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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당신 곁에 머무르지 않더라도

건축가 가우디의 영감, 몬세라트 수도원

by 뮤즈비 Nov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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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과 하루 전의 스케줄이 빈다고 해서 우리는 금요일에 만나 일요일에 헤어지기로 했다. 여행하기 전에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꼼꼼히 알아보는 편인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여행하면 대표적인 것이 가우디 건축물이다.

도시공간인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나는 당연히 가우디 건축물을 보고 싶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가우디 책을 들춰보며 괜찮은 장소들을 물색했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가 본 동생의 추천을 토대로 시내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몇 군데와 멀리 교외로 나가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는 몬세라트 성모 마리아 수도원을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을 사일 정도 남겨두었을 때 갑자기 그의 업무 스케줄이 바뀌면서 금요일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일요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서 쉬고 다시 일주일을 준비해야 하니 실질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날은 토요일 단 하루 뿐이었다.



내가 예약한 항공편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금요일의 더 하루 전인 목요일 아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였다.

그러면 삼 일 중에 이틀은 혼자 여행해야 하네.


나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직감이 덜컥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인연은 타이밍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만남이 잘 되도록 우주가 순조로운 방향을 이끌어줄 것이라고. 이때부터 사실 결론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계속 대화를 하면서 걸리는 점도 생겨 가야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이 불안한 직감을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해 그냥 넘겼다. 내 마음 속 카리나와의 데이트를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스톡홀름 사일런트 댄스 나이트스톡홀름 사일런트 댄스 나이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스웨덴에서 목요일 새벽 4시에 출발했다. 그 전 날 밤에는 스톡홀름의 거리 사일런트 댄스 축제에 가서 동생과 동생 회사의 옛 직장동료를 만나 함께 춤을 췄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까지 버스로 30분 정도를 달려 오전 10시에는 이미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주 큰 규모의 호스텔 겸 일반 객실이 있는 곳이었다. 늦은 아침에 맞은편에서 한국 여자애가 일어나더니 인사를 했다. 앳되어 보이는 그 여자애는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지원해 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 이름을 보면 반가워 무조건 침대를 근처에 배치해 달라고 한다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맨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큼직큼직한 건물크기다. 프랑스와 모양이나 풍은 거의 흡사한데, 빌딩 너비가 넓고 층수가 더 높았다. 프랑스는 건물이 진짜 조그맣고 폭좁고 아담한데. 나라는 둘 다 비슷하게 큰데 말이다. 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더 클까?


그리고 다음에 눈에 띈 것은 도로 옆 전용 자전거 도로였다. 곁가지에 작은 도로가 아니라 자동차 도로와 따로 분리된 넓은 자전거 도로가 큰 길을 따라 잘 나 있었다. 도로도 대체로 폭이 넓고 컸다. 궁그미의 궁금증이 슬며시 떠오르는 도시 풍경이다.


넓직한 스페인 건물과 도로넓직한 스페인 건물과 도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사그라다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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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바트요 내부카사 바트요 내부



나는 목요일에는 바르셀로나 시내의 가우디의 건축물 까사 바트요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미리 보고, 금요일에는 혼자 해변에 갔다. 스페인의 바다는 마치 엄마 자궁 속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파도도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경사도 깊지 않아서 남여노소 즐길 수 있는 그런 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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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토요일에 볼 곳은 멋진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근교의 역사적 건축물, 몬세라트 성모 마리아 수도원이다.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건축할 때 이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둥근 기둥 모양이 특징인 독특한 바위산에 지어진 곳이다. 바위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둥글고 긴 형태였는데, 마치 치토스를 세워서 모아둔 것 같이 생겼다. 이런 독특한 모양의 바위는 수백만년 동안 자연적인 침식으로 인해 바위가 깎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50년경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스페인의 성물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보관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스페인은 이 성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으나 그러지 못해 11세기쯤 이 자리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점은 이곳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점이었다. 탁 트인 곳에서 자연 풍경을 내려다보는 해방감과 경외감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도.




다만 수도원이 시내와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으로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편도로 가는 시간이 최소 1시간 30분 이상이고 배차 시간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안에 인근 지역 시체스까지 투어를 시켜주는 단체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그리하야 그는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밤 열 시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우리는 아침 일곱 시에 만나 투어버스를 타러 갔다.







아침 일찍부터 투어가 시작이니 배고플 게 분명했다. 나는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비건 초콜렛 우유와 견과류를 내밀었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 버스에 앉아서 한창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이드가 버스 내 음식물 섭취는 삼가달라는 방송을 해 동시에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미리 좀 말해주던가. 눈치는 보면서 맛있게 먹는 수밖에.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했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산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가이드 엠피쓰리에 꽂힌 일회용 이어플러그를 귀에 꽂았다 뺐다를 반복하며 수도원 앞까지 설명을 들었다. 수도원 바깥에는 신전 같이 큰 기둥과 조각상이 있었고, 수도원은 외관부터 화려했다. 설명을 들은 후부터 점심시간까지는 각자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자유시간이었다. 수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부에 들어가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아주 화려하고 세련되고 어두운 장식의 성당이었다.


프랑스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금장식이 많이 들어가고 화려했다. 웅장하기도 하고. 여느 성당처럼 둥근 아치형 천장에는 금색과 파란색 무늬의 띠가 있다. 복도 가의 노란 조명도 화려한 모양이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도 보고 작은 철제 문을 들어가 동상이나 그림을 보고 잠시 기도할 수 있는 곳도 보았다.


그는 긴 기도 좌석 아래에 긴 발판같이 생긴 곳에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를 했다. 아, 그게 발판이 아니라 무릎을 대고 기도를 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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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수도원몬세라트 수도원


그러면 저 스테인드 글라스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 거야?

나는 그림이 그려진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림과 비슷하게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곤 곧바로 사실 나도 잘 몰라, 하고 대답했다.

나도 그 정도는 지어낼 수 있겠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성경 공부할 때 졸았던 게 틀림없다. 나는 신을 믿지는 않지만 급할 때만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한다. 그럼 나도 똑같은 거 아니야? 껄껄

(물론 아님)



호기심이 많은 나는 다시 성당으로 나와 왼편에 있던 문으로 들어가보자고 했다. 촛불을 세워둔 동굴벽 같은 길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자 거기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아까 검은 성당 내부와 대비되는 뽀얀 상아색 빛의 기도 공간이 있었다. 금빛 천사 동상에 둘러싸인 공간인데 역시나 화려하기도 했다. 천장에 닳은 만큼의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그림을 보고, 길을 따라 들어가 한 층 정도의 계단을 올랐다. 처음에 봤던 성당 내부가 반대편 방향에서 내려다보였다. 장엄하고 신성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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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제까지 보았던 성당 중 가장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이 옛날에 잘 살던 나라였나, 이런 말을 하면서 화려함에 놀라며 성당을 구경했다. 실제로 수도원이 지어진 11세기 경 스페인 남부 지방에 있는 안달루시아 지역은 무슬림 스페인의 수도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하며 발달된 도시였다고 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건물 외에도 푸니쿨라를 타고 위로 올라가 산을 타고 걸어가는 하이킹 코스가 있다. 아침을 못 먹은 탓에 배가 고팠으므로, 우리는 올라가기 전에 수도원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크루아상을 시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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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갔더니 아득한 바위산 절경과 함께 걷는 길이 굽이굽이 나 있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한여름이라 울창한 초록색 초목들이 펼쳐진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의 하이킹 코스 목표는 십자가가 있는 곳 까지다.

걸으며 황토길과 황토 건물도 보고, 잠깐 바위 끝에서 쉬기도 하며 십자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와… 십자가 앞 풍경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경외감이 들 정도로.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수도원쪽 건물과 내려다보이는 강과 차가 달리는 도로. 이것이 한 눈에 담겼다.


침식 바위산의 모습침식 바위산의 모습
아무리 봐도 독특한 산 모양아무리 봐도 독특한 산 모양



즐겨듣는 노래가 뭐야?

우리는 멋진 광경 앞에서 음악 앱을 켜서 즐겨듣는 노래를 틀었다. 그가 좋아하는 곡은 의외로 신성하고 잔잔한 느낌의 곡이었다.


그는 아주 쾌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발랄한 댄스곡을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사실 기도하는 모습이나 건강한 삶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매일 운동하며 수행하듯 사는 모습이 그 잔잔함과 어울리기도 했다. 하긴 나도 성격은 차분하지만 박재범 노래나 흥겨운 릴러말즈의 힙합곡을 들으니까.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정말이지 아득하고 깊은 일이다.



그는 돌아오며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곧잘 했다. 나도 꽤나 노래 잘 부르고 부르는 거 좋아하는데. 내심 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잠시 따라 부르다 곧 멈췄다. 그는 귀기울여 듣기 보다는 스스로 소리 높여 흥을 표현하는 쪽이었다. 나는 찰나에 조그만 서운함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먼지 같이 떨어지는 마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누가봐도 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직감이 나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다.



그는 분명 예체능 전반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이 날의 착장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짙은 파란색 티셔츠, 그리고 하얀 나이키 운동화였다. 분명히 상하의 모두 별다른 무늬가 없는 단색의 옷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뻔하지 않으면서 색감이 잘 맞아 떨어졌다. 한마디로 옷을 입는 센스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원래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집단 내 폭력적인 문화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는 운동선수를 아주 잘해냈을 것 같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직업을 택했더라도 그것도 잘 했으리라.




투어 버스가 몬세라트에서 출발하기로 예정된 시간이 오후 한 시. 푸니쿨라를 타고 다시 수도원으로 내려오니 시간은 이미 한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너무 꼼꼼히 봐서일까. 점심은 커녕 버스가 떠나가게 생겼다. 그곳에서 파는 특산품도 사고 싶었는데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두고 헉헉 거리면서 뛰어 버스에 탔다.


덥고 배가 고픈채로 또 한시간을 버스에서 기다리다 두 번째 도시인 시체스로 왔다. 시체스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아래, 서쪽에 있는 해변가 도시다. 휴양지로 야경이 예쁜 곳이라고 한다. 역시나 투어가이드의 가이드를 들으며 시체스 시내로 들어왔다. 한두시간 후면 다시 돌아갈 시간으로 꽤나 빡빡한 일정이었다.



지금부터 그냥 빠질까?

그래, 좋아!


어차피 가이드의 설명도 이제 귀에 들어오지 않고 배도 고프겠다, 우리는 이어폰을 빼고 거리를 걸었다. 배가 잔뜩 고파 얼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태양 아래 오래 걷고 찜쪄져서 너무 더웠다. 화장한 얼굴에서 땀이 나서 찝찝했다. 그는 당연히도 실외로 나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더우니 실내로 가는 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왠지 말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 때다. 내가 본격적으로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그래도 밥은 맛있게 먹고 나왔다. 내가 그 전에 숙소며 여행 코스며 모든 것을 내가 계획하고 알려줘서 사실 좀 심통이 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바르셀로나는, 특히 가우디 관련 건축물을 보는 데 있어서는 예약이 필요한 J의 나라였고 그는 극단의 즉흥파였다. 식당은 너가 알아봐, 라고 말해서 그는 그 날 점심과 저녁 모두를 알아봤다.



시체스는 기대보다는 별다를 게 없는 바닷가의 도시였다. 우리는 식후에 잠시 바닷가 구경을 하고, 버스로 돌아갔다. 그는 가게를 구경할 때에도 그는 나 선글라스가 좀 필요한데, 하며 가게에 들어가 안경을 골랐다. 저녁에도 나 한식이 먹고 싶어, 라고 하면서 한식집에 데려갔다.

너는 뭐가 필요해? 구경할 것 있어? 라던지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게 있어? 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배려의 결여를 느꼈다. 나도 자기주장을 편하게 잘 하는 성격이라면. 별로 상관하지 않고 쿨하게 생각하거나 내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면 조심스럽게 어때? 라고 먼저 물어볼 것이다.



이른 저녁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잠시 쉬다가 공용공간에서 내일 아침을 걸고 당구를 쳤다. 진짜 한국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맛의 한국식 한인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소화할 겸 바닷가까지 걸어갔다. 노점상들이 많은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특이하게 그 돗자리에 사방에 줄이 달려 있었는데, 그 줄은 경찰이 올 때를 대비해서 빠르게 접고 가는 용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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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를 배경삼아 벤치에 앉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걸어서 바다까지 갔다가 걸어 돌아와서 또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1시.


하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그의 질문은 선을 넘었고, 나는 저녁 즈음에는 이미 마음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내가 평소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 딱히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한편으로는 그에게 끌리는 감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의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사람들처럼 잠깐 손을 잡고, 잠깐 어깨에 기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금세 손을 뗐다. 분명히 그는 내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 그를 봤을 때처럼,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껴서 최고의 순간에 한 장 찍으려고 가져온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또, 수도원 여기저기를 호기심 어린 듯이 눈에 담으며 돌아다녔다. 어디갔지? 하고 찾아보면 때로는 뒤에, 때로는 옆에 있었다.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다니는 모습이 마치 자유로운 강아지 같았다.


그는 거침없이 말하고 말한 것을 잘 까먹었다. 모든 사람을 시원시원하고 편하게 대했다. 긍정적이라 잘 웃었고, 감정이 바로 표정에 드러났다. 칭찬을 하면 얼굴이 붉어져서는 밝게 씨익 웃었다.


투명하다. 나를 끄는 사람은 어딘가 의뭉스러운 인상을 주는 사람보다는 투명하게 드러내는 쪽이다.

대개 솔직함을 간직하는 것보다 숨기는 편을 택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숙하지 않은 솔직함은 단순함일 뿐이다. 오로지 내면의 성숙이 있어야 외부에 자신이 어떻게 생각될 지 알 것이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며 동시에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강한 사람이다.


아무리 100%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배려심이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제로. 0의 사람이다.




배려심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에서 계속해서 실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배려에 대한 기준도 결도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소화할 때까지 삼키는 편이고,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그 앞에서 즉각적으로 하는 편이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만나 오전을 보냈고,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바르셀로나 여행을 끝내고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내가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그가 관계에서 성숙함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만큼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였다.


나는 그의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몇 년 이상의 갈등과 화해를 겪으며 맞춰갈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다.







몇 일이 지난 후에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를 했다. 나는 아직 화가 나 있었고, 그는 곧바로 사과했다.

나는 사실 그를 친구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신기한 공통점이 있는 사람은 만나기 정말 드무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내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대화는 그가 긍정적인 희망을 품고 열심히 대화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일테고, 그 희망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잘 통했다고 생각한 것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이 여름 이야기의 끝이다.




나는 그와 인연이 알면서도 몇 주 간은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갔던 많은 대화와 유대가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니.  이 점이 이별의 가장 허무한 부분이다.


그가 추천했던 넷플릭스 시리즈를 꾸역꾸역 다 보았다. 친구들과 동생에게 미련가득한 말을 하면서 다녔다. 하지만 아무렴 뭐 어쩌겠어. 나는 오래 만나지 않을 바에야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쪽을 택한다.





사실 나에게는 초능력이 하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또렷하게 보는 능력.


만나서 잠깐 시간을 보내보면 대개는 끝이 보인다.

우리는 얼마쯤 있다가 헤어질까? 6개월 혹은 1년.

만나자마자 끝을 생각하는 여자, 정말 유별나지 않은가.


내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람이 별로여서 못나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나와 오래 만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 사람이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이어도 그랬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들면 여지없이 거리를 두었다.


내가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굿바이를 외치는 쿨내나는 사람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이렇게 미련 많고 나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럴 능력이 안 된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인데 그냥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어릴 때는 그렇게 담담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 거절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미안함을 속으로 외치며 거절했다.

반대로 이러한 생각은 내가 상대방의 반응이 실망스럽더라도 나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이 당신 곁에 머무르지 않더라도 부디 당신의 자존감은 변하지 않길.

사랑이 당신 곁에 머무르지 않더라도 슬픔을 흘려보내고 담담하게 지나가길.


사랑이 당신 곁에 머무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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