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강의 멋진 경치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필름색의 도시, 포르투
나는 바르셀로나 이후에 어디로 갈 지 정하지 못했다. 스페인에 있는 다른 도시들로 갈까, 동유럽쪽에 가서 여행을 좀 더 할까? 나는 남프랑스 여행과는 달리 여행 루트를 짜 두지 않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정도의 유명국 빼고 다른 유럽 나라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유럽국들은 나라가 많으니 선택지가 또 워낙에 많다.
또 하나는, 단순히 여행만 하고 돌아가고 싶은지 조금 더 유럽에 남아 정착할 지 두 가지의 선택지 중 무엇을 택할지 결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길에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한국과 다른 문화를 겪으며 당황하기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외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더 기울게 되었다. 내가 합법적 거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1년의 워홀 비자 기간 동안 유럽을 제대로 느껴보자.
사람마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범위의 예산은 다를텐데, 그 때의 나에게는 여행만 하고 돌아가려면 한 달 이상 더 여행할 자금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산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집세를 내고, 일자리를 구하는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돌아가는 것이 나았다.
이런 생각을 여행 와서야 하다니 나도 참.
성인이 되어 약속에 정확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면서 기질이 J로 바뀌었지만, 그렇다. 나는 본투비 뼛속까지 P인 사람이었다.
나는 다양한 국가들에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 여러 국가를 방문하고 싶다. 그래서 스페인을 더 여행하는 선택지는 제쳐두고, 비행기를 타고 옆 나라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로 가기로 했다. 그리하야 포르투갈행 항공권은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이틀 전에 끊었다.
이런 저런 앞날에 대한 고민을 간직한 채 포르투갈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은 어떤 나라인가.
포르투갈은 이탈리아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라로, 서쪽과 남쪽은 바다에 접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포르투갈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라는 것이다. 현재의 포르투갈 국경 안에 포함된 지역은 선사 시대 때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포르투갈 왕국은 1139년 성립 되었고, 13세기 초에는 국경이 확립되었다.
또, 포르투갈을 조사하며 흥미로웠던 또 다른 한 가지는 포르투갈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이 ‘인간 개발 지수’ 상위권에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인간 개발 지수란 유엔의 산하기구 유엔개발계획(UNDP)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보고서 중 하나의 목록이다. 인간 개발 지수는 교육수준, 수명, 소득 등을 반영하여 인간의 발전 정도를 평가한다.
2024년에 발표된 인간개발지수 순위에 따르면, 1위가 스위스 2위가 노르웨이 3위 아이슬란드 공동 5위 덴마크, 스웨덴으로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9위, 미국이 20위 이며 프랑스는 스페인의 뒤를 이어 28위다.
또한, 포르투갈은 삶의 질(세계 19위)이 높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유럽 연합, 나토, OECD 경제협력 개발 기구에 가입국이며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참여하는 평화주의 국가다.
책 <오래된 미래> 에서는 서구권의 저자가 티베트 인근의 라다크라는 지역에서 생활하며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소위 ‘현대 문명화’되지 않고 ‘일인당 소득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어떤 나라보다 성적 다양성, 역할 다양성이 포용되며 다수가 행복하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처럼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국제 인지도가 낮은 국가지만 실제로는 살기 좋은 국가다.
어렸을 때 부루마불 게임 (칸마다 나라의 도시가 적혀 있어 주사위를 굴려 도착한 곳의 땅을 사고 건물을 지으며,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머니게임) 을 즐겨하곤 했는데, 거기에는 한 칸 마다 수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울, 베를린, 이런 식으로. 그곳에 나온 도시 이름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었다. 리스본이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포르투란 도시만큼은 이전에 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도시였다.
나는 여행잡지에서 물가의 풍경과 함께한 빈티지 영화 같은 포르투의 사진을 보고 이 도시에 가보고 싶어졌다. 포르투는 비교적 최근에 각광받기 시작한 도시이다. 옛날옛적에는 부자들이 집을 짓고 살았지만, 현대에는 가난한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2008년 이전에는 빈 집들이 많았다. 마약 판매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허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5년 전쯤 포르투가 여행지로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살아났고, 오늘날의 활기찬 도시가 되었다.
나는 포르투 공항인 프란시스쿠 드 사 카르네이루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는 전철을 탔다. 낯선 포르투갈어가 보이는 표지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낯익은 프랑스도 아니고,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 언어도 모르고 생소한 이곳에서 이제는 내가 알아서 찾아다녀야 한다.
역에는 희한하게도 티켓을 끊기 위해 안과 밖을 가르는 개찰구가 없었다. 뚫려있는 복도에 작은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 티켓 찍는 곳. 그것이 다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항 개찰구인데 이렇게 뚫린 채로 둔다니? 이를 악용해 무단 통행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러다 잡히면 벌금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이건 서로 신뢰하는 사회라는 뜻이 아닐까?
대개 사람들이 잘 지키며 다니니 개찰구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거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램이나 기차에서는 역무원들이 희번득한 눈으로 다니면서 통행표를 쥐 잡듯이 검사한다. 이것이 그들의 중심 업무인 듯 하다. 나는 프랑스에서 한 번 날짜를 착각해 예매하고 지역 기차에 탔는데 8유로 짜리를 50유로를 내게 하더라. 만원짜리 대중교통이 8만원이 되었다. 쳇 나 삐졌어,
나는 여행을 가면 대중교통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있다.
중간에 지하철을 한 번 환승 해야 해서 표지판을 봤더니 귀여운 기차 이모티콘 표시와 함께 시간이 나와 있다.
포르투의 첫 인상은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였다.
활기차고 떠들썩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스페인보다 더 서쪽에 있어 날씨와 온도는 따뜻하고 쨍하지만 사람들만큼은 열정적인 스페인과 달리 차분하고 조금 더 감성적인 분위기. 건물 대부분은 외벽이 낡고 복구하지 않은 상태여서, 빈티지스러움이 더 배가되는 옛날 동네다. 포르투에 오자 마음을 놓이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스웨덴처럼 안전하고 차분하면서도, 거리의 바랜 색감이 옛스럽고 아련한 옛날의 분위기가 살아있는 정겨운 도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에 제격인 동네 말이다.
포르투는 생활물가가 정말 저렴하다. 나는 사방에 암막커튼을 칠 수 있고 막 지어진 깔끔한 시설의 도미토리룸을 5박에 17만원 정도에 구했다. 일 박에 3만원 정도밖에 안 하다니. 게다가 테라스에서 쉴 수 있고 전기쿡탑에 대형 냉장고에 고급스러운 푹신한 소파에, 상당히 고급스럽게 잘 갖춰진 멋진 게스트하우스였다.
사실 이러한 낮은 물가 덕분에 포르투는 현재 인근 유럽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행지가 되었다. 마치 우리가 여름에 저렴한 태국이나 베트남을 찾는 것처럼, 사람들은 가성비 좋은 여행지로서 포르투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여름의 포르투 주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많았다.
첫 날 체크인 후 테라스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데 앳되보이는 모로코 직원이 말을 걸었다. 그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쯤인가, 프랑스에 가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포르투갈에 직장을 잡아 일을 하고 있다고. 벌써 어림잡아 경력이 7년차, 그의 나이 스물두 살이다.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프랑스어 기본 언어로 학습하니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로 유학하거나 일을 한다. 그 친구는 돈을 벌어 모로코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쳐준다고 한다. 업무 시간도 무척 길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타국에 혼자 와 이렇게 일하며 사는 삶이 어떠할 지, 나는 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도서 <지리의 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개인의 운명은 상당 부분 지리에 달려있는 셈이다.
살아본 나라 중 어떤 나라가 제일 좋았어? 라는 나의 물음에 모로코 직원은 네덜란드라고 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살기에 좋다고. 물가가 높지만 그럼에도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하루 정도 푹 쉰 후 포르투 여행을 시작했다. 포르투 여행의 시작은 역시 장보기! 5일 내내 외식하기 보다는 일부는 만들어 먹기 위해 마트에 다녀왔다. 유럽에서 느끼는 건,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품들이 많다는 거다. 비건 소스들도 많고, 신선한 채소들도 항상 널려있다. 가격 또한 비교하게 되는데, 프랑스보다 확실히 저렴한 마트 가격대를 보며 포르투갈의 착한 물가를 체감했다.
또,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 카페에도 가 봤다. 거리의 카페들은 현관문을 완전히 개방하게 두었다. 나는 포르투에 사는 친구가 추천한 카페에도 두어번 갔다. 사람들 몇몇은 나처럼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고 나머지는 휴가를 즐기러 혹은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간단히 커피를 먹었다.
유럽에서 커피란 물론 에스프레소가 기본이다. 아메리카노를 시켜도 200ml 정도다. 아직 에스프레소가 익숙하지 않아 물을 더 섞은 메뉴를 시키는 편이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와 의외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파스테이 드 나따. 바로, 포르투갈의 대표 간식 에그파이다.
포르투 시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인 천주교 성당 기념탑 (Torre dos Clérigos)가 있는 곳 근처에 유명한 에그파이 집이 있다. 사람들이 줄 서서 먹길래 나도 들어가서 나따 2개와 에스프레소를 시켜 그 자리에서 먹었다. 전망 중 최고의 전망이라는 유리 너머로 파이를 굽는 모습이 보이는 키친 전망과 함께 맛 본 따끈따끈한 에그파이는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평소 에그파이를 딱히 선호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갓 나온 에그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한 맛이 에그파이의 단 맛을 살짝 중화시켜서 두 개의 조합이 참 잘 어울렸다.
에그파이 한 입, 에스프레소 살짝 입에 물기를 반복하면 된다.
포르투에 가면 따끈따끈한 에그파이, 나따를 꼭 그 자리에서 맛보기를.
에그파이 집을 나오니 다시 그 천주교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의 이름은 클레리구스 성당. 클레리구스 성당은 1700년대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교회건물이다. 이 성당 기념탑의 높이는 75미터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 탑이 생긴 이유는 무역으로 외국과의 교역을 할 때 배가 오고가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알리기 위해서다.
포르투 여행을 할 때 꼭 봐야 할 대표적인 장소를 꼽아보자면 두 곳이 있다.
우선 하나는, 길거리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포르투갈만의 타일벽, 아줄레주다. 건물 외벽에 각종 다양한 타일들이 붙어져 있다. 어떤 것은 단색의 타일들이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무늬그림이 그려져있는 타일들이었다. 이것이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다른 포르투갈만의 특색이다. 이 타일들은 직접 그린 걸까, 아니면 대량 생산한 걸까? 나는 지나다니면서 타일들을 슬쩍 만지고 다녔다. 아줄레주란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 공예로, 주석 유약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아즐레주란 광택을 낸 돌멩이를 뜻한다.
상벤투 기차역에도, 도시 워킹 투어 가이드의 시작점이었던 카르무 성당 앞에도 이 아줄레주 작품을 볼 수 있다. 카르무 성당에 있는 아줄레주는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상벤투 기차역에는 포르투갈 왕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두 곳 모두 그림이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색이 파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옛 포르투갈인들은 파랑을 검은색과 동일어로 불렀다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동 루이스 다리다. 동 루이스 다리는 포르투 남부에 위치한 도루강 위에 지어진 다리로, 포르투 지역의 남부와 북부를 잇는다. 그렇다. 포르투에도 강이 있다. 서울에는 한강, 파리에는 센느강, 리옹에 론 강과 손 강이 있듯 말이다. 큰 도시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다는 것은 수로가 도시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포르투의 도루강은 서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다와 이어진다.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 도루강은 그 폭이 굉장히 넓다.
동 루이스 다리는 에펠탑 설계자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였던 테오필 세이리그의 설계하에 지어졌다고 한다. 19세기에 지어진 현대 건축인 셈이다.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철근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고보니 자동차가 다니는 하층의 지점이 곡선 형태라는 것도 닮았다. 동 루이스 다리는 상층에는 지하철과 인도가, 하층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구분해두었다.
도루강 북부에 대부분의 유적지와 장소가 몰려있어서 동 루이스 다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건너 내려가면 몇 개의 와이너리 빼고는 구경할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다리를 건너 시간을 많이 보낸다. 왜냐하면 이 멋진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도루강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모루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모루 공원은 언덕져서 강과 시내가 더 잘 보인다. 낮에는 피크닉을, 밤에는 인근 마트에서 가격이 아주 착한 포트 와인을 사서 야경과 함께 먹을 수 있다. 또, 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세하 두 필라르 전망대에 갈 수 있다. 전망대는 다리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도루강과 이를 지나는 사람들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음식조차 한식 입맛에 딱 맞다. 쌀을 사용한 음식들과 해산물이 듬뿍 있는 음식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스페인 요리인 빠에야를 몇 번 만들어먹곤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한 입거리 음식인 타파스도, 정말 맛있더라. 포르투갈 음식 역시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밤에 모루 공원에 앉아 포트와인을 마신 그 날, 나는 두 명의 동행을 맛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문어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우리는 문어구이, 해산물 밥 중 하나인 문어밥, 새우 파스타, 그리고 샹그리아 한 병을 시켰다. 문어는 별다른 소스 없이도 그 본연의 맛이 부드럽고 쫄깃했다. 어쩜 그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그리고, 쌀과 국물이 섞인 음식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문어밥이 최고로 맛있었다. 문어밥은 마치 죽처럼 자른 문어와 쌀밥이 끓인 국물과 함께 나오는 음식이다. 죽처럼 쌀이 푹 익은 게 아니라 어느정도 탱글탱글 해 씹는 맛이 있었고, 해산물 국물의 맛은 정말이지 맛있었다. 문어밥 말고도 해산물 밥을 파는 곳에 가면 더 다양한 해산물과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다.
때는 의대 정원 증가 사안으로 인한 의사 파업이 한창인 때였다. 함께 식사를 한 동행 중 한 분은 의료계에 종사 하셨는데, 직장을 잃는 덕분에 시간이 나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워낙 오래 함께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라 숙소는 함께 쓰지만 낮에는 각자 원하는 곳으로 자유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모루 공원에서 마실 포트 와인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그 분의 친구분과 만나는 동행분들 등이 모여 합해 8명 쯤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포트와인과 과자들을 가운데 놓고 자기소개를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UX 디자이너, 이비자 클럽을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 동행의 친구분이었던 의사,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취미로 서핑을 즐겨하는 분 등 정말 다양한 분들이 한데 모였다.
우리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 포트 와인을 마셨다. 포르투 와인을 뜻하는 포트 와인은 마트에 가면 저렴한 것은 한 병에 3유로(5천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18-20도의 높은 도수로 유명한 달달한 향의 포트 와인은 바로 이 도루강 인근에서 생산하는 포도주를 뜻한다. 기억하자, 수도 리스본이 아니라 포르투에서 만든 와인이 포트와인이다. 달달해서 도수가 높은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쭉쭉 들이키다보면 훅 갈 수 있으니 마음껏 취하고 싶은 날에는 포트와인에 도전해보자.
포르투의 대중적인 장소 두 가지를 꼽아봤다면 이제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두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성당의 기념비 탑 근처에 있는 사진 박물관이다. 포르투 사진 박물관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원래는 감옥이었던 건물이었다. 과거에 특히 불륜을 범죄로 구분하고 불륜 범법을 행한 여성들을 가두던 시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감옥은 포르투의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쓰이지 않기에 이곳을 사진 전시회를 하는 공간으로 쓴다고 한다. 감옥시설이라 공간이 굉장히 독특하다. 입구 가운데로 복도로 들어가면 둥그런 중간 공간을 기준으로 창살 문을 닫아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여러 입구가 나온다.
내가 방문했을 때 전시회의 주제는 전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전쟁으로 인해 팔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 전쟁이 일어난 지역, 사람들과의 인터뷰 영상 등 전쟁의 참상을 담은 전시다. 복도를 따라 가다보면 현대 아티스트의 현대 예술 전시도 있었다. 이 장소는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주관했던 장소였다고 한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전시들도 볼 수 있다. 꽤나 풍성한 사진 박물관이다. 게다가 이 전시관은 무료로 개방되니,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 가볼 법 하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곳은 음악 공연장인 까사 드 뮤지카 (Casa de Musica) 다. 말 그대로 House of Music, 음악 공연장이라는 뜻을 가진 포르투의 까사 드 뮤지카는 건축가 렘 쿨하스가 지은 공학적으로 독특한 모양으로 설계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포르투를 떠나기 전에, 이 음악공연장에 포르투갈 전통 음악인 파두 공연을 보러갔다. 파두는 포르투갈 식의 동그랗고 귀여운 전통 기타와 여러 악기, 그리고 솔로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밴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Fado 파두란 포르투갈어로 ‘운명’, ‘숙명’을 뜻한다고 한다. 주로 체념, 슬픔, 운명의 감수 등의 아련한 정서의 주제로 하는 파두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연상시켰다. 옛 서민들의 생활이란 고되고 벗어날 수 없는 고착화된 삶의 반복이었을 게다. 즐겁고 발랄한 곡들도 있었다. 높은 창과 아름다운 주황빛의 벽면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하던 시간은 오롯이 순수하고 충만한 기쁨이었다.
나는 모루공원에서 만난 동행분들과 2차로 자리를 옮겨 더 마실 수도 있었고, 다음날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둘 다 하지 않기로 했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려 동행을 구하는 여행이 점차 작은 한국으로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또, 안녕하세요, 참 재미있었어요, 잘가요 로 끝나는 의미없는 대화의 반복에 흥미를 잃기도 했다. 나는 진정으로 ‘혼자’ 여행을 하는 걸까? 혼자 여행을 해도 괜찮으니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관계 맺기를 하는 게 좋겠다.
물론 짧은 만남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때는 혼자 여행이 너무나 그리웠다. 대도시 속에서 몰려오는 외로움과 비슷하려나. 나는 우연히 여름의 포르투를 함께, 그리고 혼자 즐겼다.
나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뜻밖의 연락 때문이었다.
어디로 갈 지 고민하던 나에게 대학 동기 언니는 나에게 고마운 제안을 해 주었다.
‘괜찮으니 우리 집으로 와서 지내. 프랑스로 넘어와.’
그렇게 나는 또 출발 이틀 전에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끊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한국 여자와의 프랑스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여행도 여기서 끝이 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