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만드는 다양한 기억
니스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흐렸다. 연속 두 끼를 굶은 나는 기차역에 있는 카페로 달려가 참치 샌드위치를 먹었다. 길다란 식탁 옆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나도 낯설지만 친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와-. 내가 정말 니스에 도착했구나.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하우스는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해서 미리 니스 대중교통 티켓을 샀다. 프랑스는 지역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파리는 애플지갑으로 바로 구매하거나 일회용 티켓을 지하철에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어떤 지역에서는 신용카드를 바로 찍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몽펠리에처럼 주민은 무료고 여행객들은 시간권을 어플로만 구매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니스 코트다쥐르 지방의 경우, 보증금을 내고 린코트다쥐르 카드를 사야 한다. 카드를 사면 그 뒤로는 정류장이나 어플로 충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식이다.
니스의 대중교통 티켓에는 개별권과 여행자를 위한 시간권이 있다. 시간권은 24시간을 기준으로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시간권은 주로 1-3일 정도에서 선택할 수 있다.
기차역에서 티켓 판매를 돕는 아저씨가 시간권의 교통 가격이 3일에 35유로라고 했다. 그러면 3일에 5만원 정도다. 내가 블로그 후기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비싸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했지만 줄이 길었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저씨는 이 티켓이 기차는 안되고 버스와 트램만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농 트랭! Non train
그러면 니스 도심만 이용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인근 다른 도시도 많이 방문할 계획이어서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상하다 싶으면 나중에 환불하지 뭐, 하고 3일권을 끊었다.
숙소에 들어가자 한 눈에 봐도 건강미가 넘치는 브라질 친구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는 브라질 친구에게 교통권에 관해 물어보았다. 친구가 니스에서 자체 교통을 충전할 수 있는 어플을 보여주면서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가격이 원래보다 비싸네, 라고 말했다. 원래 써져있는 3일권의 가격과 내가 산 3일권의 가격 차이가 꽤 되었다.
공항에서도 티켓부스에서 사면 비싸다고 꼭 시내로 나온 다음에 구매하라는 후기글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하게 니스역에서도 비싼 요금을 무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그 아저씨를 찾아 다시 숙소에 나와 역으로 찾아갔다. 때는 거의 6시가 다 될 시점이었나. 퇴근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 아저씨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찾았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저 멀리서 나를 왠지 피하는 듯 했고, 곧이어 개찰구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퇴근 시간이 되자 역사 내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그 아저씨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 환불이라도 받으려고 했는데….
뭐지 이렇게 역에서 사기를 친다고?! 버젓이 어플 가격이 있는데 티켓부스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은 것도 이해가 안 갔다. 그날은 할 수 없이 근처 슈퍼마켓에서 저녁을 사먹고 장을 봐서 그대로 들어왔다.
니스 옆 앞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내가 티켓을 산 날은 일요일이어서 다음날 안내소에서 카드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월요일은 휴무일이라고 굳게 잠겨 있었다.
관광지라고 이렇게 수익을 내는건가? 남프랑스로 내려온 기쁨도 잠시, 기분나쁨은 점점 더해갔다.
다음날에는 동행분을 만나 니스의 인근 도시, 생폴드벙스 Saint-Paul-de-Vence 에 갔다. 처음으로 지역기차라는 것을 타 보았다. 떼제베나 우이고는 1-2시간 이상의 장거리 지역을 가는 반면 지역기차는 마치 마을버스처럼 20분마다 인근 남프랑스의 도시로 이어주는 기차다. 프랑스 동남부 지역 일대를 코트다쥐르라고 부르는데, 니스 같이 큰 도시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 기차보다 자주 다니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형태가 아닌 들어가서 비어있는 좌석에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이용한다.
생폴드벙스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도시다. 지역기차를 타고 인근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더 가야 도착한다. 버스 노선도 공사로 인해 달라져서, 구글맵과 달랐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묻고 서성이다가 옮긴 버스 정류장을 찾아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기사님이 동행분의 대중교통 카드는 여기서는 안되는데, 내 문제의 카드는 생폴드벙스를 가는 버스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생폴드벙스를 왔다오는 시간에도 나는 조금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같이 동행으로 오신 분께 사기티켓 같은 교통권에 대해 이야기하며 씩씩댔다.
그러자 동행분이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 분은 이런식으로 이야기해주셨다.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이 그러더라고요.
여행지에 가서 현지인에게 돈을 사기당하거나 더 얹어준 상황이 되면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대요. 이 돈이 어딘가에서 잘 쓰이겠지, 헌금했다 치자라고요. 좋게좋게 생각하시는 건 어때요?
지금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잖아요.”
맞다. 나는 이 사기티켓에 대해 분노하고 실상을 파헤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고 있었다.
3일에 35유로. 한 번 버스를 타는 값이 2유로대 정도밖에 하지 않아서 3만원을 그냥 날린 것 같긴 하지만,
한화로 5만원을 가지고 기분 나빠하기에는 큰 손실도 아니고 이런 에너지를 쓸 만큼 가치있지도 않다.
여전히 티켓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버스랑 트램은 무제한으로 탈 수 있으니 시내 여행을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화요일.
니스역 앞의 관광안내소에 가서 페스티벌 정보도 확인하고, 지도도 보고, 콘서트가 있군!
하면서 즐길만한 거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친절한 미소를 띈 안내소 직원분께 혹시나 해서 카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니스 사기티켓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알고보니 내가 구매한 교통권은 지역기차를 포함한 교통권이었다. 나는 그 카드를 가지고 인근에 있는 생폴드벙스에도 모나코에도 갈 수 있었다. 또한, 왠만한 코트다쥐르 지역의 트램과 버스를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니스 시내만 가능한 게 아니었다! 티켓 판매부스의 아저씨가 잘못 알았던 것이다. 다만 그 티켓부스에는 지역기차를 제외한 버스와 트램 무제한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았고, 어플에서는 후자만을 시간권으로 제공했던 것이다.
결국 단순히 직원의 무지가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니스의 사기티켓은 사기가 아니었던 걸로 판명났다.
우리나라도 알고보면 실제와 문의시 말이 다를 때가 종종 있다. 보통은 실질 업무 부서가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고객과 직접 상대하는 사람은 그 부서와 연결해주는 중간 상담원이다. 그래서 중간에서 교육받은 메뉴얼대로만 이야기하거나, 잘 모를 때 아는 것처럼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감있게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나중에 여행을 더 하면서 느낀 건데 여기는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모르고 잘못 알려주는 경우가 꽤 많이 있어서 걸리는 게 있으면 더블체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일련의 사건을 돌이키고 글로 적는 이 순간에 내가 얼마나 집요한 사람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디테일에 집착,, 덕분에 모든 직원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잘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이틀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기분나빠하는데 애를 써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내 성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사기뿐 아니라 불의도 잘 참지 못한다. 이런 성격 덕에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끝까지 추적해 파악하고 경험삼아 그 다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담느라 이 사기 해프닝은 이제 장기기억 너머로 넘어갔다.
여행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대부분 즐겁고, 평온하지만 가끔 당황스럽고 가끔은 지루하며 잠시 멈추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다양한 감정을 꺼내어보게 만드는 이러한 사건이 여행의 기억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