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산, 험하지만 매력적인 항구도시 마르세유
니스를 떠나 조금 더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떠났다. 그곳의 대표 도시는 마르세유.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저녁무렵이 되었을 때쯤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마르세유는 험한 도시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국가들을 여행할 때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는 프랑스 내국민들이 마르세유를 가려면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러두는 곳이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는데, 니스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지하철이 미친듯이 빠르다. 사람이 타고 나서 달릴 때는 무언갈 붙잡지 않으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빨리 달렸다. 또, 그 다음은 낯선 공기.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니스와 달리 여기 사람들은 나를 좀 이상하게 쳐다본다.
흑인이나 무슬림 계열 사람들은 많은데 동양인이 안 보였다.
에어비앤비 하우스는 메인 거리에서 한 15분쯤 떨어져 있었다.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숙소 쪽으로 걷는데,
건물이랑 길바닥이 깨끗하지 않았다. 굴러다니는 포스터나 쓰레기도 간간이 보였고, 건물이 대체로 낡았다. 그리고 벽과 문에 그래피티-건물이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 외벽에 스프레이 등으로 하는 낙서-가 정말 많았다.
제일 이상한 건 동양인이 없다는 거였다.
한국인은 없어도 보통 동양인은 보일텐데. 낯선 얼굴이어서 그런지 카페 밖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왠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르세유에서 예약한 숙소는 동성커플이 운영하는 숙소다. 아래층의 두 개의 방은 숙소로 사용하고, 위층은 호스트분들이 사용한다.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은 함께 이용하는 형태의 숙소였다.
때는 7월로 접어들 때여서, 날씨가 무척 더웠다. 호스트분은 여기는 니스와 달리 가난한 동네이고 험해서 되도록 밤 8시 이전에 숙소에 올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유럽은 여름에 밤 9시까지 밝아서 다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추세인지라 나는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 일명, 뮤셈에 방문했다. 뮤셈은 항구 근처에 있는 터라 바로 바다가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그곳을 들어가는 입구 다리부터 너무 멋졌다. 성벽같은 곳을 지나 오른쪽에는 시내를, 왼쪽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긴 다리를 지나 뮤셈건물로 들어가면 철조물 너머의 멋진 해변과 큼직한 뮤셈박물관을 마주하게 된다.
뮤셈 박물관에서는 지중해 문명에 관련한 전시가 한창이었다. 유럽에는 난민에 관한 이슈가 많다. 특히 마르세유같은 항구도시에는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 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프리카 계열의 사람들이나 히잡을 두른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아프리카의 경우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 시절 이후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언어도 같으니 적응도 훨씬 수월할테고 말이다.
전시는 과거에 유럽인들이 어떻게 지중해를 통해 다른 인종이나 문명에 대해 탐험하며 생각을 했는지를 전시한다. 그 중에는 국가들의 의상이나 그들을 그린 그림, 그리고 가졌던 인종적 편견이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자신이 우월하며 다른 그들은 순종적일것이다, 열등하다 등의 환상을 가졌던 시선)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나는 방대한 작품들이 한 곳에 아카이빙 되어 있다는 점도 멋있었지만, 자기 비판적인 전시인데 그것을 기꺼이 드러낸다는 점이 더 멋있었다.
호스트 커플 중 한 분이 코트 디부아르 사람이었는데, 집안에는 아프리카 물건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정말 멋있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문화에 있어서 우월하고 열등한 건 없다.
아싸기질이 발동되어서 사실 마르세유는 혼자 다닐까 했는데 결국 한 명의 동행을 구했다.
그녀를 J라고 부르겠다. J와는 마르세유에 처음 만난 날 쁘띠 기차를 타고 노트르담라가르드 성당을 갔다. 관광용 기차를 타고 바다도 보고 오르막길도 천천히 건물도 감상하면서 올라갔다. 알고보니 그 시간이 막차여서 한 15분 안에 사진도 찍고 구경도 다 했어야 했다. 챌린지를 찍는 마음이었지만 짧아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신기하게 J는 나랑 성격은 좀 다르지만 죽이 잘 맞는 여행메이트였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넷플릭스의 뤼팽을 좋아했던 것도 같고, 한 명이 먼저 예약해두거나 일정을 알고 있거나 하는 식으로 정말 쾌적하게 여행이 진행되었다. 그녀는 해외에서 취업해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와 오랜 취업준비를 하다 올해 합격이 되었다. 입사 직전 마침 시간도 나겠다, 여행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직항으로 신규 취항하는 마르세유로 왔다고 한다.
그 다음날에는 혼자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역시 둘이 함께 여행을 다니며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게 좋았다. 저녁에 마르세유 번화가인 쿠르 줄리앙 (Cours Julien) 에서 만나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낮에는 늦게 일어나 J가 추천해 준 롱샴 궁전에 다녀왔다.
그 후에는 서점이 보여서 들어갔는데, 3층 까지 이루어진 아주 큰 서점이었다. 전시회도 하고 장르별로 책 구분이 잘 되어있었다. 나는 뭣도 모르지만 프랑스 작가 현대소설을 하나 사왔다 …^^ 좋아하는 현대소설 장르니까 개중에선 제일 쉽게 읽겠지하는 무논리로 말이다.
서점이 크고 잘 갖추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줄서서 책을 사고 있었다. 우리나라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와 비교하면 어떻게 보면 작은 길가의 서점인데 열정적으로 책읽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느껴졌다.
지하철이나 기차 이동중에 와이파이가 잘 안되어있고 데이터 써도 느려서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 다음 약속시간에 우리는 번화거리 쿠르 줄리앙에서 만났다. 쿠르 줄리앙으로 가려면 경사길을 조금 걸어올라가야 한다.
쿠르 줄리앙의 메인 거리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바닥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분수대 양쪽 거리에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야외석에 앉아 추천받은 음식을 두 개 시켰다.
분수대에서 촤르르- 물 떨어지는 소리와 주변 사람들이 대화하는 시끌벅적한 대화소리, 그리고 웨이터의 분주한 몸놀림이 쾌활한 거리였다.
이미 저녁 시간에 만나서 밥을 먹고 헤어질 때는 밤 8시가 넘은 무렵이었다.
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숙소로 가는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저기 정류장 앞쪽에 있는 한 젊은 남자가 총을 꺼내어 한 발 쐈다. 탕-!
하는 굵은 총소리가 울려퍼졌고, 사람들은 일동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누가 총을 쏜 건가? 나도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그 순간 무서웠다. 정류장에 서 있던 그 젊은 남자가 킬킬대며 웃어댔다.
아무래도 가짜총을 사서 소리만 총소리를 낸 것 같았다. 유럽에서 총소리를 들을 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총소리가 들려오니 무서웠다.
얼른 트램을 타고 내려가야겠다. 트램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7분 정도 걸어야 한다.
때는 9시쯤이었는데, 니스와 달리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나가면서 한 허름한 행색을 한 아저씨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손가락으로 본인 입술을 훝었다. 나는 그게 오싹하면서도 기분이 나빴지만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J에게 공유하니 본인도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나와 헤어진 장소와 숙소까지 거리가 10분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나와 헤어지고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뒤에 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뒤부터 마르세유에서 밤 8시면 꼬박꼬박 숙소에 들어왔다. 마르세유 숙소에서 보내는 7박 동안, 나는 밖에서 삐뽀삐뽀-하는 구급차 소리를 거의 매일 밤마다 들었다.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도 많았다. 대개는 난민들일테니 처음에는 나는 그들이 측은했는데, 돈을 다 주기에는 그 수가 무척 많았다. 그리고 훨씬 적극적이어서 식당 안까지 들어와서 돈을 달라고 하거나 마르세유 기차역에서 외부 주문을 할 때에도 바로 옆에 와서 내것도 하나만 더 넣어서 사달라고 해서 좀 부담스러웠다.
그것 외에도 J랑 바닷가에 앉아 느긋이 즐기려는데 가이드를 해 줄 테니 왓츠앱 번호를 교환하자는 흑인들, 나를 지나치며 저런 한국여자는 어때? 라고 말하던 백인 청년무리들 (나도 프랑스어 좀 듣는다 이 자슥들아),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며 칭챙총을 외쳤던 사람들(한 개에 두세명이 같이 타고 있어서 좀 하찮았음) 등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험하고 터프한 동네였다.
이렇게 마르세유는 아주 친절했던 호스트분들과 여행짝짜꿍이 잘 맞았던 J, 그리고 터프하고 위험한 동네라는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르세유를 추천한다.
바로 30분만 가면 나오는 가까운 프리울섬과 깨끗한 바다. 멋진 박물관들이 많은 항구와 유명한 올리브유 듬뿍 들어간 마르세유 비누! 윗면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멋진 만남의 광장과 넓은 도시라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식당들. 근처에 소도시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도 갖춘 마르세유는 멋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