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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은 문득 갑자기 벨기에로 가는 거야

유럽 3개국 가족 여행기 1

by 뮤즈비 Jan 29. 2025




‘나 이제 일자리 구해야 하는데… ’


‘이번에 봐야 해 언니. 아니면 언제 또 유럽에서 다 같이 봐.’




가을에 갔던 가족 유럽 여행은 바쁜 어머니가 모처럼 이번 추석에 5일의 휴가가 생겼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결성되었다. 나는 동기 언니네 집에서 일주일 간 즐겁게 쉰 다음, 곧 다시 남부로 내려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던 차였다.



하지만 유럽에 사는 동생의 입장에서 이번 여행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나중에 또 언제 -내가 유럽에 살며, 어머니가 일주일을 쉬는 기회-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는 행운을 맛보겠나. 즉흥 이벤트 기획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우리집 동생은 삼 주 밖에 남지 않은 여행 계획을 빠르게 진두 지휘하며 진행시켰다.



엄마, 엄마는 한 이틀 정도 다른 날로 대체한다고 하고 스케줄을 좀 더 빼 봐.

언니, 앞으로 살면서 이런 기회가 없다니까? 일 구하게 되면 거기다가 해당 주만 먼저 계획된 여행이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


동생은 이렇게 주저하는 모두를 불도저 같이 설득시킨 후에 여행 계획을 짰다.






-


‘어머 어떡해…’

‘어떡해라니. 이거 한국여자 특이라니까? 뭘 어떻게 하긴 어떡해. 해결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의 동생은 진취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줄곧 인생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방법을 몰두하며 그걸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좋아해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매 달 후원을 해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말이다. 나는 그런 동생이 참 존경스럽다. 나도 동생의 멋있음을 본받아 환경 단체에 하나, 국내 아동 단체에 하나 기부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봉사를 하려고 남편을 설득해 이번 여름에도 한 달 동안 탄자니아에 다녀온 것도 우리 동생이다.



나는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란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최고로 많이 벌고 좋은 집에 사는 것 말고 말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걸 하는 사람 말이다. 그것은 식물을 기르는 것일 수도,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크지 않더라도 작은 기쁨이라도 좋다. 프랑스에는 Bon Vivant, 이라는 단어가 있다. 봉 비벙. 영어로는 good life 라는 뜻으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 한 달 휴가를 빼서 내내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고, 매 달 후원을 하는 것이 뭐 그리 커리어나 자산에 도움이 되겠나. 하지만 이 일이 동생의 내면에 깊은 기쁨을 주는 행위인 거다. 동생은 항상 그랬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뤘다.


동생이 무얼 한다고 하면 그걸 꺾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도 이루어질 줄 알았다.


-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거리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거리
브뤼셀 시내브뤼셀 시내




그리하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유럽 3개국 가족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말이다.



이번 여행의 인 in -지점은 네덜란드였다.


왜 네덜란드냐 하면, 동생 말로는 스웨덴에서 네덜란드행 저가 비행이 엄청난 특가에 나왔다나.

나는 실은 특가나 할인 같은 건 잘 믿지 않는다. 결국에 싸게 샀다는 생각에 돈은 그만큼 더 쓰게 되어 있고, 할인 때문에 원하는 곳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그 광고가 유도하는 선택지로 정하게 되니까.


하지만 뭐, 이런 걸 빌미로 여행지를 고민없이 정해보는 것도 꽤나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나는 대학교 때 현지조사라는 걸 했다. 현지조사란 매 학기마다 2박 이상으로 다른 지역에서 가서 숙식하며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하고 조사하는 현장학습을 뜻한다. 매 학기마다 지역이 달라졌는데, 동문들 말에 의하면 교수님들이 답사 지역을 정하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한다. 교수님들은 국내 지도를 펼쳐두고 다트를 던진다. 다트촉이 꽂히는 지역이 곧 그 학기의 답사 지역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한동안 가족여행 지역은 여행 당일 아침까지 정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아침에 국내 지도를 펼쳐 임의로 여행지를 정했으니 말이다.



한 번은 이 즉흥여행 때문에 숙소를 찾지 못해 밤에 차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적이 있다. 이 일 때문에 엄마는 계획하지 못한 여행을 못마땅해 하셨다. 하지만 어린 나의 기억에는 그 캄캄한 밤, 숲속 어딘가쯤에서 차안에서 이불을 덮던 기억이 매우 흥미진진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혹시 숲 속에서 곰이 나올까? 이러다 귀신을 보는 건 아닐까? 무서움과 흥미진진함이 반씩 교차하던 그 순간. 이 때 느낀 감정과 상황 빼고는 사실 그 후의 여행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날 결국 숙소는 찾았을까.



여행이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어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인근의 여러 국가를 가보기로 했다. 차를 빌려 떠나는 여행이라 독일에도 살짝 가볼까 욕심을 내어 보았지만 결국 선택한 곳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까지 해서 일주일 동안 3개국을 다니는 것이 이번 여행의 일정이다.














우리의 여행은 열정걸 미세스킴의 스타일에 따라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는 한국식의 빡센투어로 정해졌다. 세상에, 우리는 일주일간 무려 4개의 숙소를 사용했다. 우리가 차를 렌트한다는 것은 이런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 하지만 운전은 우리 동생 몫이니 나는 아무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고미사…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크흠. 어쨌든 특가 항공을 끊은 동생과 엄마는 편리를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과 아웃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여행지는 벨기에로 정해졌다. 나는 다음날 벨기에로 가서 바로 가서 만나기로 했다. 벨기에의 수도는 브뤼셀. 브뤼셀의 중심부라고 하면 바로 그렁 플라스 (직역해 ‘큰 장소’) 광장이다. 그곳은 금빛으로 이루어진 건물 외벽과 고딕 양식의 건물이 4면으로 둘러싸인 특색있는 곳이다. 그 건물 중 높은 첨탑 모양이 있는데, 이것이 벨기에 시청사다. 시청은 안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 티켓이 있어 즉석에서 티켓을 끊어 들어갔다.




grand place 그렁 플라스의 금빛 건물grand place 그렁 플라스의 금빛 건물





1402년 지어진 벨기에 시청사는 1695년 프랑스 침공과 화재로 인해 크게 훼손된 후 18세기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시청은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옛 왕정에 걸맞게  엄청난 개수의 방을 자랑한다. 각 방들로 들어갈 때마다 각기 다른 용도의 공간이 나오는데, 그 종류나 분위기가 다양해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그 중 벨기에에서만 특별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태피스트리다. 즉, 그림 형태로 직조된 천을 뜻한다.




벨기에가 아직 플랑드르 왕국일 무렵, 플랑드르는 모직물 산업이 발달해 이를 수출하면서 부유한 경제 강국이 되었다. 그 중 특히 고가로 팔리던 것이 벽걸이용 태피스트리였다. 그 중 현재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은 태피스트리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청사의 방 곳곳에서 직조물을 볼 수 있다. 직조물은 일반 유화그림처럼 일반적인 그림이 그려져있다. 이를 천에 그렸다 뿐이지 말이다. 그 정교함과 보존의 품질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벨기에스러운 화려함과 당대의 작품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시청사만한 곳이 없다.





시청사 내부시청사 내부
태피스트리태피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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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펜타곤 상점거리 부근에 있는 맛집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와서 좁은 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2층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리뷰에 사진이 많았던 홍합 치즈와 추천 메뉴들을 시켰다. 귀엽고 동그란 기본 제공 빵과 버터는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고, 메뉴 중 추천받은 생선 요리는 특히 소스부터 맛이 정말 깊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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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허 지도브뤼허 지도



벨기에에 오면 브뤼셀 이외에 꼭 들러야 할 도시가 있다. 바로, 역사와 특색이 살아있는 브뤼헤Brugge 다. 브뤼헤는 벨기에의 북쪽, 북해를 접한 도시다.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아름다운 구시가지로 인정을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기도 하다. 브뤼헤에 도착해 길을 걸으니 프랑스의 도시 릴-플랑드르에서 봤던 그 와플모양의 지붕이 눈에 띈다. 친숙하고 귀여운 저 지붕…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도 분위기가 짙다. 길을 걷다보면 사람을 태운 말이 지나가고, 강가를 보고 있으면 사람을 태운 작은 돛단배가 지나간다.



이 많은 장점 중, 브뤼헤라는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수로길이다. 브뤼헤는 도시 전체가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도시 중간에도 수로가 지나다닌다. 수로는 13세기에 지어진 성당과 수도원을 들어갔다 나올 때에도, 먹거리와 상점을 따라 걸을 때에도, 그리 번화하지 않은 작은 길을 걸어다닐 때에도 반가운 우연처럼 마주친다. 수로길이 아주 예쁜 도시, 오래된 중세시대에서 역사를 느끼며 걷고 싶다면 브뤼허를 꼭 가보시라.






예쁜 브뤼허의 수로길예쁜 브뤼허의 수로길
구시가지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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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밤거리브뤼셀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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