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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비 Sep 20. 2024

프로방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리옹역에서 니스빌까지




프랑스에 온 지 3일째. 아침 일찍 일어나 남프랑스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그래도 온 지 몇 일 되었다고, 지하철 역에서 대중교통 티켓을 제법 능숙하게 샀다.




티켓을 집어넣고 리옹기차역 Gare de Lyon (갸흐 드 리옹) 으로 향했다.


기차예매는 중장거리를 이동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기차와 버스용 어플을 이용했다. 기차표를 카드를 입력해 결제하면 큐알코드가 발급된다. 근처에 티켓기계가 있었는데, 프랑스에서 타는 첫 기차다보니 이 큐알코드를 실물티켓으로 바꿔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Can I ask you something…?



부스를 서성이다 그 기차역 인근에서 두리번 거리면서 도움을 청했다. 앞선 몇 분이 나도 여행객이라 잘 모른다고 했다. 다가오는 기차시간을 들여다보며 난감해하고 있을 무렵, 파리지앙 한 분이 어플로 구매한 티켓은 티켓발권을 하는 게 아니며 큐알코드만 보여주고 들어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요서방의 친형을 꼭 빼닮은 그의 얼굴을 보며 완벽한 신뢰감을 느끼고 바로 개찰구로 향했다.  

(그에게 주어지는 unwanted 합격목걸이)






나는 우이고라는 2층짜리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후기글을 하도 읽어서, 캐리어 벨트를 두르고 현관부근에 짐을 놔뒀다. 화장실에 갈 때에도 돈과 여권, 핸드폰이 든 색백을 가지고 들어갔다. 사실 기차에 있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이라, 혼자라 모든 것에 긴장하고 경계했다.



어젯밤 하루종일 파리를 돌아다니고 재즈바에서 늦게 돌아와서 6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거의 6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여행의 긴장감과 설레임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었다. 창 밖 풍경이 건물에서 들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이 지났을까. 뒤에서 프랑스 역무원이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죠?”



나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한국어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금발의 잘생기고 슬림한 스타일의 프랑스인이 서 있었다.



“Yes, that’s right. How did you know I am Korean?”

네, 맞아요. 제가 한국사람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웁스. 나는 이 말을 꺼내자마자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플래너에 한국어로 메모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한국어로 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그 뒤로도 그 프랑스 역무원은 내가 있는 칸에 계속 서성였다. 때로는 저-앞에 있는 다른 승객들을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었고, 화장실에 갔다가 복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도 옆을 돌아보니 바로 같은 복도에 있었다.



‘뭐야, 깜짝이야. 또 여기있잖아?’


나는 조그만 당황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 말을 걸었다.



“How come you speak Korean so well?”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세요?

“듀오링고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프랑스 기차 안에서 한국어를 듣다니.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구나 느꼈다. 프랑스인이 어플로 한국어를 공부할 정도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고 말이다. 억양이나 발음도 꽤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엄지를 척! 올려주고 싶었다.







남프랑스와 제주도



이틀 만에 남프랑스로 가는 기차에 오른 건 내 관심사가 파리보다는 남프랑스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파리보다는 고즈넉하고 자연이 살아있는 프로방스 지역에 관심이 많았다. 책에서 본 남프랑스는 건물과 벽 곳곳에 아름다운 꽃과 넝쿨이 달려있었다. 그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따뜻한 시골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인 나는 연중 따뜻한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남프랑스는 기온이 연중 영상으로 따뜻하다. 게다가 좋아하는 바다가 가까이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지역이다.







또, 번화한 대도시보다 남부의 작은 도시를 선호하는 건 나의 성향도 한 몫 할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춘천의 시골에 살아본 후로 시골 살이를 선망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제주도와 전라도에서 잠시동안 살았다. 도시에서 접하지 못한 자원이 더 귀히 느껴져서일지도 모른다.



제주도로 내려간 건 스물두 살 때다. 나는 막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후에 백만원도 안되는 돈을 들고 무작정 내려왔다. 때는 3월이었다. 나는 그때쯤이면 제주도가 당연히 따뜻할 줄 알았는데 다음달까지 바람이 엄청 불어서 추웠다.

옷도 위아래로 2-3벌 정도 챙겨 간소하게 왔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는 나머지 한 벌을 빨아야 했다.


나는 귤향이 가득한 서귀포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늦게 여는 바도 카페도 없는 소박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살고 싶어서 그곳과 가장 가까운 일자리를 구했다.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 시골생활은 사실 외로웠다. 그래도 집이 바다와 5분 거리였다. 나는 틈나는 대로 창문 너머의 바다를 힐끔댔고, 거의 매일 바다 앞을 산책했다.

일렁일렁- 이는 파도와 지평선을 바라보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그날의 바다색과 파도의 높이를 바라보면 외로움도 고민도 잊혀지는 것 같았다.


일 년도 되지 않아 다시 집에 돌아가기로 했지만, 제주도에서의 자취와 자립의 경험은 나에게 묵직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는 정말 겁이 없었다. 계획도 없었고. 무대뽀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서울에서 흔히 쓰는 일자리 사이트에 제주도 일이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서 걷다가 젊은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 물어물어 그곳에서 이용하는 일자리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서귀포 시내에 예술의 전당 공연을 보고 들어오는 데, 버스가 일찍 끊겼다. 걷다가 한 번 가봤던 카페에 들어가 도움을 청해 사적모임을 하던 주인분 지인이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신 적도 있다.



‘집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집을 치우는 등 내 일상을 정렬하는 일’

과 같이 단순 생활적인 부분부터



‘사람에게 어디까지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어떻게 적절히 받아들일지’

하는 등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성찰도 이루어졌다.



마지막에는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했는데, 그곳이서 만난 언니들과 인연이 되었다. 후에 셋이 만나 다시 제주도를 여행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바다



파리는 관광과 문화유산적인 측면에서 기대되는 곳이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박물관 미술관도 많고, 에펠탑과 센 강 근처는 언제가든 운치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잠시 머물며 구경할만한 도시이며 직접 오래 살기에는 조금 번잡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신 제주도처럼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따뜻하고, 해산물을 포함한 먹거리가 풍부한 남프랑스를 좋아한다.


아니, 남프랑스에 직접 가 본 것은 아니니 남프랑스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마음 속의 판타지, 이상화이다. 어떠한 것을 이상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은 좋겠지, 하고 속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어떠한 예측이 확신이 되려면 직접 경험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차를 탄다는 것은 남프랑스에 대한 나의 예측을 현실화하는 행동이다.







장거리 기차는 거의 6시간을 달려 니스에 도착했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흥분되는 눈빛으로 기차에서 내렸다.


역사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개찰구쪽 입구에 아까 그 기차 역무원이 승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아는 눈빛을 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한국어로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예쁘다.”



나는 훅 - 들어오는 멘트에 살짝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Merci.”

고마워요.



(잠깐 설마 그러면 아까 그 상황이 호감있어서 그런거였어?나 쌩얼이었는데?!)


이것이 남프랑스 플러팅의 시작이었다…





니스빌 기차역


십 년이 걸렸지만 정말 왔네. 반갑다,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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