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시내와 샤를 네그르 사진 박물관
6월 말이면 다들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며칠 째 날이 흐렸다 밝았다 한다. 원래 이맘때의 프랑스 남부는 햇빛이 쨍쨍한데 올해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한다. 한국도 날씨 변화가 심한데, 여기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후가 바뀌어 가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다.
수영복은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두고 실내 여행지를 찾았다. 니스 시내에는 샤갈 박물관, 마티스 미물관, 근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내가 보고 싶던 마티스나 근현대미술관은 휴관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어딜가볼까.
지도를 찾아보니 시내 한복판에 사진 전시관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샤를 네그레 (Charles Negre) 사진 박물관. 박물관은 쿠르 살레야(Cours Saleya) - 살레야 길거리 시장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살레야 시장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각종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번화한 거리로, 니스의 메인 거리 중 하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베티나 랭스’이라는 초상화가이자 패션 상업 사진가의 전시라고 한다.
<< Pourquoi m'as-tu abandonnée? >>
왜 나를 버렸나요?
이것이 전시의 제목이었다.
나는 티켓을 끊으려고 전시관에 들어갔다.
Bonjour? 봉쥬흐
어느덧 프랑스 인사가 입에 붙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여행하는 곳이라 그런지 여행 때 국적을 물어보는 경우가 잦다. 환영인사를 마치고 사진 박물관 내부로 들어갔다.
베티나의 전시는 유명 여성 연예인들을 작가의 주관대로 설정해 촬영한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는 1,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2층부터 사진을 천천히 감상했다.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부터 반신, 전신을 담은 사진들.
앤 헤서웨이, 마돈나 등 연예인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스크린 어딘가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베티나 랭스는 프랑스의 유명 여성 사진가다. 그녀는 잡지와 전시에 담긴 남성응시 (male gaze), 즉 남성의 관점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을 버리고 싶어했다. 섹슈얼리티-성적인 이미지를 중점으로 여성을 담는 것 말이다. 제목에는 이러한 섹슈얼리티가 버려진 여성 스타가 할 법한 여성적인 화조를 담았다.
‘왜 나를 버렸나요?’
‘왜 내가 가진 섹슈얼리티를 버렸나요?’
사진을 많이 촬영하는 연예인의 경우 더욱 자신이 섹슈얼리티가 들어간 이미지가 팔리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려고 하니 허전하기도 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러한 상상이 이 전시의 제목을 만들 때 섬세히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가 패션 상업 사진가로 일했으니 얼마나 그녀들을 상업적으로-그러니까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담고자 노력했을까. 업계에서 익숙해진 한 가지의 방향을 다른 시각을 바꾸어 담고자 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내가 느낀 작가의 작품은 이랬다.
사진에 담긴 여성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작가는 여성 연예인들의 매력을 덮어두고 가리지 않고 살려두었다. 표정과 복장, 사진이 담긴 색감과 구도를 한데 고려하면 참 예쁘다. 제목과 달리 섹슈얼리티가 버림받지는 않아보인다. 아마 그녀들이 자체로 매혹적인 사람들이라 그랬을까.
동시에, 작품은 일부러 섹시함’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과한 강렬함이 섞여있었고, 어떤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성 연예인의 매력적인 모습을 담으면서도 표현하고자 하는 특정한 감정을 주로 담았다. 쾌활하거나 당당하거나 무료하거나. 이러한 감정들이 ‘시각적 아름다움’이라는 하나의 감각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았다.
사진을 보며, “이 여자는 섹시해!” 이렇게 한 가지 자극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여자는 지금 씩씩하고 당당해보이네. 그리고 섹시해.”
이런 두 가지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작가가 여성 연예인들의 뿜어져 나오는 섹슈얼리티를 감추려고 했다면 그들의 본질을 애써 부정하는 셈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입장에서 봐도 아름답다. 그 점을 매력있게 표현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떠오르게 한다는 점이 이 전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다.
대중 이미지에서 소비하는 여성의 성상품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참 여러 견해가 있고 말도 많은 이야기이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요즘 한국사회에서 보이는 뒤틀린 페미니즘이나 상대 성에 대한 혐오 현상에 대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는 여기에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섣불리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언제나 건강한 성은 자신 고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애써 부정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존재하는 반대편의 면모도 조화롭게 가꾸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에는 암묵적인 압박이 존재한다. 마치 상업사진이 ‘남성적 응시’의 관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한국 여성으로서 화장이나 속옷 착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것들은 거의 당연시하게 느껴져서 안하면 시선이 신경쓰여서 하게 되는 무언의 압박 중 하나다.
관련 제품을 고르고 착용하는데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드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나 답답하고 귀찮은 지 모른다. 외국에 와서 느낀건데 정말 화장도 안하고 속옷 착용에 있어서도 프리하다. 너무나 부러운 점이다.
성적 역할을 기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건강한 사회는 나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의 특징을 빛낼 줄 알면서, 그 정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작가는 다양한 모습과 매력이 사랑받는 이미지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녀들을 강렬한 감정을 가진 존재로, 개인의 매력에 무언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더해서 여성이지만 동시에 인간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진전이었다.
니스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투명한 바다색이다.
나는 바다색을 유심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는데, 도착 직후에는 날씨가 흐린날씨 탓인지 바다색이 투명했다. 나도 바다를 꽤나 봤다고 생각했는데 바다가 이렇게나 투명한 색을 띌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색이 섞여있는 크리스탈 느낌의 연한 파랑이었다. 게다가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자갈이 깔려 있었다. 모든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리고 자갈이 깔린 해변도 참 많구나. 나는 이 생태계의 무한한 다양성을 프랑스 남부 바닷가 몇 군데에 돌아다닌 후에 깨달았다.
게다가 노을 지는 풍경도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이 작열하는 듯 붉은 색 빛의 노을이 하늘에 가득하다가 빨간 태양이 서서히 진다. 그런데 여기는 핑크빛 노을이 서서히 옅게 깔린다. 이내 연한 색의 노을이 하늘에 펼쳐지고, 태양이 은은하게 진다.
나중에 안 거지만 니스의 바다가 이렇게 매일 투명한 건 아니었다.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날에는 바다가 파랗게 변한다. 처음 니스의 바다를 본 날은 투명색이었지만 밝은 파랑일 때도, 새파란 색일 때도 있다.
니스는 관광지라 상업적느낌이 물씬 풍기는 (영어로 Touristy 투어리스티 하다고 한다) 도시이다. 남부 도시 중에서는 국제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더불어 부유한 도시이다. 그래서 첫 여행지로 안전하고, 여행객들 속에 섞여 조금 더 친절하고 당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었다.
만약에 프랑스에 여행을 하는데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로 첫 여행 도전을 하고 싶다면 니스를 적극 추천한다. 니스는 아름다운 경관,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 메인 거리와 시장을 도보로 돌아보기에 아주 적절한 도시니까. 자갈해변은 발과 등이 아프니 참고하고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