콕토의 성당도 있고 동상도 세워져 있다.
T는 여행보다는 삶에 더 초점을 맞춘 친구 같았다. 일을 구하고 요리하고 여기서 생활하고… 일을 구하느라 불안한 와중에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투어 후 맛있는 술 한 잔을 샀다. 이야기를 나눈 후, 바다에 가서 수영을 했다. 바다가 청정하고 깨끗해서 좋았다.
오늘 소개한 이 두 곳은 니스 근처 동남부 프랑스에서 가장 좋았던 소도시들이다. 니스를 방문한다면 이 두 곳을 함께 묶어 여행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