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파리 공항까지
나는 도무지 예전부터 내가 왜 이렇게 프랑스에 끌리는 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프랑스어 발음이 듣기 좋았다. 비음이 강해서인지 강하지 않은 부드러운 음들이 귀에 아름답게 흘려 들어온다. 예술과 토론이 발달한 나라라는 것도 흥미가 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전공으로 프랑스어를, 첫 대학전공으로 불문학과를 선택했다.
프랑스 하면 파리. 낭만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파리에 대한 로망 따위는 딱히 없었다. 다만 나는 남프랑스를 무척 가고 싶어했다.
서점에서 남프랑스 인테리어 책을 우연히 보고 샀는데, 10년 동안 그 책을 가끔씩 꺼내어보며 계속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그래. 프랑스로 가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살아보겠어.
(나에게 영감을 준 책 : 햇살가득한 남프랑스 자연주의 인테리어)
함께 세계여행을 하려던 원래의 경우 나의 계획은 이랬다.
숙소를 한 달씩 빌려 장기투숙 할인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장을 봐서 최대한 해먹는다. 어차피 외식은 쉽게 물린다. 가정식 취향의 마일드한 입맛을 가졌기 때문에 해먹는 건 괜찮다!
인터넷으로 업무를 하고 일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도시씩 살아가듯 여행을 하는 거다. 30개국쯤 여행을 하고 나서 나머지는 여행을 한 회고를 책으로 출판하면 좋을 것 같았다.
찾아보면 나처럼 한 달에 한 도시씩 여행한 사람들의 선례가 생각보다 꽤나 많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자 여행 계획을 바꿨다. 세계여행을 유럽 여행으로 줄였다. 그 중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한 이유는 유럽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다. EU국가들은 쉥겐 조약에 의해 최대 90일 머무를 수 있는데, 느리고 깊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특성상 세 달 남짓한 기간은 너무 짧다.
프랑스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면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1년 동안 구석구석 다닐 수 있다. 사실 유럽국가는 도장도 안찍기 때문에 은근슬쩍 여행다니기 편하다. 게다가 워홀비자가 끝나더라도 쉥겐조약을 걸어 타 유럽국가를 세 달 더 여행할 수 있다.
우선 유럽 여행을 하고, 더 살고 싶으면 그렇게 궁금해하던 프랑스에서 살아보는 체험을 하자 싶었다.
안 되면 여행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고.
한 지역에서 한 달 있을 계획을 일주일씩으로 줄이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려면 숙소비가 두 배. 일인분의 밥을 매 번 해먹기도 애매하다.
또, 장기 여행에서 혼자 숙소를 쓰면 너무 외롭게 지낼 것 같다. 그래서 첫 2주간의 숙소는 에어비앤비 아파트 룸쉐어로 신청했다.
유럽에는 방 3-4개짜리 아파트를 임대해 방 하나씩 월세를 함께 낼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룸쉐어 하우스인데, 프랑스에서는 그것을 꼴로(Colocation)라고 부른다.
룸쉐어 숙소는 때로는 호스트가 집에 함께 살기도 하고, 때로는 집주인은 따로 있고 나머지에 세입자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그토록 바래왔던 해외 출국이었는데, 일자가 하루하루 다가올 수록 몸이 좋지 않았다.
출국 한 달 전쯤. 출국할 준비물을 사야 할 무렵부터는 계속 머리가 어지러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감기까지 걸렸다. 코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코를 하루종일 팽-하고 풀어댔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해외 출국인데 의욕이 떨어졌다.
‘가서 너무 외로우면 어쩌지?
혼자 다니면 무서운 상황이 일어날까?’
걱정을 하다보니 불안도 밀려왔다.
나에게 집도 있고 땅도 있다고 어필하던 썸남은 30대면 조금 있으면 노산이라며 넌지시 운을 뗐다.
내가 이 나이에 잘못된 삶을 사는 건가… 다들 이제 결혼 준비하고 가족을 만들 준비를 하는데…
내가 도전하려는 것에 일말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가치관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옳지 못하다.
역시 아닌 것 같다고 하고 도망쳤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자꾸 불안하게 흔들려서 힘들었다.
‘그냥 가지 말까?’
결국 비행편을 3일 후로 미뤘다.
장기 여행은 준비할 것이 꽤 된다.
맥북 노트북을 중고로 55만원에 구매하고, 사진과 영상을 잘 담고 싶어서 핸드폰에 돈을 한 3배쯤 더 썼다.
여행용 각종 가방을 사는 일도 한 몫 했다. 나는 30리터짜리 등산용 백팩, 캐리어 위에 얹을 작은 보스턴백, 옷을 구분해 넣을 압축가방, 여행 때 가볍게 필수품을 넣고 다닐 색백을 마련했다.
숱많은 머리카락님을 위한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도 챙겨드리고, 장기니까 클렌저, 로션, 샤워젤 등 각종 화장품도 사고… 여행 직전 즐겁게 참여하던 사진동아리 주최자 분이 보내주신 필름카메라 두 개도 꼭꼭 챙겼다.
단순히 물건을 구비하는 것 외에도 준비할 것이 있다. 한국에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것을 대비해 미리 들러야 하는 곳에 방문하는 것도 일이었다. 미용실에서 머리하고 머리카락 짧게 자르기, 속눈썹 펌, 피부과, 치과와 건강검진 등 각종 병원 미리 방문하기 등.
게다가 막판에는 허리고 머리고 안아픈데가 없어서 출국하기 직전까지 경락과 도수치료도 받았다.
출국 당일 평택시외버스터미널에 캐리어 한 개, 작은 보스턴 백 하나, 등산용 백팩을 가지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내려 체크인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차차. 공항버스에서 보스턴 백을 천장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내렸다…
그 백을 찾느라고 전화했는데 다행히 공항에서 쉬다 30분 뒤 출발하는 버스에 있다고 해서 대기하고 찾아왔다.
나의 허당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하염없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생이 얼른 공항보안대를 지나 미리 들어가 있으라고 알려줘서 또 아차! 하고 들어갔다.
이렇게 자꾸 실수하는 건 마음 속으로 내심 한국을 떠나기가 망설여져서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꿈꾸던 프랑스인데.
의욕이 나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화이팅이 넘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도 당장에 뭘 해야 할 지는 모르지만 해외 출국을 할 것이라는 건 안다.
워낙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